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기] 16화. 대도시를 떠나 작은 마을로

부르고스~Hornillos del Camino

by 강라곰

오늘은 20킬로만 걸으면 되는 날이라 여유롭게 부르고스를 떠났다.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서 늦장을 부리고 싶었으나 오늘 묵을 알베르게를 예약해 놓지 않는 바람에 서둘러 가야 했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비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 장만한 푹신한 깔창으로 걸으니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깔창 높이가 좀 높았는지 왼쪽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속도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니 지루해져 까미노에서 처음으로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들었다. 따라 부르기도 하고 리듬을 타기도 했다. 비록 자연의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지루했던 길에 활기가 생겼다.

비가 와서 그런지 진흙길을 걸어야 했는데 모처럼 세탁한 바지가 또 진흙 범벅이 되어 속상했다. 하지만 딱딱한 아스팔트나 돌길보다는 푹신하게 발을 보호해 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든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이다.

또 발을 삐끗할까 봐 천천히 걷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외국인으로부터 “알유오케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사치레인지 진짜 내가 아파 보여서 한 말인지 긴가민가했지만 괜찮다고 대답을 하며 상대방을 안심시켰다. 두 명에게 더 추월을 당하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마을 Hornillos del Camino에 도착했다. atm 기기도 없고 슈퍼도 문을 열지 않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마땅히 먹을 곳이 없어 배고픔을 좀 참고 다음날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가서 식욕을 충족시킬 예정이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는 생각보다 더 최악이었다. 일단 가격이 15유로로 공립 치고 비쌌고, 쾌쾌한 냄새가 나는 이부자리에 이불을 덮어도 공기가 차가워서 몸을 데워주지 못했다. 빨리 한국인이 운영하는 오리온 알베르게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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