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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Apr 16. 2024

7부 : 독일 해군의 자존심, 전함 비스마르크의 출격!

그 녀석은 우리 중 최약체였지!

  1941년 5월 늦은 밤, 고텐하펜(Gotenhafen)항구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날렵하고 유려한 외형의 이 실루엣은, 항구를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이보다 더 큰 실루엣이 점차 다가와 합류하였습니다.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좌측)과 전함 비스마르크(우측)의 모습을 재현한 프라모델. (출처:www.modellmarine.de)

  이들은 독일 해군의 중순양함 KMS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과, 이번 작전의 주력함이자 독일 해군의 자존심이었던 전함 KMS 비스마르크(Bismarck)였습니다. 이들은 영국 해군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대서양의 넓은 대양으로 나가는 기습작전을 펼 예정이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영국으로 가는 상선에 대한 격침을 통해, 영국의 해상운수에 피해를 입히는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독일이 이러한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개전 이래로 중순양함과 유보트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서양과 북해에서 시행되고 있었던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초거대 전함 비스마르크의 출격은 왜 결정되었을까요?

짝을 이뤄 항진하고 있는 독일 순양전함 KMS 샤른호르스트와 KMS 그나이제나우. 이들은 영국이 붙여준 '못생긴 자매들'이라는 별명답게, 영국해군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일단, 개전 이후 독일 육군은 눈부신 성과를 보이며 붙는 족족 상대방을 박살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고, 독일 공군의 경우에도 물론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죽쑤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공훈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경우 전력에서도 최약체였던데다가, 가뜩이나 노르웨이 침공에서 보여준 졸전으로 인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독일 해군의 준비 : 우리 진짜 이거 하는거야?


  독일 해군의 명운이 걸린 이 작전의 성공을 위해, 독일 해군의 총사령관인 '에리히 레더(Erich Raeder)' 제독은 만전을 기하는 작전을 수립합니다. 지난 번 독일의 순양전함인 KMS 샤른호르스트KMS 그나이제나우를 지휘해 성공적인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했던 귄터 뤼첸스 제독을 작전의 책임자로 임명하고, 비스마르크의 함장인 린데만 대령과의 조율을 명령합니다. 

비스마르크의 초대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Ernst Lindemann) 대령의 모습. 포술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따뜻한 성품으로 부하들에게 인기가 많은 지휘관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독일 잠수함대 사령관인 '카를 되니츠' 제독과의 협조를 통해, 비스마르크의 작전을 보조할 유보트의 추가적인 투입에도 전력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함 비스마르크에는 잠수함대에서 파견나온 연락장교를 함께 승선시켜, 유사시에 잠수함의 즉각적인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지요.


  이러한 만반의 준비아래, 초거대전함 비스마르는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대서양으로 출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위장도색이 칠해진 KMS 비스마르크의 모습. 거대하고 유려한 실루엣의 이 최신예 전함은, 독일 해군의 자존심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도 이를 좌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영국은 이미 비스마르크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미 지난번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에게 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기에 이 전함을 찾아내 격멸할 요량이었습니다. 


  영국은 항공정찰을 통해 덴마크와 북해 인근을 샅샅히 수색하였고, 영국 본토에 정박해있는 홈플릿의 수많은 전함과 항공모함, 순양함들도 긴급히 출격할 채비는 마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체급이 워낙 거대했기도하고, 베일에 쌓여있는 최신예 전함이었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 해군의 자랑, 전함 HMS 후드(Hood)도 출격준비를 마쳤습니다. 영국 해군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전함이 비스마르크의 적수가 되어줄 터였습니다. 

영국 해군의 자랑이자 영국 해군 최대의 전함인 '무적의 후드', HMS 후드의 모습. 비록 20년이 넘은 구식전함이었지만, 당시로서 그렇게 뒤쳐지는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해군의 항공기들은 얼마 지나지않아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을 발견하고 폭격을 시도하였지만, 악천후와 야음이라는 조건을 틈타, 비스마르크는 피해를 받지 않고 덴마크 해협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합니다. 영국 해군은 이제 이 2척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돌입하였고, 세계 최대의 전함을 잡기 위한 영국 해군의 전력투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비스마르크(앞쪽)과 프린츠 오이겐(뒷쪽)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




양측 해군 최강 전함의 대결 : 후드 vs 비스마르크


  양측의 함대는 항해를 지속하던 와중, 5월 24일 새벽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적을 먼저 식별한 것은 독일 함대 측이었습니다.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던 영국 전함의 연기를 식별한것이었고, 전투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독일 함대가 예측한 것과 달리, 영국 해군은 소규모가 아니라 영국 해군의 자랑, '후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함대의 위치선정은 독일측에게 더 유리하였고, 영국이 이 위치선정을 뒤집으려고 시도하면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측 전함의 함교는 각각 사격제원을 계산하느라 분주히 움직였고, 약 10여분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새벽의 대서양 바다마저도 조용히 이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첫 포문을 쏘아올린것은 영국의 후드였습니다.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의 첫 포탄이 새벽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그 옆의 또다른 영국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포문을 열며 이 공격에 합류하였습니다. 

