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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May 14. 2024

15부 : 항공모함의 진검승부! - 미드웨이 해전!

전환점이 된 항공모함끼리의 결전!

  1941년 12월 있었던 진주만 공습 이후의 태평양의 전세는 일본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주요 전함을 진주만에서 모두 잃은 미 태평양 함대는 전장의 주도권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에 반해 진주만 기습과 동시에 벌어진 싱가포르 전투 등에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둔 일본군은 차후 새로운 공격목표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진주만 기습과 동시에 벌어진 일본군의 싱가포르 공격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선전포고 없이 이뤄진 공격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미군은 일본 본토에 대한 깔짝거림(...)과 폭격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결국 그 유명한 둘리틀 공격대에 의해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전투기도 겨우 뜨고 내리는 항공모함에서 거대한 폭격기를 발진시켜 도쿄를 공습하는 것이었는데, 폭격 이후엔 중국으로 비행한 뒤 그곳의 항일 중국군에게 운명을 맡긴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과감한 이 공격은 성공으로 돌아갔고, 일본은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둘리틀 공격대의 모습. 항공모함 갑판 위에 줄지어 서있는 폭격기 부대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항공기에서 무게를 줄인 폭격기를 띄운다는 발상이 성공하면서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분명히 진주만에서 미 해군 주력을 격멸하고 나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협상은커녕 오히려 미국은 복수를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일본 해군은 이를 진주만에서 미 항공모함을 격침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고, 다시 한번 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끌어내어 격침시켜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와중에서 일본 내부에서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각각 다른 의견을 내고 있었는데, 육군의 경우에는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한 중일전쟁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고, 심지어 해군이 잘 나가는 꼴을 못 보겠다는 노골적인 움직임마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 육군은 얄루샨 열도 공격 등지를 주장했고, 이에 반해 일본 해군은 남방으로의 진출을 더욱 강하게 건의하였습니다.

일본 연합함대의 주력 전함의 실제 모습. 일본 함대는 여전히 미 태평양 함대를 압도하고 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진주만 공격을 입안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일본 해군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은,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여 섬을 점령함과 동시에, 이를 막기 위해 달려올 미 항공모함 함대를 찾아 격멸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는 육군과 해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해군 내부에서 야마모토 제독이 가지는 권위는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결국, 미드웨이 작전은 이렇게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일본 해군에서 항공론자이자 진주만 기습을 입안한 작전통,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개전 전부터 주장한 인물이었습니다.

  미드웨이 공략을 위해, 일본 해군은 자신들의 자랑인 항공모함 4척을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합니다. 진주만 기습에서부터 큰 공을 세운 일본 해군의 상징과도 같은 항공모함들이었습니다. 아카기(赤城), 카가(加賀), 소류(蒼龍), 히류(飛龍)의 4대의 항공모함과 2척의 전함, 그리고 다수의 보조함들로 이뤄진 함대는 미드웨이를 위해 출항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항공모함 부대의 기함, 아카기의 모습. 태생자체가 전함으로 태어난 함급이라, 거대한 함체가 인상적인 항공모함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항공모함들 중에서도 특히 이들이 가지는 위상은 특히나 더욱 엄청났습니다. 아카기와 카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최초엔 전함으로 건조되던 도중 항공모함으로 개장한 탓에 그 크기가 가지는 위압감이 남달랐습니다. 게다가 소류와 히류의 쌍둥이들 또한 빠른 속력과 균형 잡힌 성능으로 함대의 주력으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요. 


  그러나 진주만 기습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작전 보안을 지키는데 완벽히 실패하였습니다. 무선통신에서는 물론이고, 휴가를 나간 장병들마저 공공연하게 "우리는 미드웨이로 간다"는 이야기를 해댔습니다. 오죽하면 미군 측에서도 "아니 이 정도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거면, 미드웨이로 온다는 건 속임수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개전 이후 계속된 승리가 일본에게 내려준 커다란 페널티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미드웨이 섬의 방비를 철저히 하는 한편, 일본군의 암호해독에 열을 올리고 계속해서 첩보를 수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에서 여러 가지 우연들도 겹친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결과는 이러한 노력들이 바탕이 되었겠지요.


