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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다 Oct 21. 2023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번아웃에 잡혀버린 나

2023년 5월의 월말 기록

 검은 토끼의 해가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3년의 1/3이 지났다. 폭풍이 지나간 듯하다. 작년이 체감상 시속 60km로 흘러갔다면, 올해는 100km로 휘몰아치고 있는 느낌이다. 살아내려고 버둥거리는 하루의 고통은 결코 짧지 않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한 달은 기본이고 두 달, 세 달이 훌쩍 지나있다. 올해 또한 잘 살아보고자 치열하게 보내왔던 것 같은데,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해임을 매일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올해 초 나는 유난히 의욕적이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작년 2022년, 한 해 동안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 자신했다. 그래서 당연히 2023년은 더 노련하고 여유롭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도, 연애도, 자아실현도 모두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오만한 생각이다.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의욕은 점점 떨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번아웃이 나를 찾아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벌인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회사 일로 인해 작년보다 5배가량 바빠졌다. 안 그래도 별로 없던 일상의 여유가 더 줄어들었다. 이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형성하고자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2022년과 달리 2023년은 마음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소개팅’도 들어오는 대로 모두 받았다. 올해는 꼭 이직의 꿈을 이루고자, 알고리즘 스터디, 논문 스터디 등 다양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싶어 직장인 ‘글쓰기 모임’에도 가입했다.


 위의 활동들로 내가 얻고자 했던 이상은 다음과 같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커리어 확장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한 단계 높이며, 
자아실현을 통해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소개팅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걱정과 고민이 머리를 가득 차 그 순간을 즐길 수 없었다. 내 앞의 사람이 과연 나와 맞는 사람일까 의심하며, 그 사람과 나의 미래에 대해 수 백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바빴다. 호감 가는 사람이라도 나타나는 날에는 시뮬레이션의 시나리오가 몇 만 배 더 복잡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경우를 찾기 위해 그 많은 수를 돌려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관계에 대해 확신은 못하면서도 최선의 사람을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미련을 놓지 못했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마지막 카톡을 보내는 사람은 항상 내가 되었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개팅을 하면 할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을 하고 나니 어느새 나는 소강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아닌 다른 이를 좋아하기 위해, 그리고 그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애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편안해지고 싶었다. 


 새로 가입한 각종 모임과 스터디에서의 상황도 순탄치 않았다. 처음에는 타인을 위한 투자가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투자를 한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각종 스터디 및 모임에 참여를 함으로써 몇 달 뒤 많이 성장해 있을 나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주말을 투자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앞날에 눈부신 햇살만이 가득할 거라 의심치 않았다.


 다만, 여기서 내가 간과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새로 들어온 정보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그 정보를 스스로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관점에서 당시의 나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적어도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하나의 모임 전후로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럴 경우 3개 이상의 모임에 가입한 나는 주 1회 활동을 한다고 해도, 12시간이 필요하다. 이상적으로 보면 퇴근 후 남는 2-3시간을 모아 쉽게 12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갖출 만큼 효율적인 에너지 연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둘째, 나는 비교적 남들에 비해 에너지가 빨리 고갈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 무기력증에 쉽게 빠진다. 앞서 몇 번의 소개팅으로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나는 나의 상태를 무시하고 각종 모임 참여를 고집했다. 스터디와 모임은 온/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에는 할만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복기를 통해 그 경험들을 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스위치가 꺼져버린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끝에는 그것들에 쫓기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활동들을 나의 에너지가 받쳐주는 한도에서 해왔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에너지 효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막연히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없어 떨어지는 집중도와 의욕을 나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무기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의욕 → 에너지 소비 → 에너지 부족 → 소강 → 자책 → 다시 시도 → ...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4개월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 나의 에너지 효율이 썩 좋지 않다는 것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에너지가 고갈되고 무기력증에 빠져 시도가 좌절될 때마다 스스로를 크게 다그쳤다. 세상의 보편적인 잣대로 나의 노력을 평가 절하하고, 쉴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억지로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 다시 움직이게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양질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봤다. 이제는 새로운 시도 전에 나만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나의 에너지가 왜 그렇게 빨리 소진되었는지, 현재 나의 생활 패턴이 정말 나에게 맞는 것인지 기록을 통해 알아낼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정답을 찾아가다 보면 나는 실패 속에서도 도약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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