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은수저

by 영주

은수저

김광균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좋아하는 시지만 쉽게 꺼내 읽지 못한다. 속으로 삼키는 슬픔은 통곡하는 슬픔보다 크게 울린다. 자식 잃은 비통함을 절제하며 쓴 김광균의 시 '은수저'는 언젠가 보았던 아빠의 굳어진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상실감은 언제나 빈틈을 비집는다. 채 추스르지 못한 감정을 눌러 놓고 하루 일을 마친다. 산이 저물고 노을이 잠기는 저녁, 둘러앉은 식탁에 비어있는 애기자리가 식구들의 목구멍을 막는다. 따뜻한 방석 자리에 반짝이는 은수저 물리며 고이 키운 애기가 다 남겨두고 떠나가 방석도 은수저도 주인 없이 덩그러니 있다.


주인 없는 방석과 은수저를 무르고 밤이 오면 흘러가는 바람 한 점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손도 발도 작은 애기가 밤 길 무서워 헤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애기를 바람에 태워 배웅시킨다.


애기가 가는구나. 부모는 애기 가는 길이 험한 산이나 추운 바다가 아니라 멀더라도 맨발에 부드러운 풀만 닿을 들길이길 바란다. 불러도 대답 없는 허공에 애기 울음소리가 바람 되어 들려온다.


아이를 '애기'라고 부르는 것에서 사랑이 보인다. '애기'는 '아기'보다 애틋하다. 방석에 앉아 숟가락으로 밥 먹을 정도면 어느 정도 큰 아이일 텐데, 부모 눈에는 그래도 애기다. 부모를 여의거나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이 없는 아이는 고아,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는 과부,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는 사내는 홀아비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부르는 말이 없다. 그들의 슬픔은 감히 어떤 말로도 헤아릴 수 없겠다.


지난 12월 29일 떠나보낸, 누군가의 귀한 애기였을 179명의 영혼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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