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치아 관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시간이 그리워 가끔 비슷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끼리 만나서 술 한 잔씩 합니다. 한 번은 의사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였습니다. 한 친구가 전화를 받더니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했습니다. “그래? 머리는 안 다쳤어? 정신은 멀쩡해?” 소아과 의사인 친구가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받은 전화는 다름 아니라 아들 녀석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다쳤다는 전화였습니다. 소아과 의사인 그는 가장 먼저 머리를 다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더군요. 그 옆에 있던 정형외과의사 친구는 “야, 팔이나 다리 부러지진 않았지?” 피부과 친구는 “찰과상이 심할 텐데 내가 한 번 봐줘야겠다. 흉 지지 않게.” 가만히 있기 뭐했던 저도 물어보았습니다. “앞니는 안 부러졌냐?”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박수를 치면서 모든 부모들이 좋아라 하지만 혹시나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들과 축구, 야구, 농구를 하게 되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늘 신경이 쓰입니다. 저도 아들 녀석을 키우면서 늘 조심하라고 타일렀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조심히 놀 리가 없지요. 까지고 부러지고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욕실에서도 미끄러지면서 앞니가 부러진 일도 있었으니까요.
앞니가 부딪쳐서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 앞니의 손상은 이가 부러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앞니의 손상과 함께 입술이 찢어지거나 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니가 빠져서 바로 아이와 함께 빠진 치아를 가지고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빠진 이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인 30분 이내에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시간을 아주 잘 맞춰서 잘 오셨습니다. 다행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빠진 치아를 식염수에 넣었다가 원래 자리에 넣는 정복술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치아가 너무 깨끗했습니다. “어머님, 치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깨끗한가요?” “아, 모래가 좀 묻었기에 제가 정수기 물로 깨끗하게 닦았어요.”
골든타임을 잘 지켰지만 빠진 치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셨던 것 같았습니다. 차근차근 설명드렸더니 자신의 잘못된 지식 때문에 아이 치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치아를 아주 세게 문질러 닦지는 않아서 큰 문제없이 치아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앞니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갈이가 끝나기 때문에 초등학생 대부분의 앞니는 영구치입니다. 한번 손상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지요. 조금 과격한 운동을 할 경우에는 앞서 말씀드린 마우스가드를 착용해서 외상을 막는 것이 좋습니다. 혹시 다쳤을 경우라도 당황하지 말고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몇 가지 사항만 주의하고 골든타임을 지키신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조사에 의하면 치아의 손상은 관절 염좌(삠), 골절, 열상(피부 손상)에 이어 초. 중.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학생들의 부상이라고 합니다. 남학생의 빈도가 여학생에 비해 2~3배 정도 많고, 대부분 위턱의 앞니(중절치)가 가장 많은 손상 빈도를 보였습니다. 눈에 바로 띄는 앞니의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환하게 잘 웃지 못하고 행동도 위축될 수 있어서 학교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또한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된 앞니의 경우 추가적인 염증의 발생으로 뼈 성장을 방해하거나 심한 경우 얼굴의 변형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앞니의 손상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몇 가지 잘못된 상식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1. 다친 이가 유치라서 다행이다?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앞니가 영구치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다친 치아가 젖니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을까요? 유치가 손상된 상태로 방치될 경우 한창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앞니로 자르고 씹는 기능이 결여되어 소화에 영향을 미치고 영양분이 잘 공급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빨리 치아가 빠진 경우에는 영구치열에도 영향을 미쳐서 부정교합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친 치아가 젖니더라도 꼭 치과에서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2. 부딪치기는 했는데 멀쩡해 보여서 괜찮다?
일단 충격이 가해졌다면 치과에서 방사선 사진을 찍어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 간혹 치아의 뿌리 부분이 부러지거나 치조골이 파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부러진 경우 파절 된 위치에 따라서 예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적절한 치료로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치된 상태로 염증이 생겨 치아 주변의 뼈가 녹아내리게 되면 치아를 빼야 합니다.
방사선 사진 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시간이 지난 후에 치아의 색이 변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치아의 내부에 있는 신경과 혈관 조직인 치수 조직이 시간이 지나면서 괴사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는 치아의 색이 더 변하기 전에 신경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3. 빠진 치아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
치아가 뿌리와 함께 통째로 빠진 경우에는 그 치아를 얼마나 빨리 제자리에 넣어주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10분 이내에 제 위치시킬 경우에는 거의 원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고 30분 이내에 적절한 조치로 제 위치시킬 수 있다면 90% 이상 성공적으로 복원됩니다. 하지만 1시간이 넘어가면 성공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그 이상의 수 시간이 지난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복원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치아가 빠진 경우에는 지체하지 말고 빠른 시간에 치과에 가셔야 합니다.
4. 치아가 빠진 경우 빨리 종이나 거즈에 싸서 병원에 가야 한다?
빨리 치과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치아를 병원까지 어떻게 보관하느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치아의 뿌리 부분의 표면에는 치아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조직세포들이 붙어있습니다. 따라서 이물질이 묻었다고 해서 문질러서 닦게 되면 세포들이 모두 손상되게 됩니다. 표면이 건조되어 마르는 것도 막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물질을 굳이 제거하려고 하지 말고 치아의 머리 부분을 잡고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어주는 정도만 하고 냉장 보관된 식염수나 우유에 빨리 담가서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유의 영양성분이 조직세포의 유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비교적 주변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우유가 현실적으로는 가장 좋습니다.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혓바닥 밑에 넣어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이 방법은 수돗물에 담가오는 것과 함께 그리 추천되는 방법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