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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pr 17. 2024

잘 뛸래, 오래  뛸래?

둘 다!


잘 뛸래! 달리기 레슨

K와 일정대로 달리는 루틴이 쌓이면서 친밀감도 더욱 두터워졌지만 우린 달리기에 관한 지식이 턱 없이 부족했다. 발을 어느 지점부터 땅에 디뎌야 하는지, 팔을 어디까지 흔드는 게 맞는지, 호흡은 훅-인지 훅훅-인지, K의 고관절은 어째서 통증이 가시지 않고 나의 발목은 왜 허공에서 나부끼 어깨는 이토록 팔랑대는지. 궁금이 혼란이 될 즈음, 발 빠른 K는 이미 숨고('숨은 고수'의 준말) 어플에서 달리기 선생님을 찾고 있었다.


"전문 코치에게 피드백을 좀 받아야겠어."

"오, 좋은 생각!"

"1인 기준 회당 4만 원, 둘이 받으면 8만 원. 역시 좀 비싼가?"

"아냐, 경험에 투자하는 좋아. 앞으로 계속 뛸 거니까. 저번에 PT 두 어번 받은 게 혼자 운동할 때도 도움 되더라."


그렇게 만난 코치 선생님은 전화 목소리에서 예상한 대로 앳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나이에 나긋나긋한 말투를 지닌 사람이었다. 대학교 졸업반이라고 했지만 배움을 위해 만난 사이니 선생님으로 깍듯이 모시기로 했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준비운동을 마친 후 코치는 우리에게 다섯 바퀴쯤 살살 돌아보라고 했다. '자세를 보려나보다' 싶어 평소대로 트랙을 달렸다. 햇살이 한여름처럼 뜨거운 아침이어서 어쩐지 더 힘들게 느껴졌지만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관절이 뻣뻣하게 굳어있네요?"


K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코치가 한 말에 우리 둘은 서로 마주 보며 '우와-' 하며 연신 감탄했다.


(신뢰감 급상승)


서울에선 이미 러닝 클래스가 한창이고 한 클래스당 가장 적은 인원도 40명은 넘는다고 했다. 한강변 러닝은 러너들의 로망이라나 뭐라나. 자리 맡기에 진심이라고. 여기 지방에는 레슨 찾기도, 뷰가 멋진 장소를 찾기도 서울만큼 쉽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난 참 스승복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배우고자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나는 복.


팔 치기, 손목과 팔목 자세 교정, 단거리 달리기와 장거리 달리기의 차이 등을 배우고 100m 거리를 여러 번 달리면서 자세 교정을 받았다.


나: 재밌어! 궁금한 걸 해결해서 속이 다 시원해.

K: 돈이 안 아깝다. 선생님이 자세히 오래 가르쳐주시네.


코치는 우리가 이렇게 기뻐하는 줄도 모르고 연신 강조했다.


"기본기가 지루하셔도... 프로 선수들도 본 스케줄보다 몸풀기 운동이랑 마무리 운동을 아주 오래 해요. 제일 중요하니까요."


나, K: (더위와 땀에 절어서) 네, 저희 이래 봬도 지금 상태 괜찮아요. 청 신나요.


진짜 체력이란 내 안에 짜장면 200그릇의 에너지가 있음을 잊지 않고 버티며 달리는 힘이다. 억지로 먹어가며 채우는 힘보다 내 안에 이미 숨겨진 에너지로 말이다. 가끔은 쉬어가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되찾게 되기도 한다.


코치는 K의 고관절을 마사지해 주고 나의 갈대 같은 발목을 강화하는 훈련법도 알려주었다. 레슨이 끝나가고 있었다.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각 30개씩 3세트


"숙제인가요?"

"넵. 매일 하세요. 안 하고 오시면... 딱 보면 압니다."




오래 뛸래! 자존심과 경쟁심은 NoNoNo!

오래 뛰는 건 내 꿈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래 뛰어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오래 달리면:

- 심폐 '지구력'이 생긴다.

- 살은 빠져도 근육은 덜 빠진다. (따로 근력운동 해야 함) 

-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먹어도 된다.

- 가벼워야 배 아프지 않고 달릴 수 있으니까 과식도 줄인다.

- 수업이 아주 많은 날에 페이스를 조절다.

- 초반 예열과 최종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한다.


달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삶에서 겪는 고통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달리는 몸과 쓰는 몸은 운영자와 같다. 감정받이가 아니라 고통을 해석하는 주체이다. 식사와 휴식도 넓은 의미에서 달리기의 과정에 해당한다.


어느새 누구보다 잘 뛴 기록보다 끝까지 뛰고 있었던 자신을 대견해한다.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견딜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내 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아프지 않고 최대치로 살아내기 위해서,  내 몸과 자극-반응의 놀이를 시도한다. 혼자라면 심심하고 따분할 이 놀이에 K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의 꿈에는 아주 당연해서 생략된 말이 있다.


(K와 함께) 오래 달리는 것.


어제의 우리보다 천천히 달리는 날이 있더라도

다치지 말고, 오래오래 즐겁게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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