#나를찾아가는길 #사십춘기 #진로 #나를위로 #나를인정 #나를이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리기 결심한 두 달.
그 기간을 반추해 보면 미치도록 그리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했고
적당하게 그렸고 놀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시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그런 내 모습을 바탕으로
동화책 만들기 1년 프로젝트 학원은 그만뒀다.
비싼 등록금을 냈는데
끝까지 해보지도 않아서 부끄러웠다.
이유가 있지만 변명에 속한다.
어려움의 고비를 넘기지 못해
그만두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또한 어려워서
이 글을 발행하는 것도 6개월이나 걸렸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궁금한 분들이 있었다면
정말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이 있었다.
이것을 비싼 등록금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련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꿍해 있던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졌다.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발견한 시작은
중학교 즈음이었다.
IMF가 터졌고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다.
갑자기 언니는 아팠고 막둥이 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은 내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가 공무원이었기에 가세가 크게 기울지 않았지만 힘들었다.
부모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여자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라고.
그리고 싶은 마음을 꺼낼 수 없었다.
착하고 문제 일으키지 않는 둘째가 되어야 했다.
제대로 마음을 내어보지 못한
나의 주저함과 부모의 무관심이
늘 가슴 한편 응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원망의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특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을 때.
예전의 나는 그랬다.
원망이 내 마음속에 출현하면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성장환경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그때의 상황을 이해해야지
어쩔 수 없지 않았겠느냐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눌러버렸다.
그런데 눌러서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타고나길 소인배인데
용을 쓰니 속이 더 곪을 수밖에.
작은 내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도 좀 힘들었고 아쉬울 수 있지.
더 관심받고 이해받는 환경을 갈구할 수 있지.
그 당시 내 부모, 형제가 가지고 있던
힘듦의 절대 크기와
나의 것을 비교해서 억누를 것이 아니라,
'나도 그때 힘들었고 지지와 도움이 필요했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그렇게 성장과정의 결핍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여정이 마무리를 하든 못하든
빈 마음의 구석을 채워주는 행동으로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를 사랑하라는 글과 노래에 공감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해 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란 사람이 좀 순해진 느낌이 든다.
순한 척으로 보이는 가면 쓴 둘째가 아니라
완성하지 않으면 뭐 어때?
이것도 한 과정인데.
스스로를 토닥여주는 마음이 생기니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