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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분 이름이 뭐였더라?

쉽게 잊히는 사람, 유난히 오래 남는 사람, 자기참조효과

by 퉁퉁코딩

왜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까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 돌아보니, 예전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타 부서 직원이었습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 주에 두세 번씩 만나 회의하며 협업을 이어갔던 분이었죠. 갈등 한 번 없이 매끄럽게 마무리되었고, 성과도 좋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그분과의 기억이 분명히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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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랜만에 그분을 마주친 그 순간, 저는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황을 억지로 감추며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죠. 돌이켜보니,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 저는 그분을 단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그렇게 자주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말입니다.


반면, 어떤 동료는 만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떠오릅니다. 함께 웃었던 장면과 무심코 건넨 한 마디까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잊히고, 어떤 사람은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기억에 남는 한마디

회사를 다니다 보면 참 많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회의 후 감사 인사를 건네고,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죠. 그 순간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대부분은 금세 잊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말은 유난히 오래 남습니다.

그때 ○○씨가 저 대신 나서주셔서 정말 위로가 됐어요.

○○씨가 2주간 분석해 주신 데이터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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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정중해서도, 친절해서도 아닙니다. 그 말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누군가 정확히 보고 있었다는 감정, 그것이 사람을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듭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감정의 연결성이었습니다.



자기참조효과란?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자기참조효과(Self-Reference Effect)라는 이름으로 설명됩니다. 자신과 관련된 정보일수록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원리죠.


이 개념은 1977년, 심리학자 로저스(Rogers), 카이퍼(Kuiper), 커커(Kirker)의 실험에서 제안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제시된 단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했습니다. 단어의 모양, 소리, 뜻, 그리고 그것이 자기 자신과 관련 있는지까지 살펴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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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중에 어떤 단어를 가장 잘 기억하느냐를 조사했을 때, 자기 자신과 연결해 본 단어들이 가장 정확하고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뇌는 '나와 관련된 정보'를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와 같은 정보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정체성과 생존의 기준이 되니까요. 결국 사람은 자기 자신과 연결된 말, 그리고 그 연결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습니다.



감정을 남기는 말의 구조

오래 기억되는 말은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이름을 불러라 → "○○씨"라는 호명이 들어간 말은 나만을 위한 말처럼 느껴집니다.


구체적인 장면을 넣어라 → "그때, 그 자료 꺼내주셨을 때"처럼 시점과 상황이 명확한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순간을 머릿속에 그리게 만듭니다.


나와의 연결점을 언급하라 → "그날 제 발표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씨 덕분이었어요."처럼 그 사람의 역할과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말은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이 세 가지가 담긴 말은 듣는 사람에게 자기 서사 속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그런 말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습니다.



결국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간이 지나면 프로젝트의 이름도, 그 성과도 기억 속에서 흐릿해집니다. 하지만 일보다 감정을 먼저 떠올리게 했던 사람은 '업무'로 설명되지 않고, '감정'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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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감정은 언제나 '나'와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의 양보다 말의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많이 말할 필요도, 크게 도와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진심이 닿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떻게 말했는지가 아니라, 어디에 닿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결국 말이 마음에 남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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