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무례

by 심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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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별나기도 하고 이상한 캐릭터가 있다고 치자. 그와 어울리는 이들은 좀 다를까. 아니라는 걸, 백이면 백 비슷한 부류란 걸 나이가 들면 확실히 알게 된다. 경험이 쌓여 사람 보는 눈이 뜨이면 그들 역시 기형적인 인간이라는 걸 분별하게 된다.

이따금 내게 글을 봐달라고 부탁하는 이가 있다. 대개 축사와 인사말인데, 더러 판사한테 제출하는 반성문인 경우도 있다. 글을 봐달라는 부탁은 안 들어준 지 오래다. 청탁의 성격이 진심을 담는 게 첫째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 내일이 딸 결혼식인데 인사말을 좀 다듬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기 뭣해 “남의 손 빌릴 것 없이 솔직담백한 게 좋겠다”고 전제한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내가 난데없는 교육을 한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리 “이 문제로 교육을 받는 건 나로선 좀 아니다고 본다”면서 내 말을 싹둑 자르고 들어왔다.

참으로 난망하고도 황당했다. 곡진한 거절의 말을 교육으로 받는 이 어처구니는 또 뭔가 싶었다.

나는 글을 청탁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 처지와 우리들 처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헛발질이란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글을 안 써본 사람이 글을 써 자기 생각을 남에게 알리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자리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헌데 괜히 면은 세우고 싶고 혼자는 감당이 안 되고 그러다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 자리에 서고 싶은 탐(貪)과 치(癡)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낳는다.

오늘이 딸 결혼식인데 하루 전날 전화를 하는 어처구니는 차치하자. 그건 그 사람 사정이 급해서 글쟁이 지인 찬스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평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래 급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져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내 마누라에 대한 기대도 없고, 심지어 내 가족에 대한 기대도 않고 산다. 하물며 제 필요할 때마다 연락하는 그 인사에게 기대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 생각이 이리 바뀐 것은 비교적 근자의 일이다. 지천명에 가까워지자 그게 내 정신건강에 좋고 그리 살아야 남에게 피해 안 주고 건실하게 살 수 있다는 걸 깨쳤다.

내 곡진한 말을 “교육”이라고 제멋대로 받는 그 인사에게 이리 문자를 넣었다. “내 장황함은 교육이 아니라 미안함에 기인한 것입니다. 오해 마시고 식 잘 치르세요. 식 하루 전에 전화를 주어서 부탁하는 걸 저는 저대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그러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일언지하에 청을 거절했다면 역시 기분이 상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래나 저래나 기분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통화를 그리 끊게 되니 나도 황당만 합니다. 더는 유구무언입니다.”

한마디로 “일흔 넘은 당신 염통머리는 좀 챙기시오”하는 말을 점잖게 전한 것이다.

내 문자에 그 인사는 유감의 문자나 사과 문자를 끝내 보내지 않았다. 나는 어젯밤 그 인사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삭제했다. 영원히 내 삶에서 제거해버린 것이다.

나는 [글밥]에서 누차 밝혔지만 예의가 없는 이를 가장 싫어한다. 애나 어른이나 싸가지없는 치들을 혐오한다. 딱 한 번 대화를 나눠보고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었다 싶으면 두 번 다시 상대하지 않는다. 나는 내게 쉬이 말을 놓는 자들을 봐준 적이 없다. 그런 자는 곧장 칼차단이다. 또 오만과 독선을 개성으로 착각하고 사는 이도 단절의 대상이다. 덧붙여 일머리가 나쁜 자도 상대하지 않는다. 시간낭비다. 예(禮), 말(言), 일(事)의 속성은 모두 정(情)이다. 애정이 없는 자들은 가까이할수록 손해인 게 인간사 메커니즘이다.

조금만 살피면 상대의 언행에 밴 평소 습관과 인식은 쉽게 보인다. 말과 행동 그리고 식습관, 걸음걸이. 이런 것들은 나와 어울릴만한 사람인가 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이를 뭉뚱그려 교양이라고도 하지만, 고상한 말을 구태여 끌어다 댈 필요 없이 누대로 전해진 예를 생각하면 금세 어울릴 만한 이인지 아닌지 가릴 수 있다.

나는 비교적 이런 잣대가 일찍 선 축에 속한다. 서른다섯에 나는 내 대학 은사(恩師)와 절교했다. 그는 내 대학생활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어서 그리 쉽게 끊을 인연이 못 되었다. 단초는 그의 태연한 거짓말이었다. 그 대수롭지 않은 거짓말 한 번으로, 어른답게 사과를 하면 되었을 것을, 그 옹졸한 자존심에 나를 스승의 권(權)으로 누르려 들었다. 참 실망이 컸다. 나는 그에게 ‘김 교수께’ 제하의 마지막 편지를 끝으로 “당신은 이제부터 내 스승이 아니다”고 하고 연을 끊었다.

