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업자의 정부지원 사업 참여 전략

"지원사업은 엔진이 아니라 사이드미러다"

by 치유설계자

치유산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치유가 너무 좋아서, 명상과 요가와 마음공부가 자기 인생을 바꿔서,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사업자를 내고 수업을 열고 공간을 빌린다. 때로는 무리해서 센터까지 만든다. 돈도 벌고 싶고, 내 일을 하며 살고 싶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한데 섞여 있다. 여기까지는 아주 자연스럽고 건강한 출발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실의 치유 시장을 보면 대부분의 수익 구조가 프로그램 체험, 수업 운영, 치유 제품 판매, 숙박과 리트릿 패키지로 구성돼 있다. 작은 공방이나 스튜디오를 빌려서 마음공부 워크숍, 요가와 명상 클래스, 감정 해방이나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열고, 한편으로는 인센스 스틱, 아로마 오일, 싱잉볼 같은 도구를 팔거나, 마사지기구나 요가 블록처럼 나를 돌보는 물건을 개발해서 판매를 시도한다. 또는 치유음식을 내는 식당, 웰니스 리조트, 반려견과 함께 쉬는 숙소, 자연 속 리트릿을 기획하며 치유 경험을 상품화한다.


그런데 여기엔 냉정한 벽이 하나 있다.

치유의 가치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가치를 시장이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명상 한 회기, 요가 한 수업, 집단치유 한 번에 사람들이 기꺼이 지불하는 가격은 현실적 수준에서 형성돼 있지 않다. 이름 있는 선생님, 유명 유튜버, 이미 브랜드가 된 몇몇 센터들은 프리미엄 가격을 받지만 이제 막 시작한 치유사업자에게 시장은 관대하지 않다. 인지도도 없고 레퍼런스도 없는 상황에서 가격을 올리자니 부담스럽고 싸게 받자니 생계가 안 된다. 결국 유튜버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커야 하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그 길 역시 만만치 않고, 정작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수업과 프로그램에 집중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무리하게 공간을 임대하거나 건물을 얻었다가 부채의 늪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뛰어드는 사람은 많은데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달린 채 하나둘씩 사라지는 시장, 그것이 지금의 치유산업 풍경이다.



치유산업에 정부지원 사업이 필요한 이유


여기서 정부지원 사업 이야기가 시작된다.

치유산업은 그 자체로는 아직 자생력이 약한 시장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공공예산과 정부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금 각 부처와 지자체는 치유와 웰니스, 정신 건강, 회복과 성장을 키워드로 각종 예산을 쏟고 있다. 바우처 형태로 심리상담 비용을 지원하고 공공 치유센터를 짓고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예산을 배정한다. 이 흐름 속에서 치유사업자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구조부터 이해해야 한다.

병원의 임상심리사, 상담센터 소속 상담사, 공공기관의 위탁 심리치료사 등의 직군은 직장인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한다. 이들은 사업자가 아니라 채용된 사람들이다.

반면 치유사업자는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야 하고 매출이 곧 생존이다. 이 둘을 같은 위치에서 보면 안 된다. 월급 구조 안에 있는 치유노동과 시장에서 매출로 버텨야 하는 치유비즈니스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그럼 정부는 왜 굳이 돈을 줄까?

사실 정부가 우리에게 돈을 준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정부는 세금, 일자리, 수출 이 세 가지를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창업지원금이라는 예산은 결국 국민 세금이다. 이 돈을 써서 사업자를 키우는 이유는 나중에 그 사업자가 다시 더 큰 세금을 내고 사람을 고용해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오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부지원 사업은 그저 나라에서 공짜 돈 주는 제도로 보인다. 그러면 심사관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를 영영 찾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비유: 엔진과 바퀴가 아니라 사이드미러다


돌이켜보면 나는 마케터나 세일즈 출신도 아니었고 재무 전문성도 없었지만, 치유 플랫폼을 창업해 정부 지원금으로 9억 원에 선정되며 버텨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단지 '안갚아도 되는 돈 좀 타고 보자' 는 심리로 들어가면 거의 100% 실패하고 오히려 본업에 상처만 난다.

정부지원 사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디에 초점을 두고 접근하느냐가 거의 전부를 가른다.


여기에서 내가 자주 쓰는 비유가 하나 나온다.

지원사업은 자동차의 엔진과 바퀴가 아니다. 미완이더라도, 덜컹거리더라도,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엔진과 바퀴로 차의 기능을 이미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사이드미러를 달고 와이퍼를 달고 도색을 새로 하는 데 쓰는 돈이 지원금 인 것이다.

