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푸에르카 ~ 부르고스
오늘은 대도시 부르고스로 향하는 날이다. 걷는 거리도 18km밖에 되지 않아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초반부터 언덕 비스무리한 산을 오르게 되어 금세 땀에 젖었다. 이럴 때는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이 그립다.
18킬로 정도면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들리는 마을마다 열려있는 바가 없어서 그런지 어제보다 걷는 거리가 더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평소보다 잡생각이 많이 났는데 한국에서의 일상도 많이 떠올랐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뭐 해 먹고살지? 퇴사를 한 건 과연 잘 한 선택이었을까. 이 까미노 길을 벗어나면 어디로 흘러갈지, 얼마나 걸을지 방향성이 잡히지 않는 내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까미노 위.
부르고스 바로 전 마을에서 드디어 첫 바를 발견해 커피와 또르띠아를 시켜 먹었다. 어제부터 또르띠아에 빠졌는데 빵에 촉촉한 또르띠아를 조금 떠서 올려 먹으면 고소함이 배가 된다. 밀가루와 계란의 만남이라 포만감도 있어 아침 식사로 제격이다. 바에서는 떨어져서 걷고 있는 한국인 순례자들과 카톡으로 소통하며 에어비엔비를 예약했다. 연박을 하는 부르고스에서 한국인 순례자들끼리 에어비엔비에서 묵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김치찌개와 라면, 밥, 삼겹살을 먹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숙소 가는 길에 있는 초밥 뷔페에 먼저 들리기로 했다. 서양에서 먹는 일식이다 보니 맛은 기대가 안되었지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메리트 같다. 캘리포니아롤, 연어초밥, 볶음밥, 튀김 등을 시켰는데 걱정과는 달리 한국에서 먹던 초밥과 맛이 비슷해 오랜만에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다. 숙소 가는 길에 있는 아시아마트에서 라면과 소주, 김치를 사들고 부르고스 거리를 걸었다. 한국인 순례자와 이 거리는 잠실하고 비슷하다는 얘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는데, 대성당 근처로 갈수록 이국적인 거리가 펼쳐졌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은 성당 주변이 가장 번화하고 유동인구도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성당과 같은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걷다 보니 자라도 있어서 내일 연박을 하며 여유롭게 쇼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대성당은 지금까지 순례길을 걸으면서 봤던 성당 중 가장 크고 웅장했다. 수많은 첨탑이 있는 성당은 처음 봐서 그런지 더욱 눈을 떼지 못했던 것 같다. 밀린 빨래를 마치고 샤워를 했다. 오랜 시간 땡볕을 걸어서 땀띠가 났는지 샤워를 해도 몸이 간지러웠다. 그동안 못했던 빨래를 건조까지 끝내 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일이면 또 빨래가 쌓일 테지만 말이다. 마실 것을 사러 부르고스 광장 쪽으로 걸어갔는데 낮에만 해도 닫혀있던 회전목마가 움직이고 있었다. 광장에 앉아서 부르고스 주민들처럼 회전목마를 구경하며 여유를 부리고 싶었으나 피곤했던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삼겹살과 라면, 소맥으로 잠시나마 한국의 맛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