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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 Feb 16. 2023

오, 귀여운 나의 요가원

당시 요가원을 선택한 이유는 아래 세 가지였다.

1.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2.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화려하지 않을 것 

3. 다이어트, 체형교정보다는 전통 요가를 지향할 것


슬리퍼를 쓱 신고 터덜터덜 걸어갈 수 있는 곳,

그래서 가다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언제든 가볍게 골목을 돌아 

시치미 뚝 떼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가도 괜히 민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 

요가원 밖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고

몇 주 동안 안 보여도 무슨 일 있었냐며 굳이 묻지 않는 무심한 곳을 원했다. 

나의 심신을 먼 나라 이국 땅의 아주 오래된 어떤 철학에 기대고 싶었다. 


좌법을 통한 통제, 수행을 통한 해탈 이런 것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선택한 요가원은 그보다는 좀 귀여운 곳이었다.


집에서 1.4km 떨어진 곳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은 6층짜리 빌딩의 맨 꼭대기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발장도 따로 없어서 계단 중간쯤부터 가쪽으로 벗어놓은 신발들이 놓여있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계단층계 시작점부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총총 올라와야 했다.

여름에는 슬리퍼와 플립플랍이, 겨울에는 양털부츠가 옹기종기 놓여있었다. 


탈의실도 별다를 것이 없었는데,

개인 요가복이나 매트 등 용품들이 한쪽 벽면 수납장에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담겨있었다.

"분실 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는 경고 문구도 없이 

락커가 아니라 오픈된 수납장에 개인 소지품을 놓고 다니는 사람들

비슷하게 생긴 매트들이 돌돌 말려서, 주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처럼 쌓여있었다.


서로 등을 돌리고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절대 벌컥 여는 일이 없었고

타인의 방에 들어가 듯 으레 노크를 세 번 했다. 

마지막으로 탈의실을 나오는 사람은 

마치 자기 방에서 나오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조명을 끄고 나오곤 했다.

난방시설이 좋지 않아서 겨울에는 따로 난방기구를 틀어놓았는데,

부피가 큰 겉옷이 난방기구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의 옷을 단속했다.   

이 모든 것이 굳이 특별한 말 없이 조용히 당연한 듯 이루어졌다. 

그 공간 안에서 모두 익명의 존재였지만, 그 공간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후로 수많은 요가원을 다니면서,

주인이 없는 곳처럼 방치되고 관리되지 않은 곳도 보았고

주인 의식이 아니라 주인 노릇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곳도 보았다.)


각 수업의 난이도가 달(月)의 모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초급은 초승달, 중급은 반달, 고급 난이도는 보름달이 그려져 있었다.

매달 바뀌는 시간표는 종이에 펜으로 적는 수작업 제작이었는데,

누가 그달의 시간표를 적느냐에 따라서 달(月)의 모양과 크기는 제각각 달랐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도 각자의 필체로 앞사람 이름 밑에 자기 이름을 적고 출석을 확인했다. 


따로 대기하는 공간이 넓지 않아서

전 수업이 끝나기 전에 옷을 다 갈아있은 사람들은  

둘둘 말린 매트를 품에 안고 일렬로 줄을 서곤 했다.

줄이 길어지면 우리도 매트처럼  돌돌 말렸다. 

원을 그리며 줄을 서게 되면 본의 아니게 타인과 마주 보게 된다.

그리고 몸의 방향을 바꾸기라도 하면 내 뒤통수를 보고 있던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다들 가슴 앞 합장한 손을 바라보듯 품에 안은 매트 끝자락을 들여다보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자세를 취했다.


눈이 마주치더라도 굳이 쓸데없는 말은 오고 가지 않았다. 

부부나 모녀, 자매나 친구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가원에 들어오는 순간 요가원밖의 관계를 벗어나 

엄연히 서로에게 타인이 되었다. 


귀엽다는 것은 내가 받은 주관적인 인상이다.

누군가는 좁고, 춥고, 불편한 곳이었다고 기억할 수도 있다.

강남역 고층 빌딩에 있었던 그 요가원이 부산하고 번잡했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 생각이다.

누군가는 그곳이 이곳보다 비교할 수 조차 없이 훨씬 났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위치한 동네, 면적, 시설의 상태나 노후화 등을 보자면 

그곳이 이곳보다 좋은 곳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을 쓰는 사람들 간의 배려가 좋았다.

좁은 곳이었기 때문에 부딪힘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 '나, 내 것,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렇다고 각자의 선을 완전히 허물고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우리끼리 뭐 어때'가 되면

결국 무례와 폐쇄성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그 사람들은 다 같이 공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공간이 너무 작고 소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소중하고 연약한 것을 아끼는 마음과 지키는 행동들을 그곳에서 배웠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몸과 삶은 언제나 작고 연약하며 소중하다.


그렇게 귀여운 요가원에서의 수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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