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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프로젝트 중단! 경쟁사 대응부터 하세요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는 실수, 주의력 착각

by 퉁퉁코딩

고객은 조용했고, 우리만 호들갑

직장에서는 경쟁사의 움직임을 항상 주목합니다. 고객 경험이나 신사업을 설계하는 부서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경쟁사가 신제품이나 새로운 기능을 발표하면,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합니다. 경쟁사의 제품과 기능을 샅샅이 분석하고, 순식간에 대응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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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 지나치도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갑작스러운 긴급 대응 지시가 떨어지기도 하죠. 기존 프로젝트는 보류 상태로 밀립니다. 완성도 높은 대응 전략보다 '빨리 따라잡기'가 우선시됩니다. 경쟁사가 뭔가를 내놨다는 사실만으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시장 반응은 차갑고, 우리 고객과도 맞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고 보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원래 준비하던 기능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는 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고객의 니즈, 피드백, 데이터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라본 것은 경쟁사의 뉴스 헤드라인과 보도자료뿐입니다.



다 보고 있다는 착각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주의력 착각(illusion of attention)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본 후 판단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눈에 띄는 것만 봅니다. 더 정확히는 눈에 띄게 만든 것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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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너무나 유명한 실험인 고릴라 실험이 등장합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와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가 고안한 실험입니다. 참가자들에게 화면 속 인물들이 농구공을 몇 번 주고받는지를 세라고 합니다. 집중해서 숫자를 세다 보면, 영상 한복판을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도 절반 이상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이 결과는, 우리가 주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세상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고릴라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려줘도 믿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은 화면을 모두 봤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이 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믿습니다.


이 현상은 뇌의 처리 방식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의 주의력은 광범위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수많은 정보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뇌가 처리하는 정보는 극히 일부입니다. 그 일부는 그냥 어디까지나 '내가 주의를 준 대상'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설령 그것이 진짜 중요한 정보이더라도 모두 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우리는 늘 좁은 스포트라이트만 켜고 살아갑니다.



직장에서의 주의력 착각 사례

우리의 편향된 주의는 직장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합니다.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대상, 가장 시끄럽고 긴박하게 보이는 사안만을 바라봅니다.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다루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왜 이런 중요한 걸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말한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라, 주의를 그쪽으로 향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유행 콘텐츠에 억지로 올라타려 할 때

갑자기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유행이 되고, 특정 노래가 밈처럼 번지면, 조직 내 어디선가 '우리도 이걸 제품에 녹여볼 수 없을까?' 하는 말이 나옵니다. 타이밍은 촉박하고, 콘텐츠와의 접점은 억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실무자들은 기획서를 다시 쓰고, 캠페인을 뜯어고칩니다. 중요한 전략은 뒤로 밀리고, 단기 반응만을 위한 소동이 벌어집니다.


고객 VoC 하나에 전사 계획이 흔들릴 때

수많은 고객의 흐름과 데이터가 있음에도, 유독 특이한 케이스 하나가 눈에 띕니다. 그것이 임원의 한 마디와 함께 거론되면, 그 순간부터 상황은 급변합니다. 전체 고객의 경험보다, 단 하나의 예외 사례가 모든 판단을 바꾸고, 전사 방향을 흔들기도 합니다.


크게 회자된 내부 이슈에 모든 주의가 몰릴 때

특정 부서에서 한 번의 실수가 발생하면, 조직 전체가 '우리도 조심하자'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본질적 해결보다 안전한 말과 절차만 남고, 회의와 보고가 늘어납니다. 실수는 줄었지만, 고객이 기대하던 변화도 멈춥니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극적인 신호에 주의를 빼앗깁니다. 조직의 미래를 결정한 중요한 사항에서도 조차 말이죠.



의사결정이 흔들리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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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이런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직은 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고, 리더는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면 안 된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자극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냅니다. 이슈화된 기능, 임원의 즉흥적 발언, 미디어의 보도는 그 자체로 일종의 주의력 낚시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자극의 대부분은 단기적이며, 일부의 목소리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봐야 하는 건 그것이 중요해 보이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가입니다. 그 기능이 기사에 나왔는지가 아니라, 우리 고객에게 어떤 실질적 영향을 주었는가를 봐야 합니다.


일관되지 않은 주의는 조직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핵심 역량의 누수를 불러옵니다. 오늘의 이슈에 쫓기며 움직이는 조직은 결국 바쁘지만 성과는 없는 패턴에 갇힌다. 중요한 프로젝트는 늘 미뤄지고, 방향성 없는 긴급대응만 반복됩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필수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곳에서 발견한 성장

진짜 강한 조직은 일관된 전략과 고객 중심의 우선순위를 갖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하게, 단단하게 본질을 지켜냅니다. 경쟁사의 움직임 자체보다, 그 변화가 실제로 의미 있는가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의력을 문화로 만듭니다. 회의에서는 "지금 이건 정말 중요한가?", "이게 고객에게 실제로 의미 있는가?"를 먼저 질문합니다. 보고서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뿐 아니라,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를 함께 씁니다. 이들은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무엇에 주목할지 미리 정해둡니다. 그 결정은 전략적 판단에 기반합니다. 단기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 우선순위를 구조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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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농구공만 세고 있을 때, 그 고릴라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처럼 성장은 언제나 조용한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관찰은, 가장 차분하게 어디를 바라볼지 선택하는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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