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회, 연어초밥, 연어타르타르, 연어카르파초, 코코넛커리연어
살아가면서 주기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하루 여섯 시간쯤 잔다.
그 이상 잔다고 해서 피로가 더 풀린다는 느낌은 없다.
보통 두 끼를 먹는다.
그 이상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
이쯤이 사람 구실을 하는 최소치다.
매일 아침 전동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선다.
익숙한 각도, 같은 순서로 깔끔히 마무리한다.
면도를 마치고 샤워를 하면, '나'라는 존재가 다시 사회에 투입될 준비를 마친다.
부스스했던 정신과 얼굴을 인간의 형상으로 복구하는 절차다.
손톱은 2주에 한 번, 머리카락은 3주에 한 번 자른다.
미루면 감각이 먼저 알아챈다.
소매 끝이 걸리고, 눈썹 근처가 간질거린다.
불편해지기 전에 다듬고 정리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기계부터 챙긴다.
봄에는 정수기 필터를 교체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청소하며, 겨울에는 가습기를 꺼내 닦는다.
새 계절을 맞을 준비다.
그리고 때가 되면 세금 신고, 공과금 납부, 건강검진이 돌아온다.
매년 초엔 사실상 통보에 가까운 연봉 협상도 진행한다.
귀찮지만, 이 모든 걸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사회 속 사람'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왜 매번 반복되는지도 예전에는 몰랐다.
지금도 사실은 귀찮다.
하지만 이제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는 건 돌봐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몸이든, 관계든, 마음이든 주기적으로 돌봐줘야 한다.
그래야 덜 삐걱거린다.
살아간다는 건 이런 사소한 반복을 괜찮게 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이 늘어난다는 건,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맛과 체내 시스템이 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이다.
계약이란, 어떤 의무를 지게 되는 책임감을 전제로 맺는 것이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말은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나는 주기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순댓국집에 가서 얼큰 순댓국을 '특'으로 먹어줘야 한다.
빨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얼큰한 국물에 풍성한 내장과 순대를 푹 담아 퍼먹는다.
특히 해외에서 귀국하게 되면 무조건 얼큰 순댓국으로 여독을 푼다.
회도 빠질 수 없다.
내 고향 충주에는 민물횟집이 많다.
야채를 듬뿍 넣고, 초장에 콩가루와 참기름, 다진 마늘을 풀어 비벼 먹는 향어 비빔회는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르는 별미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향어회 파는 곳을 보기 어려워 아쉬움을 바닷고기로 달랜다.
광어회가 기본, 가을엔 전어, 겨울엔 방어, 가끔은 참치도 찾아줘야 한다.
맘스터치의 싸이버거, 맥도날드의 더블불고기버거, 이삭토스트의 햄치즈토스트도 주기적으로 입맛을 당긴다.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음식 중 가장 주기가 짧은 건 단연 라면이고, 가장 주기가 긴 음식은 피자다.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다.
아내에게도 있다.
아내에게 반드시 주기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음식으로 치킨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치킨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연어다.
어제, 아내의 연어 게이지가 드디어 바닥을 찍은 모양이다.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오빠, 내일 연어 주문해 먹자!
점심으로 포케에 연어를 추가해서 먹었는데 그걸로는 도무지 충전이 안 됐다고 한다.
아내에겐 결혼 전부터 꾸준히 애용해 온 스마트스토어가 있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도착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빠른 연어 대량 공급이 절실했다.
그래서 곧장 1kg을 주문했다.
연어를 좋아하는 또 다른 우리 집 식당 단골이 있다.
바로 내 동생이다.
아내 다음으로, 메뉴판 없는 우리 집 식당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손님말이다.
그래서 동생까지 초대하기로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두 손님을 위한 연어 파티가 열리게 되었다.
손님 두 명은 거뜬히 모실 수 있는 연어가 준비됐다.
