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와 이별할 용기를 내기까지
2023년 10월 12일, 퇴사를 했다. 이직이 결정된 후, 한 달 만이다. 억 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하루하루가 드디어 끝이 났다. 마지막 날,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이른 새벽에 혼자 회사에 나와 ‘정리’를 시작했다. 손때 묻은 책상 물건들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7년을 함께 울고 웃은 동료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 문을 나섰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밝은 미래가 내 앞에 펼쳐지길 응원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랜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늘 이직을 갈망해 왔다. 멋모르던 신입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과장이 된 지금까지. 이직은 나의 꿈이었다. 야근이 많아서, 일에 비해 돈을 적게 줘서, 개발 환경이 열악해서, 등등.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어 불만이 가득했다. 떠나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항상 이직할 거라며 큰 소리를 치고 다녔다. 심지어 부동산 아줌마한테도 매년 집 계약을 할 때마다 내년에는 이직을 할 거라며 1년씩 계약하고는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떠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앞선 불만들은 내가 ‘떠나고 싶은’ 이유였지,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힘든 일을 해낸 덕에 주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매월 25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내가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열악한 개발 환경은 당연한 것이라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현실과 타협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떠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또다시 취업을 위해 나 자신을 증명하는 그 힘든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를 감당할 자신 또한 없었다. 힘들게 이직을 했는데 새로운 회사도 역시나 다를 게 없으면 어쩌나. 겁이 났다. 그래서 불만스러운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퇴사를 외쳤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6년이 지났다.
2023년 올해, 나는 이전과 달리 이직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기는 ‘소개팅’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와의 미래를 상상할 때면 나는 항상 불안했다. 마치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놀이동산에 간 학생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금도 현실과 타협 중인 내가 연애를 하게 되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놓아버리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연애를 더 원하는지, 이직을 더 원하는지 헷갈렸다. 확실한 것은 나는 그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이직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스스로 지금의 회사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대답은 ‘NO’였다. 나는 올해 들어 유독 과중된 업무에 지쳐가고 있었다. 보상은 고사하고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근무 시간 외 업무가 늘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일도 재미가 없었다. 한계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연애를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이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꽤 많은 일을 해왔기에 바로 붙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게 돌아오는 답변은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로 시작하는 메일뿐이었다. 막막했다. 결국, 취준생(이직생이라고 해야 할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서류를 처음부터 써 내려갔다. 야근을 하는 날에도 새벽까지 이력서와 자소서를 뜯어고쳤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니 깜깜했던 서류들도 어느덧 그럴듯하게 준비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이후에는 운에 맡겼다. 면접 준비는 당연하고, 그 과정에서 흔들리는 나의 멘탈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불안에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끝내 균형을 잃지 않았다. 2개월 동안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밟아갔다. 그 결과, ‘합격’이라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회사 또한 지금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다를 수 있다. 나는 또다시 ‘이직’을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세워뒀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 걸음씩 똑바로 나아갈 것이다. 그 걸음이 어떤 길로 나를 인도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다. 나의 행복을 가장 바라는 나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여나 그 길이 잘못된 길일지라도 지금 나에게는 돌아 나올 용기가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