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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드레와 열아흐레 소돌과 주문진 해변, 오대산 자락

by 준환

8.21.(일) 맑음


소돌과 주문진해변


이번 주 들어 가장 맑은 날씨. 동생 가족은 어제 하루 짧은 바다가 아쉬워 늦게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은 해수욕장 폐장일이기도 하다.


소돌해변은 영진해변과 주문진해수욕장 사이에 있다. 소돌바위(牛岩) 옆, 암초로 만을 이룬 자그마한 모래사장으로 한달살이 첫날 동네 주민이 추천하기도 했다. 일행이 많아 의자 딸린 파라솔을 빌렸다. 평소보다 비싼 값을 치렀으나 넓은 차양 아래 편안히 바라보는 쪽빛 풍경을 생각하면 그리 과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제 키에 어울리는 바다로 빠져들었고, 뜨거운 햇살과 맑은 물빛에 나도 역시 끌렸다.


암초까지 걸었다. 형형색색, 물고기와 게의 보금자리 바깥은 센 바람에 밀려온 파도가 어깨 높이까지 쉴 새 없이 부딪혔다. 잔잔한 안쪽은 어른에게 얕고 좁았다. 고개 돌려 바라본 저 멀리 넓은 백사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영진해변같이 스노클링 하기 좋을까 하여 헤엄쳐 갔다.



주문진해변. 사람들은 모래찜질하거나 튜브에 올라 밀려오는 거친 파도를 즐겼다. 일부는 파라솔 아래 한가롭게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언뜻 보아도 조개로 묵직한 망 쥔 사람들이었다. 그들처럼 발로 물속 모래를 긁으니 딱딱한 게 느껴졌다. 물장구를 쳐 손에 쥔 건 자그마한 바지락이었다. 군집하는 습성이 있는 듯 파헤친 곳마다 손가락 한 마디부터 손바닥만 한 것까지 서너 개씩 드러났다. 오래되지 않아 양쪽 주머니가 불룩했고 예상 못한 횡재에 어깨가 들썩였다. 한참 후 더 담을 곳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소돌로 돌아갔다. 떠내려간 줄 알았다는 아내의 핀잔에도 아랑곳 않고 의기양양하게 잡은 걸 풀어놓았다. 자연스레 나오는 탄성. 돌아가는 가족에게 주려 한곁에 두고, 말없이 사라져 걱정했던 아이를 위해 작은 물고기와 게를 잡아 왔다. 모래 구덩이에 넣으니 가운데 큰 돌과 함께 어항 느낌이 났다. 다만 물이 금세 빠져버려 아이들은 연신 작은 통으로 물을 날랐다.


조개에 흥미를 보이는 매제와 주문진 해변으로 갔다. 밀물인 듯 아까보다 수위가 올랐고 귀가 멍할 정도로 파도가 몰아쳤다. 커다란 체구도 몸 가누기 어려워 나동그라지길 여러 번, 한 시간 남짓하게 버텨 물통 반을 채웠다. 잠시 후 모두 자리를 옮겨와 각자 바다놀이에 빠진 사이 하늘은 어느새 청회색이 번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했다.


먼 길 가기 전 저녁 먹으러 함께 주문진 읍내로 갔다. 낮 동안 바다에 심취했던 세 꼬맹이는 맵지 않은 맑은 칼국수 맛에 빠져 올챙이배가 되었다.


차창을 내려 손 흔드는 동생 가족에게 우리 식구도 한껏 밝은 얼굴로 환송했다. 삼 일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여행,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남기 바랐다.




8.22.(월) 맑음


오대산 자락


아이 바람대로 동물체험장에 갔다. 먹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 본래 양보다 더 많이 받았다.


넓은 비닐하우스로 된 건물 몇 동에는 동물들이 다양했다. 비록 야생보다 턱없이 좁았지만 깨끗한 우리 안에서 건강하게 자랐다. 직원들은 전문 지식이 풍부했고 반려동물을 대하는 것만큼이나 정감이 두터웠다. 그래서 몇몇 경계심이 없는 것들은 아이들의 품에 안기거나 머리 위에 올려졌을 때도 편안해했다. 동물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장면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웃으며 손뼉 치는 모습까지 모두 첫날 받은 따뜻한 감정이었다.


갔던 곳에서 더 볼 게 있을까?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아이를 따라왔을 뿐이라 생각했다. 마침 극장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영화를 보고는 줄거리와 영상이 괜찮은지 떠올린다. 마음에 들어 다시 본다면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씩 기록되었다. 첫날이 분위기였다면, 이번은 설명에 관심이 갔다.


