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국의 지정학(1) : 2+4=1
한풀이 11 (역·지 6)
1. 들어가는 글
우리는 지금 ‘두 개의 한국’을 살고 있다. 전에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늘 통일의 수사학, 즉 평화통일, 흡수통일, 북진과 무력통일 등 ‘하나 되기’ 주제는 논의되고 있었는데, 이번 정부는 북한은 주적(主敵)이고 선제공격의 대상이라고 선언하였고, 북한도 이제 남한은 같은 민족이 아니고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무력 통일하겠다는 망발까지 일삼고 있다.
이번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3국 연합의 시너지를 주장해 왔는데, 요즘 들어 일본의 기시다 정부는 북에 접근하여 북일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모양새를 보인다.
올 11월에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이 지역에 회오리가 불지도 모른다. 그가 김정은과 브로맨스를 내세워 주한미군 철수나 주둔비 대폭 인상 등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4월 10일 총선 후 새로 구성될 국회를 염두에 두고, 내가 생각하는 새 지정학 (new geopolitics)이라할까 지전략 (geostrategy)를 소개하려 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2+4=1이다. 남한과 북한, 즉 2개 한국의 주도로 주변 4개국을 설득해서 통일에 이르자는 이야기다. 나는 동서독의 통일 사례를 눈여겨보는데, 중요한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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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일의 분단과 통일
1990년 통일에 이른 동서독은 ‘2+4=1’ 원칙을 채용했다. 독일 통일에는 서독과 동독 등 2개의 독일이 있었고, 미국 · 영국 · 프랑스 · 소련 등 4개의 핵심 당사국이 있었다. 그 외에도 2차 대전에 참가한 많은 나라들이 독일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독일은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독일 통일과 평화에 대한 책, 『비밀과 역설』(이동기, 아카넷, 2020)에서 인용한 글이다.
‘1990년 2월부터 9월까지 독일통일의 외적 조건과 형식을 둘러싼 주요 결정들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 나토와 바르샤바의 존재, 유럽공동체와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역할, 동서독 사이의 「기본조약」 및 서독과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 사이의 여러 협정들을 반영해야 했다. 4대 열강과 함께 2개의 독일국가가 함께 통일의 외적 형식을 논의해야 했다. 동시에 이것을 ‘6자 회담’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4대 열강이 독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따로 인정했기 때문이지만, ‘4+2 회담’이 아니라 ‘2+4 회담’이라고 불린 이유는 서독과 동독의 결정이 우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2+4 회담’ 형식은 애초 미국의 제안이었지만 서독 정부는 즉각 받아들였고 회담이 개최되도록 바쁘게 움직였다.’(249~250쪽)
‘2월 14일 오타와에서 열린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의 23개국 대표 회의는 독일통일의 외교 문제를 논의할 기본 틀로 ‘2+4회담’을 확정지었다. 1990년 2월 24일과 25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은 통일독일이 나토 회원국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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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2차대전 이후 분단된 나라에 독일, 오스트리아와 조선이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戰犯國)이었다. 두 나라 모두 1945년 종전 후 미영불소 4개국이 분할 점령하였다가 오스트리아는 10년만인 1955년에 통일되고 그해 영세중립국을 선언하였다.
독일은 분단 후 45년만인 1990년에 통일된다. 독일 통일에 대해 독일인들은 통일이라는 말보다 재통일(Wiedervereinigung)이라고 부른다. 역사상 처음 독일이 통일된 것은 1871년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이고, 이때부터 나치 독일의 1945년까지 통일된 나라였다. 이때를 제외하고 독일은 늘 조각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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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는 어쩌다 분단되었나?
우리는 어쩌다 분단되었나?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국제적으로 독립이 약속된 나라(1943년 11월 27일 미 · 영 · 중의 카이로 선언 등)였는데,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한 전범국 일본 대신 우리가 분할된 것이다.
우리의 분할과정을 설명하는 책들을 살펴 보자. 우리는 미국의 배려 또는 호의에 의해 현재까지 발전해 왔다는 이론을 배워왔지만, 사실 미국은 전범국 일본은 특별히 대우하는 대신 우리는 제대로 대우하지 않은 게 밝혀지고 있다. 아래 3개의 글들은 모두 미국인의 글이다.
가. 『두 개의 한국, The Two Koreas』
아래는 우리 현대사에 관한 책『두 개의 한국, The Two Koreas』 (돈 오버도퍼, 로버트 칼린, 길산, 개정판 2014)에서 인용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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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관을 지낸 저명한 한국 전문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은 1974년 한반도 분단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 시대, 이 세계에서 한반도의 분단처럼 그 연원이 놀랍고 충격적인 사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분단 당시 당사자들의 의지와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다.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의 부산물이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한반도 분단에 따른 엄청난 부담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경솔한 한반도 분단과정과 오랜 역사적 사건들이 예시하듯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인 탓에 강대국들의 각축전에 시달려 왔지만 어정쩡한 크기 때문에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빼고 강대국들의 우선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강대국들은 한국의 운명 그 자체에 대해 충분하게 심사숙고하지 않았고 위급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문제 해결에 나섰으며 근시안적 태도로 對 한반도 정책을 결정했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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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리지웨이의 한국전쟁』
다음은 1967년에 영어로 출간된 책인데, 작년에 우리말 번역본이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을 지내다가 맥아더 해임 후 유엔군사령관이 된『리지웨이의 한국전쟁』(매슈 B. 리지웨이, 플래닛미디어, 2023) 에서 인용한 글이다.
