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정답이 있어서 좋아했던 아쉬탕가였는데
그 정답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거 맞아? 진짜 몸에 좋은 거 맞아?
왜냐하면 몸이 계속 아팠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열심히 할 순 없었으므로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 내가 '답'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그것을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자료를 찾고 책을 읽으면서
전통요가는 21세기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촛불이 일렁이는 요가원의 분위기가
산스크리트어로 읊조리는 듯한 노랫소리와 싱잉볼의 고유한 파장이
인센스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우아한 형상과
원장님이 자체 레서피로 배합해 만들었다는 천연 아로마 오일의 매혹적인 향기가
21세기 한반도가 버거운 사람들에게 쉼의 공간이 되어줄 수 있음은 여전히 완벽하게 동의한다.
전사나 동물로 비유되는 아사나에 담긴 철학적 이야기가
극한으로 내달렸다가 기어이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 기승전결이 있는 수업이
현실을 잠시 떠나 짧은 여행을 제공한다는 것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쉼과 여행 이전에 일단은 너무 아팠다.
요가원 등록비보다 한의원 진료비가 더 많이 나왔다.
안 아프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답'을 갖고 있는 움직임이 무엇이 있을까.
마침 방송에는 연예인 누가 출산 후 빠른 복귀의 비결로 필라테스가 소개되고 있었고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저기 필라테스센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여의도에 살았는데, 지하철 입구에서 필라테스센터 전단지를 받았다.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과학적으로 고안된 것 같은
수술대 같기도 하고 고문기구 같기도 한 기구들 사진이 실려 있었다.
상담예약을 하고 방문을 했다.
LED조명과 벽면마다 간접조명까지 휘황찬란한 그곳은
일렁이는 촛불에 그림자가 비치던 요가원과는 조도부터 달랐다.
흰색 대리석과 골드포인트의 인테리어는
우디하고 패브릭 한 느낌의 요가원과 달리 도시적이었다.
가로세로 격자가 있는 곳에 나를 세우고 앞뒤좌우 사진을 찍은 후에
인체가 그려져 있는 종이에 분석 내용을 적으며 설명해 주는 선생님은
지도자 혹은 스승이라기 보단
내 몸을 건강하게 해 줄 전문가처럼 보였다.
이미 마음이 반쯤 넘어가 있었는데
오픈 특가에다가 당일 등록 할인으로 1:1 개인레슨 20회를 40% 할인된 가격으로 해주겠단다.
1:1 개인레슨이라니..
그것은 시간당 수입이 엄청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나 연예인이나
아무튼 나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반값에 경험해 볼 수 있다니!
그렇게 개인레슨과 1:6 그룹레슨 20회, 소도구 매트 그룹레슨 무제한 조건으로
혜택도 많지만 결국 총액도 그만큼 큰 그런 거래를 했다.
하지만, 너무 설레었다.
전문적이고,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몸을 분석해 주고, 나에게 필요한 움직임을 처방해 주고,
오로지 날 위해서 옆에서 자세 교정과
호흡을 함께 해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설레었다.
등록을 하고 집에 걸어오면서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세련되고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뮬라웨어와 안다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운동복을 골랐다.
검은색 위주였던 기존의 선택과는 달리
핑크와 노란색, 화이트 레깅스와 탑, 토삭스 두 개를 담으며
첫 수업이 5일 뒤니까 그전까지 배송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