내 나이 마흔넷 땐 기상천외한 삶을 일구었다는 설이 무성했던 대구한국일보 대표 유명상 씨가 실제 그런 삶을 살았다는 걸 파악하고는 곧바로 연을 끊었다. 마흔다섯과 마흔여섯 땐 나를 조카처럼, 아들처럼 십수 년 넘게 대했던 여성 둘과의 연줄을 연달아 잘랐다. 모두 평소 습관에서 나온 한 번의 말실수가 단초였다.

그러나 그 말실수를 가만히 짚으면 그동안 그들이 보인 언행의 불손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을 때 취한 조치였다. 나는 무례한 자를 그냥 봐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더는 사방 걸릴 것 없는 방외지사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런 인연을 구차하게 잇겠는가.

마흔일곱 된 올해 연초부터 본의 아니게 가위를 들어야 했지만, 별 느낌은 없다. 도려낼 인연을 하루빨리 도려내는 게 그에게도 나에게도 두루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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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의 엑기스는 내게 시원찮은 글 부탁일랑은 하지 말라,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예의 없는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 같은 게 아니다. 지금부터가 엑기스다.

어제 잠자리에서 우연히 쇼츠를 하나 봤다. 2000년대를 풍미한 1세대 걸그룹 핑클의 멤버 이효리와 한솥밥 먹는 이상순이란 가수가 나온 영상이다. 영상 제목은 ‘이상순, 요즘 이효리와 자주 싸우는 이유.’

여기 이런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이상순이가 한 말인데, 결혼은 했지만 애도 안 키워본 인사가 이 나이대에 이런 생각을 뱉는 걸 보면, 그는 그저 딴따라가 아니다 싶다. 그의 워딩을 그대로 옮긴다.

“나이가 들면서 무의식적인 어떤 행동이 나올 때가 있잖아.
근데 그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오면은 되게 상황이 안 좋아져. 항상.
아내랑 싸울 때도, 싸우는 이유를 보면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나
무의식적으로 한 말들이
불씨가 되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
그래서 계속 깨어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계속.
정신을 놓지 말자.
그러니까 우리가 싫어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다 무의적으로 나오는 (거야.)
그 사람이 악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하던, 살던 대로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되게 많더라고.”

이 이야기를 들은 동료가수 정재형은 이를 “무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례함”이라고 정리했고, 또 다른 동료가수 이적은 “선하다는 것은 사실은 무던하면 안 돼. 가족들이 상처받더라고”라고 했다.

이에 이상순은 “그래서 (내 결론은) 모든 걸 인지하고 해야 된다는 거죠”라고 답했다.

어제 딸 결혼식을 하루 남기고 자기 급하고 답답한 마음에 일흔도 넘은 양반이 전화를 해 염탐하듯 질문 몇 개 던진 뒤, 느닷없이 턱도 없는 부탁을 한 것은 인지를 한 것인가, 아닌가. 깨어있어 한 행동인가 살아는 있되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한 행동인가. 산송장이어서 될 일인가.

한 달 전 어느 토요일 라온이가 방과후수업을 가면서 로봇 교재를 빠뜨리고 가, 로봇 선생이 교재를 가져다 달라고 문자가 오고, 교재를 들고 교사를 들어가는데 방과후 담당교사가 저지한 어처구니없던 일을 [글밥]에 다룬 일이 있다.

경찰까지 출동하는 황당한 상황으로 번진 그날, 나는 그 선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교장이 출입을 삼가라 했다고 해도, 현장에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지요. 이상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라는 게 본뜻일진대, 통행이 마땅히 돼야 하는 부모도 막는다? 이게 어디 제정신 갖고 할 짓입니까. 선생님은 선생한 지 얼마나 됐어요. (20년이 넘었단다.) 20년도 넘은 양반이 그렇게 유도리가 없습니까. 선생님이나 나나 연배가 마흔은 넘어 비슷할 것 같은데, 우리 나이가 되면 습관적으로, 관행대로 해오던 거 그 행동과 말이 적실한지 한 번쯤은 돌아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어른과 아이와 차이입니다. 선생의 지력이 이 지경인데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우리 사회가 기술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첨단사회로 부상하면서도 인간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형편없는 걸 넘어 개판 오 분 전 사회로 폭주하는 까닭은 무심한 무례가 판치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자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여 제발 깨어나라! 딴따라보다 못한 인간귀신 세상을 만들어서야 될 일인가.
/심보통 202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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