토끼도 영역을 표시한다. 수컷 계피는 일어나자마자 자기 집을 나와 암컷 우리 앞에서 똥을 쌌다. 고슴도치와 미어캣은 밀웜을 좋아한다. “바싹 튀긴 새우 맛이에요. 좋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람도 먹을 수 있어요." 만일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면 귀뚜라미나 메뚜기가 훌륭한 대체재라는 직원의 말이었다. 게코도마뱀은 유리 창문에도 올라간다. 네 발에 미세한 털 수백만 가닥이 뻗어있어 정전기로 수직 벽에 달라붙는다. 놀라면 높이 뛰어올랐다 내리나 다치지 않는다. 혹시 걱정되어 섣불리 잡다 꼬리가 끊어지면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게코 대부분은 재생 횟수가 한 번이기 때문이다. 나일모니터 도마뱀은 여러 번 다시 난다. 다만 뒷다리 바로 뒤쪽까지 잘렸을 때야 새로이 생장한다. 족제비는 생쥐 닮은 머리가 작고 길쭉한 몸이 날렵하다. 보기보다 성격이 순해 털과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다. 암컷 족제비는 제때 교미하지 못하면 죽는 경우가 있다. 샘에서 체취 강한 액이 계속 분비되어 자궁이 녹기 때문이다. 수입되며 중성화 수술을 받기도 하나 안타깝게 간혹 신장이 나빠진다. 양과 염소는 여러 마리가 모여있다. 먹이를 집어주면 큰 놈이 우격다짐 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작은놈들이 한 곁으로 밀려났다. 작은 것들에게도 몇 입 주고 싶어 큰걸 유인하는 사이 아이가 양껏 먹였다. 체구는 작지만 먹어도 먹어도 처음인 양 입맛을 다셨다. 양에게 먹이 주는 데 질투 난 염소가 집이 다 흔들리도록 들이받았다. 잘생긴 큰 뿔을 마구 휘두르며 난장 피는 욕심쟁이다. 앵무새는 씨앗 까먹기 선수. 딱딱한 해바라기 씨앗이 위아래 뾰족하게 맞닿은 휜 부리에 들어가 오물오물 몇 번 씹히니 하얗고 고소한 속 씨가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안녕.”이라며 알은체하는 목소리에 끌려 집게로 계속 집어주었다. 영리보다는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독신 남자 사장님과 직원 모두 친절했다. 둘이 보낸 한나절이 재미있어 다음 주 또 오기로 했다.


오대산은 경치 좋은 자락마다 오래전부터 절이 들어섰다. 진덕여왕 4년 창건된 보현사는 본당과 스님들 주거를 위해 근래 지은 길상원으로 나누인다. 그 사이로 흐르는 수려한 계곡이 깊은 산속에 유독 이 절을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인접한 본당 담벼락 옆에 돌계단이 나 있어 샛문이 있으리란 기대로 올라갔다. 좁은 대나무 숲에서 잠시 서서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으로 난 인적 드문 소로가 보였다. 낭원대사탑비를 알리는 안내표지와 함께였다. 창건자인 자장율사가 아닌 다른 승려를 위한 비석이 있다는데 이유가 궁금해 호젓한 길을 올랐다. 낭원대사는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한 고승이다. 889년 보현사를 맡아 크게 번성시켰다가 입적 후 고려 태조로부터 같은 이름의 시호를 받았다. 한동안 버려진 그의 공덕비는 약 삼십 년 전 지금 자리에 복원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승은 양지바른 땅 잘 가꿔진 곳에서 지금도 절을 굽어살핀다. 샛문이 잠겨있어 아래로 내려와 일주문을 통해 법당에 들어갔다. 아담하고 깔끔한 건물들이 흡사 절을 본떠 지은 정갈한 고택으로 느껴졌다. 불당을 오르는 계단 위 고무신과 기와는 세련된 화분과 탱화 액자가 되었고 잔디밭과 정원수, 반듯한 석축으로 마당 전체가 잘 꾸며진 정원이었다.



군데군데 작은 벤치에서 방문자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마당에서 수평으로 연결된 옥상에 서니 저 멀리 강릉 시내와 동해가 보였다. 반대편 오대산 쪽으로 수선당과 지장전, 삼성각 등 전각이 있고 그 뒤로 선 열 그루 남짓 우람한 소나무는 나한상이 되어 이곳을 보호하고 있었다. 절 안은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세 식구는 내려가는 길 작은 대웅전에 들어가 건강과 우주 평화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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