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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 Feb 22. 2023

거꾸로 매달더니 머리카락 싹둑?



최근, 필라테스 강사가 동작 중인 회원의 머리카락을 자른 사건이 있었다. 

둘 사이의 관계라든지 잘잘못 여부는 모르겠지만 

필라테스 동작과 환경이 얼마나 인위적이고 위험한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위험은 누군가 내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폭넓게 의미한다.


"리포머, 캐딜락 등 필라테스 기구와 그 위에서의 움직임은 

안전(Safety)하지도, 안정(Stability) 하지도 못하다." 







지난 글에 이어 필라테스센터에서의 경험을 써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총 18개월 동안 2곳의 센터에서 

주 3회 정도로 꾸준히 필라테스를 했는데도..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니..


물론,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폭풍 리액션으로 신이 나게 해 주고

내가 다치지 않게 기구를 꼼꼼히 정비하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다가도 "회원님 하나만 더 할게요~"라고 똑 부러지게 챙기던 

필라테스 강사 선생님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도무지 무슨 움직임을 배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1:1 개인레슨의 특성상 움직임의 디테일, 운동량(횟수)과 심지어 호흡까지 하나하나 챙김을 받다 보니,

지금 내 앞에 필라테스 기구들이 갖춰진다 한들 스스로 어떤 움직임을 할 수 있을까? 싶다.


특히, 캐딜락이나 리포머 같은 기구 세팅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제대로 배우고 스스로 하면서 익히지 않으면 혼자서 동작을 하기가 어렵다.

수업 전에 먼저 도착해 시간이 남으면 

제일 쉬웠던 바렐의 높낮이와 폭을 내 몸에 맞춰 조정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도 비어있는 바렐이 눈앞에 있어서 했을 뿐

맨바닥에서 어떤 도구도 없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척추의 굴곡과 신전, 사이드밴딩 정도의 스트레칭이었다.


처음에는 그 기구들이 과학적으로 고안되었고

운동의 질을 높여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에 필라테스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동작을 하면 할수록 굳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기구를 써야 하는가?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구들이 천만 원 단위라는 이야기를 듣고, '굳이?'라는 생각은 더 커졌다.

그렇다면 내가 지불한 레슨비의 상당 부분이

없어도 그만인 거대한 기구 값의 할부금일 수 있겠단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비싸고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위험했다.

기구 위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구 없이 매트에서 하는 동작으로만 수업을 요청했다. 






그렇게 기구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번엔 파워하우스(Power House)의 늪에 빠졌다.   


코어 근육의 힘을 기르는 동작들을 하면서, 계속해서 그 근육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호흡법 자체가 갈비뼈를 모으고 골반기저를 수축한다. 

대표 동작인 헌드레드를 보면 상복부에 힘을 주어 상체를 바닥으로 일으키고, 

다리를 들어 하복부 근육도 단단하게 만든다. 그 상태에서 스타카토로 호흡을 끊어하면서

배꼽을 등뒤로 당기 듯 계속해서 코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필라테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어의 힘, 파워하우스에서 

의미하는 그 '힘(Power)'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걸 왜 이렇게 고정적이고 단단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고정적이고 단단한 것이 유리했다면, 척추가 분절의 형태를 띨 필요가 있었을까?

천골과 장골이 굳이 천장관절면을 이루며 분절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고정적으로 유지되고 단단한 긴장톤이 생존과 건강에 이득이었다면

복부와 골반 부위에 뼈들은 다 하나의 통으로 융합되며 진화하지 않았을까?


필라테스 움직임 중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에서 허벅지가 길어지면서 상체가 전체적으로 뒤로 넘어가는 동작을 보자.

여기서 코어는 마치 기립해서 서있을 때와 유사하게 중립의 상태로 고정적이어야 한단다.

시선도 마찬가지로 정면 고정이다. 

즉, 허벅지 앞이 길어지며 상체가 뒤로 넘어가고 있지만

상체는 이 상황을 모르는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체는 나무판자가 아니다. 

신체 일부의 조건과 상황이 바뀌었으면, 다른 부분이 이에 반응해서 적절하게 변해야 한다. 

(나무판자에 비유했지만, 만약 뿌리가 있는 살아있는 나무라면 나무조차 저런 상황에서 휘어진다. 

생명이 있는 것은 늘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반응한다.)

일상생활에서 저런 식으로 상체가 뒤로 넘어가게 된다면

골반의 신전을 받기 위한 척추의 신전이 이루어지고, 시선은 정면 고정이 아니라 하늘을 향한다.  

나는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 내에서

한 부분이 분명히 변화하고 있는데

다른 부분들이 이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힘이고 건강인가? 






과학적으로 고안된 기구로 만들어진 움직임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필라테스였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고안되었다는 것은 인위적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는 가공물(Artificiality)이 아니다.


내 몸을 위한 움직임을 찾는 과정에 또 한 번의 실망과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인체를 부분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과

형태가 아니라 기능을 먼저 고려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자연(Nature)에 속한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기구에 거꾸로 매달린 채 머리카락이 잘린 사건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개인의 도덕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

여러 가지로 필라테스의 경험을 떠오르게 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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