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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다 Aug 27. 2023

글쓰기로 찾은 나의 퍼스널컬러

기록하며 찾은 나만의 색깔



 삼십 대에 접어든 지 2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나’의 색을 갖추어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이나 사회 등 외부에서 요구하는 것에 맞춰 살아왔던 것 같다. 취직이 잘 되는 전공, 학점을 위한 교과목,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장. 간혹 해보고 싶은 것들이 생겨도 ‘나중에’를 읊조리며 외면해 왔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고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볼 때면 항상 연기 같은 회색인간이 둥둥 떠다녔다. 자신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으로 ‘나’를 채워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색을 찾게 되었다.


 모든 것은 서른을 앞둔 어느 날, 한 배우의 인터뷰를 보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영화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 ‘진태’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에 대한 기사였다. 사실 나는 그 기사에서 영화와 관련된 내용보다는 ‘박정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려대를 중퇴하고, 한예종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다는 그가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거진 20년의 세월을 나, 보통의 대한민국 청년들과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순항해 오던 방향을 틀어 완전히 다른, 연기라는 길로 가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와 열정이 필요했을까.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부러웠던 것 같다. 스무 살,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그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길로 가기 위해 수많은 선택을 해왔을 그 배우가 궁금했다. 아직도 주말이면 부모님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스스로 도무지 어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았다. 마침 인터뷰에서 그는 책을 한 권 낸 작가이자 책방을 운영 중인 책방 사장이라고 소개되었다. 그 길로 나는 그의 에세이 ‘쓸만한 인간’의 오디오북을 들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책은 부모님 카드로 쇼핑을 잔뜩 한 후 고지서를 숨기는,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담배를 시작한,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지질하면서도 익숙한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재미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친밀함과 유머 코드에 반해 나는 그 길로 그의 책방, ‘책과 밤낮’도 찾아갔다. 합정역 근처에 있는 그 책방은 녹색 바탕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레인포레스트’ 인센스향이 풍기는 그곳은 마치 숲 속의 조용한 사찰과 같은 느낌을 줬다. 앉아만 있어도 차분해지는 그곳 또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책과 밤낮의 마지막날, 아쉬운 마음에 찍어본 사진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나는 점점 ‘박정민’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영화, 책, 책방 등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영화 행사가 있는 날에는 무리해서라도 그곳에 참석했다. 그가 추천한 책은 주제에 상관없이 꼭 구매했다. 더 나아가 그의 책방 책상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원목 책상을 나의 비좁은 원룸 안에 들여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팔레트를 그의 색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점점 그의 영화를 찾아 영화관을 가는 것이 재미없어졌다. 그가 추천한 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책방 분위기를 내고 싶어 들인 원목 책상은 삭막한 원룸 안에서 혼자 고고한 분위기를 내며 튀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좋아했던 그 책방도 코로나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나는 ‘박정민’ 신드롬(?)에서 서서히 빠져나와 다시 무채색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던 노란 꾸러미를 발견했다. 꽤 예전에 ‘박정민’의 책방에서 랜덤박스 이벤트로 구매한 책으로, 당시 함께 온 굿즈만 확인하고 미처 포장조차 풀지 않은 책이었다. 포장을 풀어보니 ‘아무튼, 술’이라는 책이 들어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펼친 나는 오랜만의 희열을 다시 느꼈다. 술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김혼비’ 작가가 그 애정을 그의 일상에 꾹꾹 눌러 담아 담백하게 쓴 에세이북이었다. 책을 읽고 한참을 혼자 웃던 중에 깨달았다. 내가 ‘쓸만한 인간’과 ‘아무튼,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다. 두 책에서는 작가들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표현하며 인싸의 삶에 끼지 못한다 말하지만 그들의 취향과 그 취향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그들만의 색깔로 삶을 칠해나가는 그 작가들의 모습이 나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서 그들의 색을 나에게 묻히고 싶었던 것 같다.


 겉보기에 좋아 보였던 그들의 색을 나에게 칠해보고 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색이라도 내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빛이 바래져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퍼스널컬러가 있듯이 내게도 나를 빛나게 해주는 색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 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작가가 그랬듯이 평범한 일상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 기록은 쌓이고 쌓여서 나에게 딱 맞는 퍼스널 컬러가 되고, 또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글쓰기를 통해 일상 속 생각을 적어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평소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과 감정을 종종 발견할 때면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끝에는 ‘희열’이라는 감정이 남는다. 그리고 그 ‘희열’이라는 감정 안에는 내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나만의 색이 담겨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색을 찾아가는 이 즐거움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선명하게 그려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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