엔진과 바퀴, 즉 처음 굴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지원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지원금 따서 창업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은 심사관 입장에서는 거의 탈락의 시그널이다.


반대로 이미 작은 매출이라도 있고 고객이 있고 불편하지만 어떻게든 돌아가는 모델이 있는 상태에서 이걸 더 완성도를 높이고 크게 키우는 데 이 예산을 쓰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비로소 심사관의 눈에 들어온다. 가능한 한 아주 허접하더라도 먼저 바퀴를 달아서 굴려보라. 고객에게 직접 팔아보고 클래스든 제품이든 돈을 받아보고 피드백을 듣고 그 데이터를 들고 지원사업에 들어가는 게 맞다. 그러면 설령 지원사업으로 만든 기능과 디자인 일부를 나중에 떼어내더라도 바닥에는 여전히 굴러가는 차가 남아 있다. 반대로 지원사업 예산과 외부투자로 만든 화려한 외형만 있고 내부 엔진이 없으면 예산이 끊기는 순간 그대로 멈춰선다.



치유를 산업의 언어로 번역하는 법


그러나 문제는 치유라는 영역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정부지원 사업이나 투자자 입장에서 모든 사업의 기본 로직은 같다. 누구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 해결을 어떻게 키우고 확장할 것인가, 그것을 할 팀은 누구이고 시장은 어디에 있는가. 제조업이든 식품이든 기계든 IT 서비스든 이 질문에는 답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미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와 데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유는 인간이 치유되고 회복된다라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좋은 말이지만 증빙이 안 되고 성과를 측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후기와 체험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 정책과 투자와 심사의 언어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치유사업자들이 지원사업에 도전할 때 흔히 하는 패턴은 이렇다.

"명상 프로그램 좋으니까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그래서 정부지원금을 받아서 홍보하고 싶다." "요가나 치유워크숍을 플랫폼에 모아놓고 싶다, 그래서 플랫폼 구축 지원사업에 나가고 싶다." 이 접근으로는 거의 선정되기 어렵다.

심사관 입장에서는 프로그램이나 수업 하나에 예산을 태워달라는 요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치유 그 자체를 좋다는 말로 설명하는 단계에 머물면 산업의 언어로, 정책의 언어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치유의 언어를 정책과 산업의 언어로 바꾸려면 "누가 어떤 문제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무슨 노력을 했는데 왜 실패했으며, 우리가 제안하는 이 모델이 어떻게 다르게 접근해 결국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지표와 사례와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자각, 존재, 무아 같은 단어는 치유 세션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사업계획서에는 참여자의 불면 증상 감소율, 직무 스트레스 지수 변화, 재참여율, 추천 의향, 결제 전환율 같은 말로 바꿔 써야 한다.



고객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라


여기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품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고객을 그리는 것이다.

치유사업자들은 자기가 받고 좋았던 치유 경험을 그대로 사업 아이템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효과 있었으니 남에게도 좋을 거야. 이건 위험한 착각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나의 감동이 아니라 자기 문제의 해소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사업 아이디어를 세웠다면 최소 30명은 만나 커피를 사주고 심층 인터뷰를 해라. 당신이 상정한 고객과 실제 사람들의 고통 포인트가 얼마나 다른지 10명만 만나도 금방 드러난다. 대부분은 이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세웠던 아이디어가 절반 이상 망상에 가까웠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이 인정이 사업의 1페이지다.


비슷한 명상 프로그램 두 개가 지원사업에 도전했다고 치자. 하나는 '제가 이런 걸 해봤는데 너무 좋아서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요'라는 설명에 머물러 있고, 다른 하나는 '퇴사 직전까지 갔던 IT 개발자 50명을 대상으로 6주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참여자 80%가 수면시간이 늘고 업무 몰입도가 높아졌다는 설문 결과를 얻었고, 이 중 10명은 회사 인사팀에 우리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형태는 비슷해 보이지만 두 사업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다. 정부지원 사업은 거의 항상 후자에 손을 들게 된다.



심사관이 보는 것: 뾰족함과 스케일업 가능성


정부지원 사업 심사에서 치유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감성적으로 봐주는 건 없다. 심사관의 머릿속에는 늘 같은 질문이 돌아간다. 이 사업이 3년 후, 5년 후 정말로 자생할 수 있을까? 지금 주는 예산이 나중에 세금, 일자리, 수출, 혹은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형태로 돌아올까?


