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을지, 수술로 끝날지 아니면 항암까지 하게 될지, 항암을 하게 된다면 어디에서 치료를 받게 될지… 수많은 가능성을 그려보았지만, 모든 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마냥 집에 둘 수 없기에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단기로 한국 학교를 체험할 수 있는 ‘조국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는 글을 여러 곳에서 읽고 교육청에 문의도 해보았지만, 우리가 거주하는 지역의 교육청에서는 학교에 권장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고, 학교 측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한국에서의 정확한 거주 기간을 알 수 없으니 아이들을 정식으로 한국 학교에 입학시키는 쪽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한국 학교에 다녀볼 수 있는 것이 큰 행운처럼 느껴졌고, 아이들이 한국의 학교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 역시 긴장된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고 학교에 첫발을 내디뎠다.
11월생인 첫째는 호주와 동일하게 4학년으로 입학했고, 아직 한국 나이로는 유치원생인 둘째는 호주에서 이미 1학년 과정을 진행 중에 있다는 자료들을 제출해 조기 입학이 승인되어 1학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첫째는 한국어로 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지만 4학년은 이미 학업적으로 어려워지는 고학년이다 보니, 사회나 과학, 도덕 시간에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 없어했다. 선생님이 수업 중 이야기할 때, 아이에게는 그 말들이 “딱딱딱, 딱딱딱딱, 짝짝짝짝, 짝짝짝…” 식으로 들린다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찰리 브라운 애니메이션에서 어른들의 대사를 실제 트럼본 소리로 처리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우리가 낯선 외국어를 들을 때, 모든 말이 '블라블라블라'처럼 들리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그 수업 시간은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의 수학 진도는 호주에 비해 훨씬 빨랐고, 집에서 따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가 더 어려웠다. 뒤처지는 아이들을 돕는 협력 선생님이 아이를 지원해 주기 시작했는데, 며칠간은 10페이지가 넘는 숙제를 내주시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아이에게 “이렇게 해서 5학년 올라가겠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날 아이는 집에 와서 울며 힘들어했고, 우리 마음도 함께 아팠다. 호주에서는 모든 수업을 문제없이 잘 따라가던 아이가 갑자기 특별히 지원해 주는 선생님이 생기고,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추가 숙제가 있으며, 수업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주 치르는 단원평가와 받아쓰기도 아이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한국학교에 계속 다닐 아이가 아니니 무리하게 따라잡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이 내용이 협력선생님까지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시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 이후로는 추가 숙제나 압박은 없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일이 남편 수술로 우리가 병원에 함께 머물던 일주일 사이에 시작되었고, 아이는 그동안 전화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 우리는 뒤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이가 우리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혼자 감당해 낸 시간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호주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이불속에서 엉엉 울던 날, 너무 마음이 아파 아이를 더 꼭 안아 주었다. 힘들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며, 이번 경험을 통해 아이의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때로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둘째는 한글을 아직 읽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1학년이라는 점과 아이의 밝고 적극적인 성격 덕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날부터 아이는 학교에 가면 배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숨쉬기가 힘든 때가 있다고도 했다. 선생님으로부터도 여러 번 전화를 받고 일찍 데리러 간 날도 있었다. 병원에 데려가 상담하니, 아이의 상황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성 증상일 수 있다며 소화 촉진제를 처방해 주셨고, 숨쉬기 어려웠다는 증상도 역류성 식도염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해 주셨다.
증상이 계속되어 조금 더 큰 병원에서 피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까지 진행한 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식사도 조절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는 큰아이까지 설사와 구토 증상이 나타났다. 하루는 괜찮고 또 하루는 아프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가 어느 날 아침, 아이가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무서워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탈수 증상이 의심되었고, 수액을 맞은 뒤 안정되었지만, 아이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입원해 추가 검사를 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제안도 있었지만, 아이가 수액 이후 눈에 띄게 회복된 모습이었기에 추후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남편의 식단을 챙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들까지 아프기 시작하니 식사 준비 하나에도 온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한국에 오면 호주보다 훨씬 다양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배달 음식의 편리함도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여유를 누릴 틈이 좀처럼 없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호주에서보다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공부, 친구들, 선생님에 적응하느라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금세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지만, 조금 더 세심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 버티고, 애쓰고 있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2025년 한국에서의 두 달간의 학교 생활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그리고 그 시간이 아이들 삶에 어떤 한 조각으로 자리 잡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낯설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경험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작게나마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아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본다. 즐거웠던 순간들이 더 크게 남아 있길..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뒤돌아봤을 때, 이 시기가 성장의 밑거름이자 의미 있는 삶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