영국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와 치열한 교전중인 전함 비스마르크의 모습.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됨.

  뒤이어 독일 함대에서도 대응 포탄이 발사됬습니다. 독일 함대의 입장에서는 교전의 시간을 빨리 줄여야 했습니다. 영국의 후속 전력이 오기 전, 즉각적으로 이들과의 교전을 성공적으로 펼친 뒤 이탈해야 했으니까요. 약 10여분 간, 양측은 서로 명중탄을 내지 못한채로 무수한 포탄을 주고 받는 공방전을 펼쳤습니다. 관측반은 바삐 움직였고, 재장전을 위한 포탑운용수들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후드에게 38cm 주포의 거대한 일제사격 실시중인 전함 비스마르크의 모습. 독일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됨.

  교전이 시작된지 약 10여분이 지난 새벽 6시 경, 비스마르크의 다섯번째 주포 일제 사격이 실시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38cm 주포의 일제 사격은 새벽 밤하늘의 공기를 가르고, 영국 함대의 기함이자 자랑, 후드에게 도달, 후드의 후방 마스트에 직격했습니다. 후드 최대의 약점으로 손꼽혔던 측면장갑에 제대로 명중된 이 포탄은, 후드의 후미 탄약고를 폭발시켰고 순식간에 대폭발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이 거대한 전함 후드는 약 3분만에 빠르게 침몰했고, 약 1,500여명에 달하던 대부분의 수병들과 승조원들이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생존자는 폭발의 충격으로 인해 바다로 튕겨나간 단 3명 뿐이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침몰해버린 영국 순양전함 HMS 후드(hood)의 모습을 그린 기록화.

    독일 해군에게는 굉장한 행운이, 영국 해군에게는 말할 수 없는 절망이 찾아왔습니다. 양측 모두가 확실한 침몰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불기둥과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닌, 주포 사격을 주고받던 교전 초반의 '럭키샷'으로 영국 해군의 자랑인 후드가 대서양 아래로 사라져 버린 것은 양측 모두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홀로 남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몇 분간 교전을 지속했습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비스마르크의 치명적이고 정확한 주포 사격에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스마르크의 일제사격이 그대로 전함의 지휘부가 탑승한 '함교'에 그대로 직격, 함장과 조타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함교 근무자가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지속된 교전에 의해 주포탑이 모두 기능고장을 일으켰고, 후방주포탑 1개소만이 외로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상을 입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함장 리치 대령은 퇴각 명령을 내렸고,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사격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겨우 사거리 밖으로 퇴각하는 데 성공합니다.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의 뒷모습. 비록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에 공을 세운 뒤, 일본군을 막기 위해 태평양으로 떠납니다.

  이에 독일 해군은 다시 정상침로로 변경, 다시 대서양을 향한 항행을 계속했습니다. 완벽한 독일 해군의 압승이었습니다. 후드의 침몰은 독일 해군에게는 '해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을, 영국 해군에게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그 불안감 이후 다른 감정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노, 그리고 복수였습니다. 이제, 영국 주력함대의 모든 함선은 혈안이 되어서 찾아 나섰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다시 대서양의 안갯속으로 모습을 숨긴채, 망망대해를 향해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집결하는 영국해군,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귀환 결정


  그러나 성공적인 작전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다 죽어가면서도 날린 포탄이 비스마르크의 좌현에 명중했고, 함선 자체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심각한 연료누출 사태를 야기하고 맙니다. 이대로는 대서양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연료가 부족해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기에, 많은 고심끝에 비스마르크는 독일 점령 하 프랑스로 귀환하기로 결정합니다. 

함선의 앞부분이 일정부분 가라앉은채로 항행하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좌현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위해 우현을 일부러 침수시키기까지 했습니다.

  프린츠 오이겐은 대서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을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비스마르크는 이제 2가지의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프린츠 오이겐이 무사히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게 영국 해군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안전하게 살아남아 프랑스로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모순된 임무를 해내야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비스마르크는 짓눌렀습니다. 




세계 최강 영국 해군, 복수에 나서다!


