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기] 15화. 행복한 연박이지만 초조해져만간다

부르고스 연박

by 강라곰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연박을 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은 라면을 끓여 먹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에 갔다. 5유로를 내면 성당 내부와 박물관까지 볼 수 있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면 사방으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유화 그림과 조각상, 금빛 구조물들. 눈이 아플 정도로 눈에 닿는 곳이 모두 화려했다.

대성당을 나와 스페인의 스파 브랜드 자라에 가서 오랜만에 옷 구경을 하고, 스포츠 매장에 가서 신발 깔창을 갈아꼈다. 훨씬 푹신해서 만약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도 고통이 덜 느껴질 것 같다.

어제오늘 한국인 순례자들과 지내다 보니 아픈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들 발바닥에 물집은 기본이고 무릎이 아프거나 감기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낭을 다음 마을까지 보내지도 않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지도 않는다. 컨디션 조절을 하며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들을 보면 내가 왜 한국 사회에서 뒤처지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한국인들은 너무나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그런 한국인들과 경쟁하기엔 나는 너무 느긋하고 성실하지 못하다. 그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하하 호호하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마음 한 편은 초조해져만 갔다.

오후 7시 반쯤 성당에서 미사가 열린다고 하길래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어색한 상황에서 실실 웃음이 나는 건 내 안 좋은 버릇이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미사에 집중했다.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앞사람을 보며 눈치껏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옆 사람과 악수하는 시간도 있었고 세례를 받은 사람만 성수를 받는 시간도 있었다.

미사를 끝내고 우리는 피자와 와인, 안줏거리 등을 사 와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오랜만에 다량의 알콜을 섭취해서 그런지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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