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걸으세요."
5월, 벚꽃이 다 흩날려 버린 길을 걸어보면 안다.
꽃길을 걸어도 다리는 공평하게 아프다는 것을.
계속 걸으면 원래 다리는 아프다.
물론 자갈길은 울퉁불퉁하니 다리가 더 빨리 아프겠지.
어떤 길을 걷든 어떤 삶을 살든
모든 삶은 다 비슷비슷하게 속상하고 절망적이고 기쁘다.
뭐든 초반에는 해볼 만해서 시작하지만
완전한 숙달에 이를 때까지 지리멸렬한 반복이 계속되면
첫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지겨움만 남는다.
이것만 해내면 인생 꽃길일 것 같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 하는 진자라고 했다.
진짜로 고통과 권태만 있는 걸까?
딱 그 두 가지만 있다면 삶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나 같은 사람도 아무 때나 함부로 설레는 것을 보면
고통과 권태사이 어디쯤 설렘과 행복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너 눈이 참 나쁘구나 하면서
보는 눈 없는 자신에게 혀를 끌끌 차 줄 일이다.
크기가 다를 뿐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손쉽게 해결하는 문제를 고민이랍시고 껴안고 힘들어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정반대로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고민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이성적인 잣대 없이 늘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 가장 크고
무겁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설령 크기 차이가 있을지언정 아예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내가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상태일 때나 가능하다.
남이 부러울 때마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났다면
나는 도통한 사람이 됐겠지.
이렇게 부신기능저하증을 앓으며 스트레스 초취약자로 지내진 않았겠지.
내 몸과 마음은 자동시스템화가 잘 되어 있다.
당장 고난의 시기에 들어서면 사실 이런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이
내 인생은 왜 이모양인가라며, 박복하다를 연발할 수밖에.
그나마 나를 덜 박복하게 만든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밥 때 되면 같이 밥 먹어주고,
내가 끼니를 거를까 봐 찾고 챙겨준 사람들.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며 연락을 하거나
이거 보니까 네가 떠올랐다며 실핀 같은 작고 귀여운 것들을 내 손에 쥐어주는 사람들.
커피는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쪼금씩 아껴먹으라며 아무 날도 아닌 날
커피 쿠폰을 보내준다거나
뜬금없이 달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오늘 얼굴은 왜 울상이냐고 누가 못되게 굴었는지 나한테 다 말해보라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자잘한 다정함이 모여
나는 제 밥벌이 정도를 하는 다정둥이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삶은 온통 자갈길에 뻘 밭이었으나
그들이 그 길에 흩뿌린 점점의 다정함으로 나는 여태 걸어왔다.
넘어지고 다치고, 한참을 쉬었다가 그렇게.
뛴 적 없고 딱히 꽃길을 걸은 적도 없지만
같이 걷거나, 기다려주거나, 다른 길에서 걷더라도
자기 길의 꽃잎을 내게까지 뿌려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 덕에 내가 걷는 길이 꽃길이 아님에도
대책 없이 무장해제되어 참 아름다운 날이에요를 연발할 수 있는 것이다.
꽃길을 걸어도 다리는 아플 테지만
서로 의지가지 하며 걷는 길은 좀 덜 아프다.
설령 아파도 끝까지 걸을 수 있는 의지를 잃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