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4 (금)
본가에 완전히 내려온지도 두달 째. 실제로 있던 기간까지 합치면 8개월 차였으므로, 평일의 우리 동네 일상도 더는 궁금하지 않아진 아침이었다.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는 설렘이 아니라 일이 되었고, 어릴 적 구몬 선생님이 방문하던 방에서 모니터 두 대에 맥북을 연결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도 더는 감회가 새롭지 않아졌고, 집 근처 헬스장 가는 길에 종종 앞길을 가로막는 비둘기는 귀찮아졌으며, 운동 후 집 근처 스타벅스에 들러 나만의 음료를 들고 귀가하며 짓던 미소는 충동 소비를 했다는 굳은 입꼬리로 바뀌었고, 맑은 하늘과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아파트 10층 쯤 높이의 베란다에 내놓아진 빨간 제라늄을 번갈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던 순간은 이제 6.3인치의 아이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출근해서 할 일들을 팔로업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런 평소와 같이 헬스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막 씻고 나온 때였다. 이미 머리 속에는 지금부터 출근하기까지 걸릴 시간 계산과 업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라이기를 집어 머리를 말리는 것이 진짜 머리를 말리는 행위일지, 자동차 엔진을 예열하듯 곧 시작될 업무에 대한 예열을 하는 행위일지 호접몽의 순간을 체험하고 있던 그 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실에서 나오는 머리가 살짝 벗겨진 할아버지와 이제 막 탈의실로 들어온 셔츠를 입은 다른 할아버지가 마주쳤다.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허허 웃는 것으로 보아, 두 분은 구면인 듯 했다.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솔직히, 속으로는 할아버지가 콧방귀를 뀌며
"좋은 일은. 온 데가 다 아픈데."
와 같은 대꾸를 하겠거니 했다. 우리 동네의 평균 연령과, 이 건물에 들어 선 병원들을 고려하면 새삼 놀랄 말은 아니었으니까. 상당히 현실적인 대답에 속했다.
하지만 잠시동안 대답 대신 콧노래로 대꾸하던, 머리가 살짝 벗겨진 할아버지는 노래를 멈추고 대꾸했다.
"매일이 좋은 날이지!"
두 분의 대화가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는지, 계속 이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에어팟 프로를 끼고 노이즈캔슬링을 킨 것 처럼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비둘기를 찾으며, 스타벅스에 들러 음료를 받는 순간에 설레며, 음료를 들고 나와 집에 가는 길에 계절을 두 눈으로 보며, 구름 한 점 없이 지평선 산능선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파란 하늘과, 베란다의 빨간 제라늄을 번갈아 보던 매 순간을 가득 마음에 담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이 그들에게 닿을 듯 한 날이었다. 적어도 출근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