  영국 해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서양 인근에서 수송선단의 호송임무를 맡고 있던 다수의 순양함들에게, 지금 즉시 호위 임무를 종료하고 즉각적으로 비스마르크를 찾아 나설 것을 명령했습니다. 또한 영국 해군의 잠수함들은 프랑스 해안 가까이에 배치되었습니다. 이들은 비스마르크가 영국 해군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 프랑스에 도착했을 시, 최후의 저지 수단으로 공격에 나설 예정이었습니다. 


  5월 24일 오후 초저녁,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다시 지평선 너머의 전함을 발견합니다. 순양함 서포크와 노포크가 도망쳐온 그 방향에서, 저 멀리 비스마르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복수의 포격을 감행했고, 비스마르크도 주포를 쏘아붙이며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명중탄을 내지는 못하였고, 비스마르크는 계속해서 프랑스 방향을 향해 남동쪽으로 항행하고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24일, 영국 해군 항공모함 HMS 빅토리어스(Victorious)의 갑판 위에 올려져 있는 소드피시 825 편대의 모습. 이들이 반격작전의 주역이었습니다.

  같은 날 자정에 가까운 밤, 영국 항공모함 HMS 빅토리어스(Victorious)에서 발진한 '소드 피시' 뇌격기 8대가 밤하늘을 가르며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비스마르크에게 굵직한 어뢰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었지요. 복엽기인 한계를 지닌 이 비행편대는 저속의 속도로 밤하늘을 가르면서 비스마르크를 향했습니다. 이후, 이들이 고도를 낮추어 수면과 가까이 날기 시작했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영국 해군의 뇌격기, 소드 피시(Swordfish)의 비행모습. 당시로서도 매우 구시대적인 설계인 복엽기 형태의 외형과, 동체 아래에 매달려있는 어뢰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소드피시 편대가 공격을 시작하던 바로 그 시각, 비스마르크에서도 이상 징후를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면서 자신들에게 접근해 오는 편대를 발견한 비스마르크의 대공포는 일제히 밤하늘을 향해 자신들의 총탄을 뿌려댔습니다. 아직 독일 공군의 작전영역에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외로이 대공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빠르게 대응하던 대공포와는 다르게, 천천히 움직이던 비스마르크의 38cm 주포 또한 밤바다를 향해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발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 위에 착탄은 주포탄은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물기둥은 거대한 장애물로, 영국 뇌격기의 비행을 방해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스마르크의 응전에도 불구하고, 소드피시 복엽기들은 특유의 저속 운동성을 바탕으로 공격코스를 성공적으로 비행했고, 7발의 어뢰 중 1발이 비스마르크의 우현을 강타했습니다.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영국 해군의 어뢰공격을 피하면서 격한 기동을 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게 얻어맞은 그 자리가 다시 벌어지면서, 비스마르크는 다시 많은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이후 다시 자신의 숙적,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마주친 비스마르크는 포탄을 주고받으면서 저항합니다. 비스마르크는 이 교전에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 망망대해에서 그 어떠한 지원도 없이 영국 해군 전체와 분투하고 있는 외로움에 사무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전투 이후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마지막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서 다시금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하늘에 치명적인 적이 나타났습니다. 영국 해군의 소드피시 뇌격기가 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전, 그리고 종장


항진 중인 비스마르크. 서로 분리되기 이전의 프린츠 오이겐에서 촬영된 사진.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위용이 인상적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던 오후 20시경 소드피시 편대가 비스마르크로 고도를 낮추면서 접근했고, 다시 한번 뇌격을 시도했습니다.  이 어뢰 중 1발이 비스마르크의 좌현의 정중앙에 명중하였고, 다른 한 발은 비스마크르의 꼬리 쪽을 강타했습니다. 특히 이 꼬리 쪽의 타격은 비스마르크에게 매우 아쉬운 한 방이었는데, 어뢰를 피하려고 과격한 회피기동을 하던 중,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가 왼쪽으로 꺾인 채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거대한 이 강철의 전함은, 이제 약 10여 노트의 느린 속도로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 수밖에 없게 돼버린 것입니다. 


  뤼첸스 제독은 독일 해군 사령부에 아래와 같은 전문을 보고합니다.

"더 이상 배를 조작할 수 없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해/공군에서 운용한 수상기인 Ar - 196의 발진 모습. 함선에서 캐터필러를 통해 발사하여 날려 보내는 방식이었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담담하게 그들의 최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순양함급 이상의 함선들은 정찰과 정확한 포격 유도를 위해 함선마다 정찰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승조원들은 그 항공기에 자신들의 유서와 편지,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항해일지를 포함한 중요한 자료들을 실었습니다. 이 항공기 1대 만이라도 띄워서 고국으로 보내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기상악화와 더불어 캐터필러의 고장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지만요. 


