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레온에서 연박을 하는 날. 숙소 근처에 정오까지만 하는 추로스 트럭이 있다고 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10시쯤에 밖으로 나왔다. 4개에 1유로 밖에 안 하는 너무나 싼 길거리 간식 같은 스타일이었다. 투박하게 신문지로 포장을 해서 주는데 어릴 때 시장에서 먹던 찹쌀도넛이 생각나는 모양새였다. 내가 떠난 이후에도 추로스 트럭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왔다. 뜨끈한 추로스를 안고 숙소로 돌아와 커피와 함께 먹었다. 어제 먹었던 기름 범벅에 검게 그을린 추로스가 아닌 깔끔하게 튀겨낸 바삭하고 고소한 추로스.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요거트와 함께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점심엔 중식 뷔페를 갈 예정이라 다시 침대로 돌아와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엄마의 톡이 왔다. 내가 직장을 다니던 때에도 그런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는 다행히 다시 건강을 되찾으셨다. 그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것 자체보다는 일이 많은데 어떻게 조퇴한다고 말하지? 언제까지 장례식장에 있어야 할까? 이런 생각만 했었다. 그도 그럴게 난 할머니와의 추억이 별로 없고, 할머니에 대한 애정도도 낮다.
많은 손주들 중 끝물에 태어났기도 했고, 할머니도 나도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기에 어렸을 때 시골에 놀러 가도 모르는 사이처럼 데면데면했다. 오늘도 엄마의 톡을 보고 나선 산티아고까지 걷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바로 귀국할 비행기표를 알아보는 게 도리인데 속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괜찮아지시겠지 하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원래도 내 여행을 내켜하지 않았던 엄마는 이 기회에 내게 그만하고 돌아오라는 언질을 줬다. 슬슬 중식 뷔페에 가야 하는데 입맛이 없어졌다.
2시쯤 뷔페를 가려고 로비로 가는데 그저께 프로미스타에서 내게 소원팔찌를 준 한국인 순례자와 만났다. 마침 점심을 안 먹었다길래 체크인을 하고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wok이라는 중식당은 쇼핑몰 2층에 위치하고 있었고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초밥이나 튀김 샐러드 중국식 볶음 등이 있고 갖가지 해산물이나 고기는 직원에게 가져다주면 철판에서 바로 조리를 해줬다. 철판요리는 짭짜름해서 맥주와 잘 어울렸고 조리되어 있던 요리들도 모두 맛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입맛이 없었지만 금세 극복하고 중식 뷔페를 즐겼다. 사실 극복이라기보다는 단기적인 회피다. 언제까지 이렇게 진지한 일을 피하고 어린애같이 즐거운 일만 추구하며 살게 될까. 내 주변에는 그 진지한 일을 막아줄 ‘진짜 어른’들이 너무 많다.
잠이 오지 않고 달달한 게 당겨 어제 사둔 초콜릿칩이 들어간 요거트를 먹기 위해 주방으로 내려왔다. 주방 한쪽 벽면에는 오래된 책들을 찢어 붙여놓았고 다른 쪽 벽은 빈 액자를 걸어두었다. 나 같으면 그냥 깔끔하게 하얀 벽으로 놔두었을 텐데 왜 이런 인테리어를 한 걸까 생각하며 요거트를 한입 먹었다. 불안함을 잊을 정도로 달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