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목) 흐림, 비
정동진
본래 울산바위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 케이블카를 타려 했다. 갈 채비가 끝났을 때 비가 예보되어 갑작스레 정동진으로 바꾸었다. 올해 강릉 여름 날씨는 삼분에 이가 궂다.
거리 짧은 국도를 두고 긴 고속도로를 골랐다. 옥계에서 시작하는 해안도로 헌화로를 달리고 싶어서 였다. 신라 성덕왕 시절 순정공의 부인 수로는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을 따라오다 이곳 어딘가에서 잠시 쉬었다. 멀리 절벽에 핀 아름다운 꽃이 갖고 싶은 나머지 ‘꺾어다 바칠 자가 누구냐’라는 말을 하자 그 곁을 암소 끌고 지나던 늙은이가 부인의 소원을 따르며 노래지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바다와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도로는 한번 큰바람에도 넘어올 듯 넘실대는 파도와 깎아진 절벽 사이에 있다. 실제로 드문드문 아름다운 꽃이 피어 서정적인 노래에 어울리는 곳이다. 천천히 지나 심곡바다부채길 입구에 섰다.
하늘에서 본 해안은 바다를 향해 펼쳐진 부채모양이다. 정동진까지 편도 삼 킬로미터 철제 구조물로 된 길이 몇 년 전 큰 태풍에 끊어졌다가 올 칠월 심곡항에서 시작한 절반이 다시 열려 따라 걸었다.
손이 닿는 곳에 형형색색 독특한 단층을 지나 절벽 좁은 돌 틈에 뿌리 내린 향나무가 넓은 군락을 이루었다. 보기 어려운 해당화나 땅채송화 같은 바닷가 식물이 모래땅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절벽 허리에 걸친 그레이팅 길 아래로 아찔하게 센 파도가 몰아쳤고 몽돌해변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내 고운 백사장이 나왔다. 해안 모양을 따라 오르내린 계단 다음에는 한동안 평평했다. 절반 갔을 때쯤 커다란 부채바위가 있어 어여쁜 여인과 노인의 오래된 이야기를 전했다. 가는 내내 다양한 배경으로 사진에 담느라 모두 지루하지 않았다. 비록 산책 구간이 끝난 반환점에서 더 걷기를 거부하고 주저앉았지만.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으로 갔다. 엄청나게 큰 원형 시계에 감탄하고 있을 때 아이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여덟 량 무지개색 기차에 끌린 탓이다. 오래된 까만색 증기 열차는 시계와 시간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이었다. 사람이 시간에 부여한 의미는 무엇일까?
화면 속 내레이션은 ‘모든 이에 동등하게 주어진 기준’이라 말했다. 사회가 체계화될수록 때마다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정확한 시간을 알 필요가 있었다. 오랜 기간 ‘시간에 대한 집착’은 ‘시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정확한 시계를 위해 더 정교한 기계를 만들었다. 그건 동력이 결정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같은 고대 문명에서 최초 시계인 해시계가 발명된 후 물과 불을 지나 근대 ‘진자’, 현대 ‘수정’과 ‘원자’로 변화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시계는 변화와 한계, 혁신의 반복이었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아직 어느 곳에서나 빠르기가 같은 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속도와 중력이 큰 곳에서 시간이 더디다는 이론을 만들었고 인공위성에서 사실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혹 앞으로는 가능할까? 태양계 여덟 행성조차 자전과 공전주기, 밀도가 다르기에 상당기간 어려울 것 같다. 공간마다 다른 빠르기로 바뀌는 시계가 나타날 때까지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설명은 다양한 시계 전시로 이어졌다. 예술 작품과도 같은 중세 유럽의 화려한 시계, 타이태닉호 침몰로 바닷물에 잠긴 금빛 회중시계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쏠린 건 현대 작가들 것이었다. ‘갈매기의 꿈’이란 대형 나무 시계는 이름처럼 한 마리 갈매기를 쏙 닮았다. ‘그랜드파더 세븐맨 클락’이란 대형 시계 안에는 시간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곱 인형이 있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간의 노예 또는 근면한 사람으로 다르게 해석했다. 중세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동그란 아날로그 모양을 유지한 채 예술적 외관에 힘썼다면 현대는 정형화된 형태 없이 작가의 철학과 의식을 반영하는데 더 큰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시계는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장치라는 선입견이 무색했다.
시간박물관을 나와 레일바이크를 타러 나갔다. 들뜬 마음으로 해변을 따라 난 선로 위 바이크에 앉았다. 너무 육중해 언덕은 물론 평지에서도 전기동력을 쓸 수밖에 없었으나 겉으로는 페달을 힘껏 밟아 가는 체를 했다. 느린 롤러코스터였으나 바닷바람 맞으며 덜컹거리는 차체에 앉아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재미가 빠른 것 못지않았다.
8.26.(금) 맑음
풍경을 즐기는 나이
산과 바다 경치를 오롯이 즐기는 나이는 언제일까? 울산바위를 내려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나눈 주제다.
