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헤르츠~프로미스타
오전 6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카스트로헤르츠의 길은 밝았다. 가로등도 많기도 했고 감동적이었던 건 빔을 이용해 건물에 커다란 노란색 화살표를 쏴서 우리가 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마을이었다.
일찍 길을 나선 이유는 Mirador del Alto de Mostelares에서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비록 언덕 꼭대기에서 일출을 보지 못했지만 오르는 도중 멈춰 서서 해가 뜨는 풍경을 감상했다.
일출이 아름다웠던 언덕을 지나면 끝없는 메세타 평야가 시작된다. 내가 갔던 시기에는 프로미스타까지 열려있던 바가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 이후로는 앉아있을 곳도 마땅치 않아 3시간 동안 내리 걸어야 했다. 걷는 동안 물집이 또 생겼는지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출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인기 많은 숙소가 풀베드 일까 걱정되어 아픔을 뒤로하고 속도를 내서 걸어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오후 5시에 도착한 순례자도 묵을 정도로 베드는 넉넉했지만 그래도 일찍 도착해 방 배정을 받으니 마음이 편했다.
같은 방에서 우연히 Mirador del Alto de Mostelares에서 잠깐 스쳤던 한국인을 만났다. 그녀는 몇 년 전 순례길을 걷고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고 했다. 각자의 일정을 이야기하던 중 산티아고 이후 파리 여행만 잡아놨던 나에게 그녀는 포르투갈을 꼭 가보라고 추천해 줬다. 마침 메세타 평야를 걷기 싫었기에 레온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뛰어넘고 4월 1일 부활절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세상의 끝 피스테라와 포르투갈을 여행 후 4월 5일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신나게 기차표까지 예매하고 나서야 회의감이 몰려왔다. 여행이 목적이긴 하지만 이게 진짜 순례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내 인생도 이렇게 쉬운 길만 찾아갔기에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나 결과를 낳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례길에 와서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똑같이 반복될 뿐. 나를 180도 바꾸고자 하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항상 같은 선택을 하는 게 눈으로 보이니 스스로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렇게 긴 여행을 간다고 설쳤는지 조금 후회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