  어찌 되었건, 일본 해군은 이제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였고, 이를 막기 위한 미 해군의 항공모함은 USS 엔터프라이즈와 USS 요크타운, 이 2척이 전부였습니다. 이들은 미드웨이의 바다와 하늘에서 일본 항공모함을 맞아 격전을 치르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미드웨이 섬을 중심으로, 이들은 강력한 일본 항공모함 함대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1942년 6월 4일 새벽, 일본 함대는 미드웨이 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일본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미드웨이 섬을 강타했지만, 이미 일본군의 공격 첩보를 알고 제대로 준비한 미군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일본 해군은 미 항공모함을 식별하지 못했고, 그래서 빠르게 미드웨이 섬을 공략하기 위해 더욱더 열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현장에서 일본 함대를 통솔하던 사령관은 진주만 기습을 지휘했던 나구모 주이치 제독이었습니다. 그는 세밀하고 정교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지만, 자신의 페이스대로 전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는 타입의 장교였습니다.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기 위해 항공기에 지상공격용 폭탄을 장착하던 도중, 미 항공모함 함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함선공격용 어뢰로 바꾸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미드웨이 섬에서 날아오른 항공기들, 그리고 숨어있던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이 모습을 드러내고 항공기들을 발진시켰습니다. 이윽고, 미드웨이 근해의 바다에서는 치열한 항공전이 전개되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 이전에 있었던, 산호해 해전에서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USS 요크타운의 모습. 

  양측의 함대는 이제 망망대해에서 서로의 항공모함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미군도 일본군도 모두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미군의 경우, 미드웨이 섬에서 날아오른 항공대 중 몇몇은 일본 해군을 찾지 못하고 연료 부족으로 바다 위에 비상착륙을 강행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망망대해에서의 전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양측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선공을 시작한 것은 미국 측이었습니다. 미 항공모함에서 날아든 항공기들은 각각 일본의 항공모함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 항공기들은 일본 함대에 명중타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장 상황이 만들어낸 아비규환 때문에, 공격을 시도하는 항공대끼리도 혼선을 빚었기 때문이었지요. 

  미 항공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일본 함대에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미 항공대 뇌격기들이 낮게 깔린 채로, 죽을 각오로 덤벼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제로센 전투기에 의해 '완벽하게' 격멸되었고, 공격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USS 엔터프라이즈에서 날아오른 급강하 폭격기 부대가 거의 전장에 도착한 것이었지요. 

  일본 해군 전투기들 대부분이 낮게 깔려오는 미군 뇌격기를 저지하기 위해 낮은 고도에서 급격한 비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높은 상공에서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 부대가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운명을 가른 5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제로센 전투기들은 이를 보고 황급히 고도를 상승하였지만, 너무 뒤늦은 발악이었습니다. 이렇듯 미군은 하늘이 내린 정확한 타이밍이 겹치는 행운의 순간을 노릴 수 있었습니다. 


  카가가 미군의 급강하 폭격을 거의 전부 두드려 맞는 동안, 미군 항공대는 서로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미드웨이 상공에서 여러 항공대가 겹치면서 벌어진 혼선이었습니다. 공격대를 나누어 진행했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항공기들이 카가를 향해 급강하해버리는 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미에 있던 몇 대의 항공기는 급강하 직전 이 모습을 보고 강하를 멈추었고, 카가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카기를 때린다!"라고 목표를 수정, 아카기를 향해 강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3대로 이뤄진 이 아카기 공격대는, 항공모함을 공격하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소수였습니다. 


  카가가 불타오르는 동안, 아카기에 급강하한 3발의 폭탄 중 1발은 아카기의 갑판에 제대로 직격 했습니다. 나구모 제독의 무장 변경 명령으로 인해 각종 폭탄과 폭약이 굴러다니던 갑판과 격납고 내부에 떨어진 이 1발은 차례로 유폭을 일으키면서 아카기를 불태웠습니다. 나머지 2발은 아쉽게도 아카기의 바로 옆 바다에 떨어졌는데, 이 중 1발은 아카기의 함교 근처에 떨어지면서 함교의 통신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거대하게 솟아오른 물기둥이 함교를 덮치면서 나구모와 참모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을 포함해서요.

진주만 공격 당시 아카기의 함교에서 참모장교들과 함께 지휘 중인 나구모 제독의 모습(가운데). 그는 수뢰전와 조타의 전문가로, 위기상황에서 직접 키를 잡아 조함 하며 분투하기도..

  USS 엔터프라이즈의 항공기들이 이런 전과를 올리는 동안, USS 요크타운의 항공기들도 새로운 목표물을 포착했습니다. 카가가 폭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던 항공모함 '소류'는, 자신들의 공격기를 발진시키기 위해서 기동 중이었습니다. 카가가 불에 휩싸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던 소류의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도 항적을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요크타운의 항공대였습니다.