이제,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27일 오전 9시, 영국 전함 'HMS 로드니(HMS Rodney)'가 정적을 깨고 첫 포탄을 발사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보기 힘들었던 주력 전함들 간의 포격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비스마르크 주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비스마르크의 포탄은 아슬아슬 위험천만하게 로드니의 함교 근처에 떨어졌고, 양측은 더욱 맹렬하게 서로에게 포탄을 쏟아부었습니다. 

HMS 킹 조지 5세에서 촬영한 격렬한 교전의 현장. 우측에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것이 HMS 로드니이고, 사진의 좌측 끝부분에 연기에 휩싸인 비스마르크가 보입니다.

  영국 전함 'HMS 킹 조지 5세(HMS King George V)'도 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자매함인 킹 조지 5세도 주포탄을 쏘아붙이며 비스마르크를 향해 항진했습니다. 추격전 초반부터 맹활약했던 순양함 노포크, 그리고 수색작전에 참가했던 순양함 'HMS 도셋셔(HMS Dorsetshire)'도 이에 합류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제 온몸으로 그들의 포탄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로드니에서 쏘아 올린 주포탄이 비스마르크의 갑판과 함교에 각각 명중했습니다. 주요 고위 지휘관이 죽거나 다치면서, 비스마르크의 지휘체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뤼첸스 제독도 이 사격으로 인해 그만 현장에서 전사하고, 린데만 함장도 중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영국 전함들의 사격으로 인해 비스마르크가 보유한 4개의 포탑은 차례차례 제압되기 시작했습니다.

비스마르크를 향해 떨어진 포탄들이 만들어 낸 물기둥들의 모습. 물기둥들의 맨 오른쪽에, 연기를 뿜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영국 순양함 HMS 도셋셔에서 촬영됨.

  비스마르크가 이렇게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동안, 지휘권이 무너진 비스마르크 함 내에서도 최후를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남아있는 장교들이 배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윽고 배를 자침 시키기 위한 준비에 돌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명령계통으로 지휘권을 인수받아 이를 행사한 것이 아닌, 현장에서 몇몇 장교들의 독단으로 결행된 일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아쉬운 결정으로 인해 승조원들은 유기적인 대응을 포기하고, 각자도생으로 각각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더 이상 비스마르크는 유기적인 군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생존의 무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HMS 도셋셔를 향해 헤엄쳐오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생존자들의 모습. 비스마르크 침몰 이후 HMS 도셋셔에서 촬영됨.

  영국 해군의 입장에서 이 가라앉지 않는 전함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결국 순양함 도셋셔에게 뇌격을 지시하고, 도셋셔에서 발사된 어뢰가 비스마르크의 함체를 강타했습니다. 서서히, 비스마르크의 함체가 선미부터 가라앉기 시작하며 선수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전투를 시작한 지 약 1시간 30분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화재와 함께 가라앉고 있는 비스마르크의 모습. 맨 오른쪽 뾰족한 부분이 바로 전함의 가장 앞쪽인 선수 부분으로, 이미 크게 들어 올려져 있다. HMS 도셋셔에서 10시 36분 촬영

  그렇게, 비스마르크는 대서양의 심해를 향한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마치며...


  이렇게, 2차 세계대전 도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전함 간의 혈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함 간의 포격전에서 양측이 모두 느낀 바는 동일했습니다. 이제 크고 육중한 전함의 시대는 가고, 항공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이는 말레이 해전에서 당하고만 영국 해군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독일 해군도, 이 작전을 마지막으로 적극적은 수상함대의 작전은 위축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 - 티르피츠의 원투펀치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상황. 이제 독일은 마지막 남은 대형전함이자 비스마르크의 자매함인 KMS 티르피츠(Tirpitz)의 안전을 확보하고, 남아있는 수상함대의 최대 존재의미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U-보트가 대서양으로 출격하여 영국과의 통상파괴전을 지속해야 했습니다. 오직 U-보트만이 마음 놓고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대서양에서의 통상파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KMS 프린츠 오이겐의 승조원들은, 비스마르크의 침몰 소식을 듣고 매우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충격에 빠져있을 새도 없이, 함선을 정비하고 차후 작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미, 독일 해군의 수상함대에겐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 해군의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프랑스의 브레스트 항구에서, 그들은 또 다른 기습작전을 준비합니다. 


영국 해군의 코앞에서, 완전히 허를 찌르는 새로운 기습작전을...



(8부에서 계속...)


본 글은 제가 연재했던 '비스마르크 5부작'의 내용을 짜집기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비스마르크의 분투와 더 자세한 일화를 알고 싶으신 분은 저의 브런치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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