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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다 Oct 21. 2023

30대 결혼 적령기에 소개팅을 멈춰야만 했던 이유

이제는 마다하지 않으려고요.

 여름이 끝났다. 후덥지근한 더위가 지나가니 상쾌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일까. 며칠 전 퇴근 후 들른 공원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아니, “커플로 가득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어색함 속에서도 알콩달콩 간지러운 썸을 타는 남녀,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발맞춰 걷는 연인, 그리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두 손을 꼭 잡은 부부. 마음 한켠이 시렸다. 핑크빛 기류를 애써 외면하며 혼자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걷다 보니 가로등 아래에 홀로 우뚝 서있는 내 그림자가 보였다. 꾹꾹 눌러오던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소개팅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소개팅만 생각하면 원인 모를 두려움이 앞선다.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연애’라는 목적이 뚜렷한 이 만남이 나는 단 한번 쉬운 적이 없었다. 잘 되어가는 줄 알았던 관계도 어느 순간 고꾸라졌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만 늘어갔다. 주변에는 소개팅으로 연인을 찾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는 어려운 걸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날의 소개팅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들을 되돌아보았다.


1. 2022년 5월, 30대 첫 소개팅


 더위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초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7년 장기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한동안 운동만 하던 나에게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줬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선한 인상을 가진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첫 만남 이후, 그는 나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는지 끊임없이 연락해 왔다. 나도 그게 싫지 않았다. 이성적 끌림은 없었지만 그와는 친구 같은 연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3번째 만남부터 커플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 남자 친구와는 다른, ‘좋은 사람’으로 보였던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진짜 내 모습을 보면 그가 도망갈 것 같아 나는 나를 숨기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 앞에서 말을 잃어갔고 부자연스러워졌다. 우리의 관계는 점점 경직되어 갔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처음에 보여줬던 호감을 믿고 이 관계가 계속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달랐다. 내가 만들어낸 거리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이 관계를 금방 포기했다. 결국 우리는 한 달 만에 끝났다. 


 돌이켜보면 첫 소개팅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실패로 끝난 지난 7년 장기 연애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랑받지 못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래서 더욱더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이전 연애에서 했던 것처럼 가장 먼저 나를 지웠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관계는 오래갈 수 없었다.


 2. 2023년 1월, 마지막 소개팅


 첫 번째 소개팅 이후 두 번 더 소개팅을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연애 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회사 동기 언니가 괜찮은 사람이 있다며 한 사람을 소개해 줬다. 개성과 주관이 뚜렷한 회사원이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는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는 대화를 할 때면 세심하게 고른 부드러운 단어로 상대방을 배려했다. 무척 탐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너무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그러한 취향을 닮고 싶었지만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그리고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만남 당시에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후에는 연락이 없었다.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그럼에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리해서라도 만남을 이어가려고 했다. 역시나 이 관계 또한 연애로 발전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추웠던 한겨울의 소개팅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이 상황이 너무나 피로했다. 7개월 간의 소개팅 휴식기를 갖고 나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타인의 애정과 타인을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너덜거리는 나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좋아하고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제주 카페, 더리트리브에서 찍은 사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함께 갈 사람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아팠던 소개팅 기억들을 되돌아보았다. 남들 다 하는 소개팅이 왜 유독 나에게 어렵고 두려웠을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소개팅이란 자기 증명의 수단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타인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며 겪는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소개팅은 나에게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좋은 소개팅 자리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힘을 좀 빼보려고 한다. 나 자신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나를 잃지 않고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개팅이여 내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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