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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나흘과 스무닷새 물고기 잡기, 마지막 손님

by 준환

8.27.(토) 맑음


물고기 잡기


8월 내내 주말이 맑았다. 그때마다 찾아온 손님들은 모두 우리 아이 또래가 있어 바다에서 시간 보내기 좋았다. 어젯밤 마지막 손님으로 온 하니네와 바다에 갔다. 가장 인상 깊던 소돌해변이다.


지난 주말은 관광객이 빼곡했다. 불과 일주도 지나지 않아 서늘한 해풍과 텅 빈 모래사장에서 끝나가는 여름이 느껴졌다. 좋은 자리를 골라 텐트 치고 의자를 넓게 펴자 다른 일행도 하나둘 자리 잡아 여유로웠던 작은 해변은 어느새 가득 찼다. 한낮이나 물이 차가워 오래 들어가 있기는 어려웠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가져다주려 떠다니는 미역을 건지다 돌 틈에 작은 물고기가 많이 보였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 물고기잡이에 열중했다. 손을 펼쳐 가까이 대고 기다렸다가 올라오면 잽싸게 감아 덮었다. 손톱만 한 것에서 손가락 크기까지 잡을 때마다 가져다주니 번거로워 보였나 보다. 아이는 작은 바스켓을 가지고 오다가 큰 물고기가 담긴 어느 통을 보았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물고기를 잡아 와 넣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놀래기야.” “어떻게 잡았어요?” “돌 틈에 있는 걸 뜰채로 떴지.” 나도 따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이는 그것에 매료되었으나 맨손으로 잡기 어려웠다.


소돌해변 끝에는 모래사장을 지나 바다까지 이어진 배수관으로 꽤 많은 물이 흘렀다. 마을에서 내려온 풍부한 유기물을 먹기 위해 그 앞으로 수많은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한동안 그 위에 서서 감탄하던 하니 아빠는 잠시 사라졌다가 뜰채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와 내게 하나를 건넸다. 채가 있으면 단박에 잡을 수 있어 보였나 보다.


물속 뜰채질은 쉽지 않았다. 시야가 구부러져 정확히 안을 볼 수 없었고 빠르게 휘두르면 채가 돌아가거나 휘어졌다. 애초에 물고기는 잠자리를 잡듯 하기 불가능했다.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담가 물속을 바라봤다. 암초에 뿌리를 내린 물풀 사이로 생명체들이 많았고, 그중에 바위와 같은 색으로 움직이지 않는 놀래기가 있었다. 잠수해서 이리저리 살피니 바위 아래쪽은 꼭 한두 마리가 있어 채를 짧게 쥐고 조용히 다가갔다. 위에서 덮길 여러 번, 너무 센 파도에 몸이 뒤집혀 놓치다가 결국 손가락 크기 하나를 잡았다.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고 아이에게 달려가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려동물을 쓰다듬듯 신기하게 만졌다. 자잘한 몇 마리를 더 잡아다 주고 손바닥보다 큰 게 있어 머리 앞을 겨냥해 재빨리 덮었다. 뜰채 안에서 팔딱이는 큰 것 한 마리. 아이는 물론 주변 사람까지 몰려와 구경했다.



오랫동안 찬물에 있던 탓에 계속 몸이 떨렸다. 모래밭에 앉으니 만조가 가까워져 텐트 곁까지 바닷물이 몰려왔다. 바다 한가운데 파도는 바람에 따라 불어오다 암초에 걸려 하얗게 부서지길 반복했다. 멀어질수록 짙은 파란빛 바다를 바라보며 떨림을 햇살 온기로 누그러뜨렸다.


저녁 식사를 끝낸 아이들은 부산해졌다. 아내는 친구와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먼저 일어나 가까운 놀이터로 갔다. 남은 술을 비우고 놓고 간 아내 휴대전화를 챙겨 돌아올 때 알 수 없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빌린 전화 너머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하니가 다쳤다는 말이었다. 서둘러 약을 챙겨 나온 길 오래되지 않아 만난 둘은 표정이 정반대였다. 밝고 씩씩하게 걷는 하니, 반면에 아내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다. 처음 돌본 여자아이 눈 주위가 붓고 쓸린 미안함에 모정이 더해진 듯. 집으로 와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약을 발라주며 안타까움을 덜었다.