살짝 물기만 제거하고, 곧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사실 두 손님은 그냥 회로만 썰어줘도 충분히 행복해할 사람들이다.
싱싱한 연어 몇 점에 간장만 있어도, 이미 식탁은 파티 분위기다.
하지만 문제는 나다.
다른 모든 회를 좋아하지만 연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물컹한 식감과 기름진 맛이 내 입에는 썩 맞지 않는다.
그러니 온전히 생 연어회로만 구성된 식탁은 나에게 다소 버겁다.
그래서 오늘은 연어를 주제로 다양한 요리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요리는 연어타르타르다.
타르타르는 쉽게 말해 다진 음식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탕탕이에 가깝다.
주재료도, 만드는 방식도 천차만별인 요리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식탁에서는 잘게 다진 재료를 예쁘게 쌓아 올려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메뉴로 자주 사용된다.
먼저 아보카도에 소금, 후추, 레몬즙을 뿌려 미리 간을 잡아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몬즙 속의 산이 연어를 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몬이 들어간 아보카도와 연어는 반드시 먹기 직전에 만나야 한다.
파와 양파는 매운맛을 빼기 위해 30분 정도 찬물에 담갔다가 곱게 다져준다.
연어도 적당히 다진다.
너무 잘게 썰면 식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다진 연어, 파, 양파를 섞고 간장, 참기름,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해준다.
이대로 기다렸다가 먹기 직전 아보카도와 섞어 접시에 담아내면 된다.
두 번째 요리는 코코넛커리연어다.
연어 특유의 기름짐을 코코넛의 부드러움과 카레의 향신료가 알맞게 감싸주는 느낌의 요리다.
먼저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양파, 마늘, 생강을 넣어 약불에서 천천히 향이 올라올 때까지 볶아준다.
향이 올라오면 카레가루와 코코넛 밀크를 넣고 살짝 걸쭉해질 때까지 조린다.
사실 그냥 이 커리소스에 밥만 비벼 먹어도 맛있다.
연어는 따로 익힌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약불로 살짝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그리고 따뜻해진 올리브유를 숟가락으로 떠서 연어 위에 반복해서 끼얹는다.
이 과정을 10분간 반복하여 연어를 살짝 익혀준다.
접시에는 커리 소스를 먼저 넓게 깔고 그 위에 연어를 조심스럽게 얹는다.
마지막으로 송송 썬 부추를 뿌려주면 완성이다.
세 번째 요리는 연어카르파초다.
카르파초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생고기 요리 중 하나다.
고기든 생선이든, 얇게 썰고, 신선한 오일과 산미 있는 드레싱을 곁들여 먹는 요리다.
소스는 간단히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 후추를 잘 섞어 만든다.
참고로 이 소스는 광어회에 찍어 먹어도 아주 근사하다.
연어는 얇고 넓게 썬다.
그 위에 소스를 뚝뚝 흐를 만큼 듬뿍 뿌려야 카르파초다운 맛이 난다.
아삭한 식감을 더해줄 양파까지 곁들이면 끝이다.
네 번째는 연어초밥이다.
식초, 설탕, 소금을 섞은 단촛물과 밥을 섞어 초밥용 밥을 준비한다.
초밥의 고수들은 얼음물은 준비한 뒤 손을 차갑게 만들고 일정한 크기로 밥을 만들어낸다.
난 그런 정도의 고수까진 아니다.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밥을 뭉쳐본다.
여기에 와사비를 살짝 올리고 손이 가는 대로 썬 모양도 제각각인 연어를 올려준다.
마요네즈, 다진 양파, 설탕, 소금, 후추, 레몬즙을 섞어 만든 타르타르소스를 올려주면 끝이다.
마지막은 연어회다.
사실 이건 요리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그냥 남은 연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기만 하면 끝이다.
연어 특유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기엔 사실 이렇게 그냥 회로 먹는 게 가장 좋다.
이렇게 준비한 요리들을 차례로 내놓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연어 파티 시작이다.