그러니 사업계획서에서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것은 뾰족함과 스케일업 가능성이다.

뾰족함이란 아주 좁은 고객층이라도 그들이 겪는 문제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짚어주고 그 문제 해결에 진심으로 매달려 온 사람에게 이건 진짜 도움이 되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스케일업 가능성이란 이 모델이 친구 몇 명, 수강생 몇 명, 작은 커뮤니티를 넘어 복제, 양산, 수출, 기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그림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과거 경력을 버리지 마라


나는 치유사업자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먼저 지금까지 걸어온 직업 경력을 버리지 말라고. 은행원으로 오래 일하다가 퇴사해 아로마테라피를 배웠다면 이제 금융은 내 인생과 상관 없다가 아니라 금융권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생활리듬, 조직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권 종사자들을 위한 아로마 치유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도 있고 VIP 고객용 웰니스 키트를 B2B로 제안할 수도 있다.

교사 출신이라면 교사 번아웃과 교실 현장을 누구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있고, 간호사 출신이라면 병원 조직의 고통을 너무 잘 안다. 치유를 새로 시작한다는 이유로 그 전에 쌓아놓은 다리를 통째로 부숴버리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정부지원 사업은 치유 자체보다 치유와 기존 전문성이 결합해 얼마나 설득력 있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를 본다.



모든 사람이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모든 치유사업자가 정부지원 사업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경고하곤 한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사람들만 가르치고 싶다', '숫자도 싫고 마케팅도 하기 싫다', '정책 언어는 질색이다'라면 지원사업은 고통스러운 길이 될 것이다.

지원사업은 돈을 공짜로 뿌려주는 구조가 아니다. 끝없이 사업계획서를 수정하고 중간보고와 결과보고를 하고 지출증빙을 맞추고 심사와 멘토링을 견뎌야 한다. 이건 상당한 시간과 정신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얻게 되는 게 있다.

사업을 보는 눈, 행정과 정책의 언어를 읽는 힘, B2G 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걸 감당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소규모로 자생하는 치유공동체에 머무르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반대로 치유를 사랑하면서도 비즈니스 마인드를 배우고 싶고 마케팅과 브랜딩, 경영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 정부지원 사업은 굉장히 좋은 학교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관광벤처, 콘텐츠 창업 패키지 같은 프로그램들은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안팎의 예산을 준다.

이걸 단순히 돈 받는 기회로 보면 금방 질리지만 내 사업 모델을 구조화하고 검증하는 시간으로 본다면 엄청난 수업료를 국가가 대신 내주는 셈이다.



내가 걸어온 길에서 배운 것


내가 걸어온 길을 조금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코로나 직전 창업을 했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창업사관학교에 힐링 플랫폼이라는 모델로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명상과 치유, 정신테라피는 중기부 패키지 사업의 주류가 아니었다. 다 문화예술이나 보건복지 쪽에서 다뤄지던 영역이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플랫폼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담아 중기부 지원사업으로 가져온 셈이다.

이후 여러 창업지원 사업과 일자리 사업들을 연달아 선정받으며 총 9억 원의 지원에 선정되었고 그 자금으로 팀을 꾸리고 시스템을 만들고 수출 산업에도 선정되어 시애틀에 미국 법인까지 설립했다. 종이 위에만 있던 치유 아이디어를 실제 산업의 언어로 번역해 실행해본 대표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 진실이 있다. 지원사업은 사업이 아니다. 지원사업에 의존하는 순간 사업은 죽기 시작한다. 지원사업은 어디까지나 엔진이 아니라 도색이고 사이드미러다. 지원금 일단 받고보자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본다.



결론: 통역사가 되어라


그래도 지원사업을 꼭 한 번은 경험해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이 과정 안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고객을 정의하고, 어떻게 문제를 언어화하고, 어떻게 수치화하고, 어떻게 행정과 정책의 언어로 나의 가치를 설명할 것인지.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치유사업자는 더 이상 좋은 걸 하니까 알아주겠지라는 순진한 마음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된다.


대신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그 대가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그 구조를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를 묻는 눈을 갖게 된다. 그 눈이 생기면 치유는 비로소 산업이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부지원 사업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레벨업 도구가 된다.


치유의 언어와 정책의 언어를 오가는 통역사가 될 준비가 되었을 때, 치유사업자의 길은 비로소 좋은 마음을 넘어 지속 가능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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