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시 한국을 떠날 준비 중

by 꿈꾸는자

해외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언젠가 한국에서 1년쯤 살아보며 한국 교육도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 바람이 이렇게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현될 줄이야... 내가 바란 건 이런 식은 아니었는데...


아이들에게 한국은 늘 여행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가족과 엄마의 오랜 친구들, 그 자녀들과 만나고 노는 즐거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 생활은 달랐다. 학교에 다녀야 했고, 1시 반이면 끝나는 수업 이후의 긴 오후는 때로는 지루하기도 했으며, 주말에도 멀리 놀러 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병원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떨어져 지내야 했다.


아이들 또한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많았고, 아픈 아빠를 지켜보고,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 병문안을 다니며 병원이란 공간을 너무 자주 드나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한국생활을 하는 동안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볼 일이 많았는데 한 가지를 물어보면 두세가지 정보를 더 주시는 친절한 마트 직원분들, 마트 바로 옆 어머님 단골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면 이젠 어느 집 며느리인지 알아봐 주시고 포인트 적립도 알아서 해주시는 그 정겨움 속에, 나도 모르게 이 동네에 스며든 기분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정겹고 익숙한 곳이 되었고 언제나 이곳에 살았던 기분마저 들었다.


호주로 돌아가기 약 2주 전부터는 남편도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갔지만 우리는 서서히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한 달 반 동안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족을 돌보며 매 끼니 정성을 다해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기운이 쭉 빠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방전된 느낌이었다.


너무 애썼던 걸까.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그리워지고 힘들게 느껴지는 며칠이었다. 친정식구들을 잠깐 보긴 했지만, 정작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도, 원하는 만큼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 수 없는 것도 아쉬웠다. 그저 혼자 아무 목적 없이 걷기도 하고 커피 한잔도 하며 그런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몹시 그리웠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도와주었고, 근처로 찾아와 준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통화를 하고, 어머님과 아침마다 커피타임을 가지며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서서히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배운건, 혼자 애쓰다 혼자 쓰러지는 삶이 아니라, 버틸 수 없을 때 그 어려움을 나누는 것, 그리고 내 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였다. 강하게 서 있으려 애쓰던 나였지만, 막상 약해졌을 때는 가족에게 기댈 수 있었고, 그 사실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약해질 수 있는 순간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배우게 된다.


이번 한국행은 애초에 편찮으신 아버님을 뵙기 위해 남편이 먼저 왔던 것이었다. 그 김에 받은 내시경에서 암이 발견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치료와 회복의 시간이었다. 회복 중인 남편을 데리고, 여전히 편찮으신 아버님을 뒤로한 채, 익숙해진 한국에서의 일상을 접고 다시 호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마음은 편치 않다. 하지만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는 다시 호주에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기대되면서도,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이번 시간을 통해 우리가 함께 나눈 감사의 말들, 다짐들, 서로를 향한 다정함이 일상에 쫓겨 흐릿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시간을 마음 깊이 새기며, 다시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리의 일상으로 걸어가려 한다.

이전 12화12. 아이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