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사람은 자유롭지 않다. 공정한 세상 가설
몇 해 전, 회사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단행됐습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한 부서들이 내부 공고를 냈고, 많은 직원들이 새롭게 개편되는 조직에 자발적으로 이동 신청을 했습니다. 능력 있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자리에서 더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조직 간 협의가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이동이 거부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실하게 일해온 이들은 팀에서 신뢰받는 핵심 인재였지만, 그 신뢰는 곧 구속으로 작용했습니다.
지금 이 타이밍에 너 빠지면 팀이 흔들려.
네가 없으면 이 업무 누가 해?
지금은 안 돼, 나중에 기회가 또 올 거야.
결국 그들은 기존 조직에 남아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업무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어렵게 낸 연차 중에도 업무 전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내 교육, 복지 프로그램, 멘토링 같은 제도에도 쉽게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미 조직을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해 왔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희생을 감수할 것을 기대받았습니다.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많은 자기개발 콘텐츠는 조직에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책임감 있게 일해온 사람들이 가장 덜 보호받고, 가장 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왜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많은 기회를 놓쳐야 했을까요?
애초에 회사라는 조직에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조직은 본질적으로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개인이 아니라, 의사결정 프로세스, 재무 시스템, 인사 정책, 조직 문화 같은 복합적 구조 위에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어떤 개인도 영구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연차나 교육 참여, 직무 변경은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사는 다릅니다. 직원은 언제든 스스로 퇴사할 수 있습니다. 그건 조직이 제어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로 회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애초에 누구든 떠날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시스템을 설계합니다. 특정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리스크로 간주되며 개선의 대상이 됩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결국에는 '있으면 좋은 사람'일뿐, 없으면 조직이 멈추는 사람으로 시스템이 설계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 같았던 사람 없이도 회사가 잘 운영된 사례는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조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성장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후, 애플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서 물러난 이후, 회사는 클라우드와 AI 사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부재한 이후에도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토스, 쿠팡의 공동 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났을 때도 플랫폼은 흔들리지 않았고, 서비스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처럼 시스템은 항상 사람 없이도 작동할 수 있도록 진화합니다.
자기개발 콘텐츠의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돼라'는 말이 달콤한 이유는, 언젠간 보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스스로 덧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정 세계 신념(Just-World Hypothesis)의 작동 방식입니다.
공정 세계 신념은 세상은 결국 공평하다는 믿음입니다. 지금 손해 보더라도, 결국 좋은 사람이 보상받고, 나쁜 사람은 대가를 치를 거라는 신념이죠. 이 믿음은 때로는 현실을 오해하게 만들어 부당함도 견디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연인은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참으며 헌신합니다. 힘들어도 "이 사람은 결국 내 진심을 알 거야"라는 생각으로 버팁니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되레 관계는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기도 하죠.
어떤 부모는 "내가 이만큼 희생해서 키웠는데, 자식이 효도하겠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다른 가치관으로 자라고, 부모의 기대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커진 부모의 실망은 자식과의 관계를 멀어지기도 합니다.
사회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법을 지키고, 세금을 성실히 내면 언젠가 나에게 혜택이 돌아오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불공정한 정책이나 복잡한 절차일 때도 있습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보상받을 것이다'라는 전제 아래 희생을 견디며 헌신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만큼 버텼으니, 언젠가는 알아주겠지라는 감정은 시스템의 운영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는 건 여전히 중요한 일입니다. 다만 그 열심이 나를 조직에 고립시키고, 점점 더 많은 일을 혼자 떠안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결국 나를 더 빨리 소진시킬 뿐입니다.
내가 없으면 팀이 멈추고, 인수인계도 어렵고, 내가 맡은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 그 열심은 조직 내에서 나의 자유를 줄이는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가능성을 제한하고, 다른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없애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없어도 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정보와 책임을 공유하며, 누구든 내 역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열심은 다릅니다. 이것은 나를 조직에 묶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보장해 주는 준비입니다.
묶이는 열심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없으면 팀이 멈추지 않을까?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지금 나만 좀 더 참으면 일이 더 편하게 굴러가지 않을까?
그러나 움직이는 열심은 이렇게 질문을 다시 설계합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무리 없이 팀이 돌아갈 수 있도록, 문서와 매뉴얼을 충분히 남겨두고 있는가?
내가 가진 정보나 기술이 특정 부서나 사람에게만 의존되지 않도록 공유하고 있는가?
나 없이는 안 되는 구조를 만들기보다, 나와 함께할 때 더 잘 되는 환경을 설계하고 있는가?
이것이 묶이는 열심에서 움직이는 열심으로 전환하는 진짜 전략입니다.
"나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에서 "나는 그 열심으로 나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는가?"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기보다,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변화를 수용하고, 협업에 기여하고, 지식과 책임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커리어 전략이며, 주도성 위에 세운 열심의 올바른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