  소류는 급히 방향을 틀며 대공사격을 퍼부었고, 요크타운의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결국 2발의 급강하 폭격을 함 중앙과 꼬리 부분에 직격 당하고 말았고, 서서히 함체가 기울어지면서 소류도 완전히 전투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카가, 아카기, 소류는 이제 전투력을 모두 상실해버리고 말았고, 돌아갈 곳이 없어진 일본 항공기들은 자신들이 항모가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망연자실 상공을 날아다닐 뿐이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 '운명의 5분'을 모습을 담은 모형 디오라마. 연기를 뿜고 있는 거대한 함선 3척이 바로 각각 소류, 아카기, 카가입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이었습니다. 

  미군은 이러한 대성공에 쾌재를 불렀습니다만, 아직 일본 항공모함인 '히류'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3척이 모두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본 '히류'는 즉각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히류에서 날아오른 일본 항공기들은, 공격을 마치고 요크타운으로 돌아가는 미군 폭격기를 발견하고 은밀히 그 뒤를 밟기 시작합니다. 그대로 비행하기를 수십 분, 그들의 눈에는 요크타운이 식별되었습니다. 


  복수라도 하듯이, 히류의 항공대는 USS 요크타운을 향해 폭격과 어뢰공격을 시도했습니다. 1차 공격의 폭격은 요크타운이 잘 버텼지만, 2차 공격의 어뢰공격은 회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주만 기습에서부터 착실히 경험을 쌓아온 이들은 연계된 공격을 통해 요크타운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요크타운은 결국 어뢰에 피격되고 말았습니다. 요크타운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점차 피해를 복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 항모 '히류'의 항공기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USS 요크타운의 모습. 요크타운은 분투했지만, 결국 격침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히류를 지휘하고 있던 일본의 야마구치 다몬 제독은 한 가지 실수를 범하는데, 그것은 요크타운에게 시도한 2번의 공격에 있어서 1대는 요크타운, 다른 1대는 엔터프라이즈에 공격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미 항모 2척을 모두 기동불능으로 만들었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오후 늦은 시각, 야음을 통해 마지막 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만약 미 항모 2척을 모두 격침한다면 무게추를 간신히 돌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재공격을 준비하는 바로 이 시각, 미 항공대가 다시 히류의 상공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히류를 향해 수십 발의 급강하 폭격을 퍼부었고, 말 그대로 히류는 난타당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판만 집중적으로 얻어터지는 관계로, 갑판이 날아가 항공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는 것 외에 항해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히류가 미 해군의 급강하 폭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격한 회피기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류의 운명도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또 미군의 항공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의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불길은 더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히류는 바다 위에 불지옥으로 변해버렸고, 결국 일본군은 히류를 포기하고 자침처분 결정했습니다. 순식간에, 마지막 남은 히류마저 이렇게 허망하게 침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일본군에게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예인 되고 있던 요크타운이 끝끝내 격침되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해군 지휘부는 경악했습니다. 항공모함 4척이 모두 침몰당했다는 소식은 일본 해군의 작전반경이 축소되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해군은 연합함대를 총집결시키고, 미 함대를 향해 야간 전을 걸 요량으로 미 함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히류가 침몰하지 직전의 모습. 이미 갑판 앞쪽은 불타 없어져 내려앉았습니다. 일본 경 항공모함 호쇼에서 날아오른 정찰기에서 촬영됨.

  그러나 근접 전을 벌이기에 일본군에 비해 전력이 열세였던 미 해군은, 일본 항모 4척의 침몰을 확인한 뒤 빠른 속도로 퇴각하였습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원거리에서 항공전을 벌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반면에 일본 해군은 다른 지역의 항모들이 합류하기 전까지는 항공전을 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 해군은 6월 5일 야간, 미드웨이 공격작전을 모두 중지, 포기하고 전장에서 이탈하며 미드웨이 해전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의 여파로, 일본 해군은 태평양 전선에서의 주도권 일부분을 미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아직 일본 해군의 주력 연합함대가 남아있었지만, 항모 4척을 잃었다는 것이 매우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미 해군은 아직도 진주만에서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력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 미드웨이 해전의 승리로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미군은 태평양 지역에서의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그 반격은 가장 먼저, 일본군이 호주를 위협하기 위해 전진했던 솔로몬 제도, 그중에서도 과달카날 섬에서 시작될 것이었습니다.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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