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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 Feb 17. 2023

첫사랑 아쉬탕가

요가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한때 핫요가와 비크람이 크게 유행을 했고,

여기저기 화려한 해먹이 달리면서 시작된 플라잉 요가, 

빈야사 계열의 인사이드플로우, 

인요가, 리스토러티브, 테라퓨틱 등 이완요가와 하타,

최근에는 오다카요가와 소마요가까지   


각각의 움직임의 우열을 가릴 순 없다. 장단점이 있을 뿐이고,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호/불호는 변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러하듯.. 

첫 만남은 황홀했으나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있고

첫인상은 영 별로였지만 볼수록 매력을 느낀 것도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게 된 것도 있고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영혼의 안식처가 된 것도 있다. 


-


나의 귀여운 요가원에서

초승달과 반달 난이도 수업에 익숙해지고 이제 full moon으로 표시된 수업을 들어볼 차례였다.

보름달 한 개 옆에는 '아쉬탕가 프라이머리(Ashtanga primary)'가, 

보름달 두 개 옆에는 '아쉬탕가 어드밴스드(Ashtanga advanced)'가 적혀있었다. 


보름달 한 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땀으로 흠뻑 젖은 요가복을 벗지도 않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쉬탕가 순서'를 검색했다.

왜냐면 그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동작과 순서를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처음 들어온 나에게 친절하지도 않지만 무심하지도 않았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당황하는 것은 그냥 두고 보았지만, 위험한 것은 두고 보지 않았다.


불필요한 친절과 적절한 개입의 기준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의 차이점을 여기서 배웠다. 


순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들어간 수업에 나는 곧 빠져들었다.

잘란다라반다(Jalandhara Bandha)와 우짜이호흡(Ujjayi Breath), 문데이(Moon Day)가 신비했다.

차투랑가(Chaturanga Dandasana)가 성공한 날 내 몸이 단련되고 있음을 느꼈다. 

카르나피다아사나(Kamapidasana)에서 생전 처음 느끼는 정적이 태고처럼 편안했다.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Urdhva Dhanurasana)에서 반전된 세상을 엿보았다.


무엇보다 정답이 있는 것이 좋았다.

아쉬탕가에는 동작과 순서는 물론 호흡과 정렬, 손가락 방향 하나에도 정답이 존재했다.

정답이 있다면, 지금 내가 비록 오답일지라도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면 되니까. 

우리의 삶과 달리 정답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마이솔 수련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정해진 일련의 동작들을 각기 다른 시기에 하는 흐름이 좋았다.

마치 다르다면 너무 다르지만, 같다면 결국 같은 우리의 인생 같았다.   

옆 사람이 머리서기를 한다고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곧 머리서기를 할 순서가 틀림없이 오니까.

하기 싫다고 빼먹을 수도 없을 것이오, 마음이 급하다고 그것부터 할 수도 없다.

지금 내 시기에 충실하면 그뿐이었다. 


내 사는 모습과 달라서 좋고, 닮아서 좋았던 아쉬탕가를 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매 수련마다 속옷과 수건이 흠뻑 젖었다. 

그 바쁜 움직임을 쉴 새 없이 하는 도중에 운다는 느낌도 없이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곤 했다.

닦아도 큰 의미가 없었으므로 그냥 두었다.

서러웠다. 원망의 대상도 없이 그냥 서러웠다. 

엄격하지만 강압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지켜봐 주는 지도자의 존재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건, 움직임 속에서 안 그래도 바쁜데 굳이 그렇게 줄줄 흐르던 눈물이

막상 사바아사나(Savasana)에서 멍석을 깔아주면 쏙 들어갔다는 것이다. 

일련의 동작을 모두 마치고 사바아사나에 이르면, 

그저 "열심히 잘했다. 결국 끝까지 해냈다."는 마음만 남아 고요했다.


사바아사나(Savasana) ;

산스크리트어로 사바(Sava)는 시체를 뜻한다. 이 아사나의 목적은 주검처럼 되는 것이다. 


봄 꽃처럼 화려하게 만개했다가도

위풍당당 땅도 들어 올릴 것 같은 기세를 보이다가도

가장 낮은 곳으로 가 호흡을 고르고 

이번 생에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해내는 환희의 순간을 만나고

도대체 이게 언제 끝나나 싶은 날에도, 결코 쉬지 않고 열심히 

그것이 때론 벅차고 서러워서 울고불고하면서도

끝내 도망치지 않은 나에게

"열심히 끝까지 잘했다"는 마음만 남는 것이 좋았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따로 또 같이 하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좋았다.


-


다만, 어느 날부터 손목과 어깨가 아파왔다.

수련이 끝나면 침을 맞으러 갔고, 몸 여기저기 부항자국이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손목 아대를 껴야 했고, 2리터 생수병 6개 묶음을 들 수 없었다. 

이것은 이미 앞서 경험했던 바이다.

내 삶을 위해 시작한 움직임이 삶보다 앞서 전도된 상황.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엄살 부르지 말고 더 열심히 해'로 무시했던 지난날의 무지로

또다시 저벅저벅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이런 나의 상황을 알아차리는데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아쉬탕가는 일종의 극기였던 것 같다.

몸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고, 그때의 내가 참 열정적이었기 때문에

후회나 비난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마치 첫사랑을 기억하는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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