연어타르타르로 입맛을 돋우며 식사를 시작했다.
세 번쯤 만들어본 요리라 그런지 간도 적당했고, 상큼함도 딱 알맞았다.
가볍게 시작하기에 좋은, 안정적인 스타터였다.
다음은 코코넛커리연어다.
사실 만들 땐 커리와 연어가 잘 어울릴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조화로웠다.
기름진 연어의 느끼함을 커리의 향신료가 정확히 잡아줬다.
예상 밖의 별미였다.
카르파초는 아직 숙제가 남았다.
소스의 배합이 살짝 어색했고, 뭔가 확 끌리는 맛은 부족했다.
먹다 보면 나쁘진 않은데, 조금 더 다듬어야 할 요리였다.
익숙한 초밥과 생연어회는 말할 것도 없이 두 손님 모두 아주 맛있게 먹어주었다.
처음엔 음식이 너무 많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역시 연어를 사랑하는 두 손님 덕분에 식탁 위의 음식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
식사하며 나눈 주된 대화는 다가오는 동생의 결혼 이야기였다.
웨딩 촬영, 결혼반지, 신혼여행.
하나둘 구체화되어 가는 계획들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결혼을 준비할 땐 한 번뿐인 예식과 촬영, 혼수, 신혼여행 등에 집중하게 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벅차고, 할 일도 많다.
하지만 진짜 결혼은 그 이후에 시작되는 주기적인 일상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챙겨야 할 가족이 늘어나고, 가족 행사는 배로 많아진다.
명절은 두 배로 바빠지고, 5월 가정의 달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꼭 양가 집안만이 아니라 당사자 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식사 준비와 정리, 장보기, 청소처럼 사소하지만 꾸준한 일들이 조금씩 두 사람의 일상을 바꿔간다.
결혼기념일, 생일, 그리고 가끔은 이유 없는 서프라이즈 이벤트까지 챙겨야 한다.
우리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아마 그 주기는 더 조밀해질 것이다.
결혼은 결국, 주기적으로 챙겨야 할 일이 늘어나는 일이다.
분명 책임질 일도 많고, 귀찮을 때도 있으며, 서로 눈치를 보는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 많은 것들을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단 한 사람을 얻는 일이 결혼이라면 이건 꽤 괜찮은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아내에게 주기적으로 치킨과 연어, 그리고 몇몇 요리를 챙겨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나를 돌봐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혼인서약보다 중요한 공급 계약일지도 모른다.
아내의 후기
연어타르타르
★4.7점
연어와 아보카도의 조합이 부드럽게 어우러졌습니다.
건강하다는 느낌이 확 오는 맛이랄까요?
많이 먹어도 죄책감이 없는 드문 요리였어요!
연어초밥
★5.0점
신랑표 수제 소스가 기가 막혔습니다.
연어도 두툼하고, 소스는 부드럽고 깊고, 밥알은 하나하나 살아 있었습니다.
원래 연어초밥을 좋아하는데 "아니 이게 집에서 가능한 맛이야?"라고 말이 절로 나왔어요.
연어회
★4.3점
오리지널은 언제나 옳죠.
연어회를 좋아해서 기대했는데, 오늘은 다른 요리들이 워낙 강력해서 약간 묻혔습니다.
그래도 신선하고 익숙한, 기대에 꼭 맞는 맛이었어요.
연어카르파초
★3.8점
신랑이 새롭게 시도한 메뉴!
올리브오일이 뚝뚝 떨어지는 비주얼부터 인상적이었어요.
산미가 살짝 올라오는 특이한 조합의 연어요리였어요.
코코넛커리연어
★4.8점
이건 진짜 예상 밖의 대히트!
부드러운 연어와 따뜻한 코코넛커리 소스가 환상 조합이었어요.
거기다 위에 뿌린 부추가 감칠맛을 더해주었어요.
남은 소스에 밥까지 비벼 먹고 말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