‘한반도가 38선을 중심으로 분단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38선은 단순히 군사적 편의 때문에 그어졌고, 그 당시 군사사학자들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38선을 누가 처음으로 제안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3쪽)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한반도의 남쪽을 떠맡게 되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사전 숙고도, 구체적인 계획도, 결과에 대한 계산도 없이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지도 않은 신탁통치 이행 의무를 지키기 위해 남한에 왔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남한에 오자마자 큰 실수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인들이 경멸했던 친일파 관료들을 정부 요직에 그대로 임명한 것이었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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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동아시아 동맹국들 간의 문제?---」
다음은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넘어서 동아시아냉전과 식민지 전쟁범죄의 청산』라는 책(메디치, 김영호 외 공저, 2022년) 에서 미국 학자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이 쓴「동아시아 동맹국들 간의 문제?문제 많은 미국의 과거」라는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1910~1945)가 끝날 때까지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둘로 나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부분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고, 미국인들 역시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1945년 8월 10일 늦은 밤에 워싱턴에서 일하던 두 미국인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은 한국 지도를 쳐다보면서 북위 38도를 따라 선을 그었다. 그것은 서울을 미국의 통제 아래 두는 대신 그 선 북쪽에 있는 것은 모조리 소련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모스크바의 지도자들은 식민지 조선이 아닌 일본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었으며, 전리품으로 일본의 북쪽 절반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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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 우리의 처지
우리는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1948년에 독립 후 기적적으로 성공하여 선진국이 되기에 이르렀다.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하였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부유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사례는 처음이라고 한다.
그 후 계속하여 대한민국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2021년에는 경제력 순위가 세계 10위, 군사력 순위가 6위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2024년 경제력은 세계 13위, 군사력은 세계 5위가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선진국이 된 지금도 미국이나 주변 나라들 눈치를 보며 분단국으로 지낼 것인가? 역사적 지위인 통일국가로 돌아갈 것인가이다.
1990년의 독일을 보자. 미국(부시 대통령)은 독일(콜 총리)이 통일되기를 바랐지만, 영국(대처 총리)은 통일 독일이 유럽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반대하였다. 프랑스(미테랑 대통령)는 유보적이다가 찬성으로 돌았고, 소련(고르바쵸프 대통령)은 서독의 경제 지원을 대가로 통일을 허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전범국이던 오스트리아, 독일에 대해서는 통일을 허용하고 우리에게는 통일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나?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독일은 늘 조각난 나라였다가 1871년부터 1945년까지만 통일된 나라였지만 우리는 늘 통일된 나라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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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일한국, 2+4=1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신라가 고구려·백제를 통일한 통일신라부터라면 676년부터(이때의 통일신라 영토가 한반도를 넘어 만주에 걸친다는 주장이 있다), 고려(이때의 우리 강역은 한반도를 넘어 대륙에 걸쳐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부터라면 918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는 늘 하나로 살아왔다.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독일처럼 통일을 주장할 시간이 되었다. 북한의 국력은 우리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력은 서독의 43% 수준이라고 알려져 왔다(통계 조작으로 인하여 실제는 이보다 작았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북한의 60배의 국력을 갖고 있다. 간단한 통계를 보자.
한 국 북 한
인구 5130만명 2600만명(추정)
GDP 1조7천억달러 300억달러
1인당GDP 33,000달러 1150달러
무역규모 1조2600억달러 16억달러
지금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현재처럼 남과 북이 주적이라며 적대상태로 계속 지낼 수도 없지 않은가.
북한의 국력은 우리의 2%(1/60) 미만이다. 대한민국의 2024년 국방예산이 59.6조원인데, 북한 GDP 총액
300억 달러는 39조원(1달러 1300원 환산)에 불과하니까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언어, 문화가 같은 공동운명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을 같은 민족의 나라, 선량한 이웃으로 만들 수 없을까?
우리도 독일의 통일 방식 2+4=1을 적용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5위의 국방력을 가진 나라인데 같은 민족인 북한을 설득해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폐기를 설득하되, 불응시에는 우리도 핵무기 개발을 선언하거나(북한이 폐기 시 우리도 즉시 폐기한다고 선언), 일본처럼 핵무기 개발 직전단계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준비하자.
이제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선진국이 된 우리는 힘의 우위에 기반한 통일을 이야기할 시기가 되었다. 구체적 방안은 다음 이야기로 미룬다.
* 2024년 4월 17일에는 ‘통일한국의 지정학(2): 한국어 지역의 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