친구와 둘이 밖으로 나왔다. 알고 지낸 지 이십사 년, 대학 일 학년 때 만나 비슷한 직종에 몸담으며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녔다. 식성이 무던하고 상대 성향에 잘 따라 같이 다니면 편했다. 진주로 이전한 본사로 내려갔을 때 가까운 곳으로 이직한 회사 후배 번호를 무심코 건넸다. 하니는 그녀와 사랑의 결실. 이제까지 잘살고 있으나 늘어가는 연차 동안 동료와 쌓인 갈등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 절반 달려온 회사 생활, 남은 절반은 어떻게 보낼지, 또 노년을 위한 후회 없는 준비는 무엇인지 생각을 주고받았다. 난 휴직과 한달살이를 추천했다. 취미를 몇 개 만든 지난 일곱 달이 즐거웠다고 말해주었다.



8.28.(일) 맑음


마지막 손님과 작별


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났던 하니가 아홉 시 넘도록 잠에 빠져 있다. 낮 동안 지치지 않는 모습에 감탄했으나 여섯 살은 여섯 살이다. 오전은 마술 체험을 예약해 두어 깨워 준비했다. 나서기 전 다친 얼굴에 약을 한 번 더 바르느라 진저리 치며 ‘엉엉’ 울었다. 고통스러운 만큼 흉터가 남지 않기를 바랐다.


아침 식사는 장칼국수. 주문진 읍내 있는 곳은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하얀 것이 나온다. 요전번 조카들처럼 하니도 좋아해 작은 대접으로 네 그릇을 먹고 나서야 만족한 표정이었고, 우리 아이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밥을 말아 비웠다. 서로 친남매같이 경쟁하는 모습.


마법 학교는 강릉 시내 가는 길에 있다. 마술쇼가 시작되기 전 간단한 체험 도구가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몸이 분리되거나 양팔로 사람을 들어 올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기구는 오래전 텔레비전에 나온 쇼를 연상케 했다. 추억을 되살리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겨 마술쇼가 펼쳐지는 방으로 갔다. 입담 좋은 마술사가 천과 막대, 비둘기를 이용해 관심을 끌었다. 살아있는 비둘기는 큰 몸집에도 어디에 숨겨졌다 나왔을까? 보는 내내 흥미를 느꼈다. 마술 비밀을 몇 가지 알려주기도 했다. 자석이나 소품 안 좁은 공간에는 숨겨진 장치가 있어 빠른 손동작과 함께 초현실을 만들었다. 요 몇 가지 도구로 사람들 앞에 시연한다면 꽤 재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체험관을 나서기 전까지 일행 모두 만족했다. 다만 출구에서 문제가 생겼다.


작은 백에 담긴 네 종류 소품 한 묶음은 오늘 쇼에 대한 기념품이었다. 반씩 나누면 되리라 생각했으나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장난감에 불만스러웠다. 한 살 어린 하니에게 원하는 걸 몰아주고 돌아온 아이는 눈물과 콧물을 모두 쏟아냈고, 그 슬픔은 머지않아 아내로 옮겨붙어 원망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새로 한 묶음을 사 펼쳐 보인 다음에야 진정됐다. 매번 똑같은 종류대로 아이마다 사주기는 어려운 일, 여럿을 키우는 가정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의문이었다.


친구가 집에 가는 길 양떼목장을 들른다는 말에 동물체험관으로 안내했다. 하니는 염소와 토끼, 보아뱀, 고슴도치와 밀웜 등 처음 보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뾰족한 침을 쓰다듬고 차갑고 만질만질한 비늘을 목에 두르며 첫날 우리 아이와 같은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동물은 신비롭고 좋은 친구다.


시계가 세 시를 가리켰다. 지금 출발하면 집이 있는 진주까지 아홉 시에나 도착한다. 아쉬움에 서로 차를 오가며 두세 번 손 흔들어 작별했다. 곁에 살면 오누이가 되어 좋으련만 다시 만날 때까지 한참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주문진해수욕장 옆 향호해변에 갔다. 모래사장과 푸른 하늘 배경이 인상적인 BTS 정류장에서 어려진 감성을 채우고 바닷가에 앉았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 제주살이와 다르게 손님들이 난 자리가 그다지 허전하지 않다는데 같은 생각이었다. 함께 있는 동안 어울리며 북적이는 시간이 즐거웠다면 우리끼리는 한적하고 편안했다. 맞춤과 배려에 마음 쏟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도 혼자가 편한 듯 멀리 떨어져 모래놀이로 바빴다. 남은 시간은 여유롭게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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