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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17화
가느다란 위안
by
미세스앤
Sep 20. 2024
위로는 대단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
물론, 대단한 금액의 금융치료가 통할 때가 대부분이겠으나 실상은 작은 것들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는 작고 얇아서 가느다랗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살면서 그런 것마저 없으면 삶은 너무 폭폭해 진다.
자살한 이의 정신 부검을 했던 의사가 해준 이야기다.
어렵고 힘들었는데도 다 꿋꿋하게 잘 해내던 사람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 왔는데(여기까지도 삶의 의지가 넘쳐 보였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그렇게 밥을 먹고 있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자살을 선택한 거라고.
그러니 혼자 먹더라도 밥은 제대로 먹으라는 이야기였다.
나라도 나를 대접하라는 말인데
사실 그게 제일 어렵다.
어려울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구박하는 대상은 나 자신, 그리고 가족이다.
찍힌 점이 번져나가듯이 나에게서부터 방사형으로 번져나간다.
그러니 관계가 먼 대상일수록 상대의 취약점을 알지 못한다.
열악한 환경을 가진 이들 모두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나라도 나를 대접하기 위한
자기 최면이나 정신승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아니 우리, 아니 나)의 정신승리는 선택이 아니다.
정신승리하지 않으면 여태껏 버티고 있던 힘조차 와르르 무너질 것이기에 스스로에게 오지 않을 희망을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정이 열악할수록 정신승리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루신의 아큐정전 같은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라고 명작은 알 수가 없다고 했는데 살아보니 알겠다.
그렇게라도 살다 보면 물질적이나 사회적인 대단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삶의 의미를 만끽하는 날이 오기도 한다.
보면 그게 진리인 것 같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쓴 강용수 작가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삶은 고통과 권태를 진자처럼 오가는 것이 삶이라고 했다.
그렇게 오가는 사이에 미묘한 나만의 행복점을 찾아낼 때야말로 고통과 권태의 진폭에 덜 흔들리는 삶이
된다고 말이다.
살아냄을 위한 노력이 쌓여서 빛나는 순간은 일상의 반복에 나만의 행복점이 추가될 때인 것 같다.
내가 왜 비싼 돈 주고 면역증강제를 맞아가면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는가.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생계형 인간이라는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슬프다.
하지만 내키는 대로 일을 그만두고 이일 저일 조금씩 전전하며 제멋대로 20대를 보낸 경험에 비춰보자면 회사는 월급 외에도 주는 것들이 여러 가지다.
내 긴 우울증은 일을 하면서 더 힘들게 되는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일어나서 출근을 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약을 먹는 시간을 더 길게
늘리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알겠는 것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자존감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아니, 남들 보기엔 시시할지도 모르는 일상으로 행복하고 아름답다.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하고 공들여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카메라로 찍고 소설을 읽으며 잠이 드는 하루.
아마도 대단한 한때를 살았던 그는 이런 무탈한 삶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주말 내내 편두통을 끙끙 앓다가 일요일 밤이면 좀 그만해진다.
충분히 앓은 뒤라서일까.
앓으며 약에 취해 온종일
잠 속을 헤맨 덕에 2시나 3시쯤 깬다.
베란다에 나가보면 도로는 조용하고 어둠 속에서 가로등이 눈부시게 보인다.
바쁠 월요일을 위해 다들 이 시간에는 잠을 잔다.
몇 시간 후면 나도
출근해야 하니까 하면서 다시 들어가 잔다.
다섯 시 반이면 깨어나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한다.
무탈한 주말을 보낸 사람처럼 조금 더 일찍 월요일을 맞는다.
더 아플 것 같지만 오히려 컨디션은 더 낫다.
회사는 어쩌면 기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월급과 힘듦을 주지만 내 삶의 톱니바퀴가 멈추지 않도록 기름칠을 해주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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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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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기만 하면 부서지는 것들을 부지런히 굴리는 쇠똥구리. 우울과 불안을 양손에 쥐고도 계속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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