소공원에서 시작해 신흥사와 흔들바위를 거쳐 울산바위에 이르는 산길은 왕복 약 네 시간 코스. 아내는 오늘까지 네다섯 차례 왔었다고 한다. 처음 수학여행 온 후 친구와 둘이, 결혼 전 가족끼리, 나와 함께, 그동안 꽤 여러 번 왔으나 설악산 풍경을 즐긴 적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높은 곳에 올라 아래로 넓게 트인 시야가 좋았을 뿐 오늘에야 비로소 비경임을 알았다며 한참 여운에 잠겼다. 비록 울산바위가 아닌 흔들바위 근처에서 멈췄지만. 난 이제야 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호응했다. 쌓인 경험이 체화되었거나, 마음에 여유가 생겨 대상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거라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든 길가에 앉아 경이로운 눈으로 산 자체를 찬찬히 살폈다는 건 자연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불혹이 되니 산과 바다가 그렇게 다가오나 보다.
평소처럼 간단한 차림으로 나섰다. 얇은 바람막이, 물과 커피, 아이 간식에 더해 오이와 방울토마토도 쌌다. 공원 입구 편의점에 들러 산에서 먹을 삼각김밥을 계산대에 올렸는데 아이가 캐러멜을 집어 슬며시 따라 놓아 웃음으로 눈감아 주었다. 힘에 부칠 때마다 한 개씩 까먹으면 힘이 날 거다. 신흥사 부지를 지나는 탓에 예상 밖에 입장료와 주차료를 물었다. 목적지가 아니건만 내야 하는데 못마땅했으나 날이 맑고 경치가 좋아 금세 풀어졌다. 거대한 청동 불상을 지나 다리를 건넜다. 흐르는 계곡 이쪽저쪽은 모서리가 둥근 돌덩이를 계단식으로 쌓아 마치 원래 그런 모양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어진 넓은 길을 따라 시냇물과 산비탈 우거진 숲을 보며 계속 걸었다. 아이는 울산바위까지 자신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과연 그럴까? 한낮으로 접어든 시간, 산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위가 잦아들어 아직 괜찮았다.
사십 분 정도 올랐을 때 바위가 나타났다. 수가 여러 개인 데다 아랫부분이 넓게 땅에 붙어 사진에서 보던 흔들바위는 아니었다. 곁에 서서 울산바위를 올려다보니 중간쯤 감자 닮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십여 분 후 만난 흔들바위는 와우암이라 이름 붙은 평평하고 커다란 바위 한쪽 끝에 있었다. 혹시 움직일까 앞서 온 여느 사람들처럼 힘 있게 밀었으나 육중한 무게에 그럴 리 없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 뒤에는 작은 계조암과 불상을 안치한 넓은 석굴이 있었다. 천사백여 년 전 원효와 의상 같은 고승들이 수행을 쌓았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바다를 향한 산세가 빼어났다. 유서 깊은 석굴에서 삼배하고 돌아서는데 그 모습을 기특하게 여긴 여 보살님이 아이에게 과자를 하나 손에 쥐어 주셨다.
울산바위까지 이제 일 킬로미터 남았다. 그만 쉬고 싶은 아이, 계속 올라가려는 아빠 사이에 균형추는 올라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간 아쉬웠던 엄마도 시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계단은 한동안 걸을 만했으나 경사가 심해지더니 가파른 모양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포기한 둘은 내려가 흔들바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난 서둘렀다. 어느덧 돌계단이 끝나고 험한 바위에 기둥을 박아 만든 나무 계단이 나왔다. 지그재그로 정상까지 이어진 길 앞에서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 강릉에 마지막으로 올 손님인 친구와 이곳에 왔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계절,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땅에 바람도 거세 걸을 때마다 계단 따라 몸이 흔들렸다. 둘 다 무서움에 떨다 입구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그때보다 수월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힘에 부쳤다. 체력에 한계로 내려갈까 했으나 머리를 비우고 마냥 걸으니 조금 견딜 수 있었다. 다시 숨이 찰 무렵 시리도록 맑은 하늘과 바위 절경에 힘을 냈다. 목적지. 머리 뒤로 꼭대기가 조금 남았으나 등산로는 여기까지였다. 동양에서 가장 큰 돌산이라 불리는 바위에서 대청봉, 천불동계곡, 화채능선이 손에 닿을 듯했고 멀리 속초 시내가 보였다. 내려오는 길 공룡능선이 바라보이는 쪽, 바위 여기저기 누군가 긁어낸 듯한 오목한 구멍이 많았다. 오랜 시간 물과 염분에 부식이 빨라진 풍화혈로 바닷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둘과 헤어졌던 곳에서도 한참을 걸어 흔들바위에 닿았다.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쉬는 아이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여러 가지 많이 보챘을 텐데 한참 전에 내려와 무얼 하며 보냈을까. 아내는 누구보다 호기심 많고 까탈스러운 내가 원하는 데로 배려해 준 고마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