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800살이다. 오랜 기간 이곳을 지킨 터줏대감이지. 하루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난다. 그들은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며 불평을 한다. 언제나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나는 심심하면 인간들을 세어보곤 하는데 이젠 그것도 지겨워졌다. 800년 동안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지 인간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인간들은 금방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정들었던 아이가 노인이 되고 결국엔 사라지는 걸 보자니 처음엔 마음이 아프더니 지금은 그러한 감정조차 무디어졌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그 아이를 알기 전까지는.
나는 한 아이를 사랑했다. 그 아이는 동그란 얼굴에 큰 눈망울을 가진 겁이 몹시 많은 아이다. 나를 뚫어져라 보는 아이의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내게 처음 온 그날을 기억한다. 오물오물 작은 입에 양 볼 가득 알사탕을 물고 있는 귀여운 모습에 하마터면 소리를 내어 웃을 뻔했다. 근래 보이지 않던 새로운 얼굴이라 자세히 살폈는데 아무래도 새로 이사를 온 모양새다. 뽀얀 얼굴에 까맣고 숱 많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예쁜 빨간색 댕기를 달았다. 아이의 통통한 볼을 보고 있으려니 양옆으로 쫙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큰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엄마, 얘는 너무 커요. 몇 살 먹었어요?"
"글쎄다. 아마 엄마보다도 한참 많을걸?"
나는 양손을 벌려 내 나이를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때마침 큰 바람이 일었다. 난 몸에 힘을 잔뜩 주고는 손을 쫙 펴고 세게 흔들어 댔다. 그 바람에 놀란 아이가 엄마 곁으로 딱 붙어 머리를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