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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Jun 29. 2024

어른을 위한 동화(별을 닮은 아이)

모깃불


모깃불

  

 “엄마랑 밭에 가자”

“더운데”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

 엄마의 제안에 귀가 솔깃한 미진이가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앞산 너머까지 부모님이 밭농사를 짓는다. 부지런한 엄마가 어느 틈에 고구마를 줄줄이 심었나 보다. 너른 밭 나란히 나란히 맹렬한 땡볕에도 무럭무럭 자랐다. 가까이 다가가자 숨이 턱 막힌다. 고구마순 이파리가 뿜어내는 후끈한 입김이 얼굴을 덮친다.


 엄마가 무성한 넝쿨을 거두어 내자 드넓은 밭이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씨알이 작은 고구마가 줄기에 매달린 채 딸려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땅속 깊숙이 박혀있기에 캐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엄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고구마가 무더기로 쌓인다.   

   

 볕 아래 엄마처럼 쪼그려 앉아 밭이랑을 콕콕 찍어 본다. 메마른 먼지가 뿌옇게 일어 한바탕 바람에 날린다. 여기저기 고구마가 자주색 머리를 빼꼼히 내미는데 호미질이 거칠면 몸통 곳곳에 생채기가 나서 조심스럽다. 쑥 하고 뽑힐 만도 한데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고집 센 놈이 나타났다. 힘껏 잡아당기는데 그만 '똑'하고 부러진다.      

‘아이코’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지표면을 뜨겁게 달구던 열기가 불어대는 강바람에 한풀 꺾였다. 지칠 줄 모르던 태양이 주위를 붉게 물들이더니 강 너머로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수세에 몰린 더위도 몰려드는 땅거미에게 자리를 내주고 뒷걸음친다.


 아이의 집 주변에도 까만 어둠이 내려앉았다. 모내기를 끝낸 텃논에서는 낮에 잠잠하던 개구리가 일제히 목청을 높이고, 집안에는 재잘대는 아이들로 수다스럽다.


  마당 한가운데에 새로 만든 평상이 놓였는데, 아빠 품처럼 단단하고 널찍하다. 가족들이 평상으로 모여들자 아빠가 마른 풀더미에 불을 붙인다.


 종일 잡초와 씨름하다 돌아온 엄마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때늦은 끼니를 위해 분주하다. 마당 안 샘물을 퍼 올려 고구마를 씻는데, 낮에 밭에서 캐낸 바로 그것이다.


 손이 빠른 엄마가 부리나케 바깥 솥에 불을 지피고는 덤으로 옥수수와 감자도 넣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에 솥뚜껑이 금세 달그락거린다. 틈새로 빠져나와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시장기를 돌게 한다. 오순도순 평상에 둘러앉은 식구들과 갓 삶아낸 옥수수, 아이들의 재롱으로 저녁 밥상이 풍성하다.


 어스름 달빛 아래 마른 쑥을 태운 모깃불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매캐한 연기가 훅하고 올라와 눈을 찌른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섰다. 연거푸 자리를 옮기어 보는데 아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짓궂게 장난을 친다. 쫓으라는 모기는 쫓지 않고 되레 아이를 쫓는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 모깃불이 하늘로 향한다. 기분 좋은 바람이 한여름 밤 희뿌연 연기를 휘감고 올라간다.   

‘책에서 본 북두칠성이구나.’

‘별이 일곱 개가 맞는지 세어 볼까?’

‘카시오페아 자리는 어디지?’

‘망원경이 있으면 좋을 텐데.’


별을 세는 미진이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간다.

“들어가서 자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꿈속인 듯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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