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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Apr 24. 2024

조금 느려도 괜찮아



"헉~허거거걱~~헥헥"

400m 경기장을 다섯 바퀴째 돌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윤상이 불렀지만 SES가 리메이크해서 더 유명해진 그 곡, 바로 <달리기>. 

https://youtu.be/BAzjH-wj0Bg?si=SpU64qj8uTRRGeIq


가사에서 뿐만 아니라, 달리기는 삶의 곳곳에서 은유 쓰인다. 길고 긴 터널 같은 수험생활 비롯해 끝은 반드시 있으나 그 사실을 종종 잊게 만드는 모든 지난한 것들에 대한 은유로.


평일 저녁에 한 대학교 대운동장에서 달리게 되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대낮 같았고 바람도 볼을 간지히듯 불어 기분 좋은 공간. 일전에 주말 오전의 땡볕 아래 두 어 시간을 뛰던 그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아리 전용관 근처여서 그런지 학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관중석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는 같이 달리거나 옆에서 축구공으로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보다 관중석에 앉아 젊음의 한 때를 보내는 학생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대놓고 지켜보고 있진 않지만 극기를 하고 있는 나를 해맑은 미소로 지켜보는 감독관처럼 느껴졌달까.


그즈음 나는 직장에서 업무를 하다 조급해지는 경우에도 서서히 페이스를 올려가듯 천천히 뛰는 식으로 차근차근 풀어가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될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나의 생활 전반에도 달리기의 은유가 가득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달리기는 '천천히, 차근차근'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박수가 170을 넘어갈 때가 많았다. 말 그대로 숨이 턱까지 찬다. 경기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둔다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숨 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는 완주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러닝의 목적과 목표가 될 수도 있으므로.


다만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케이던스는 1분당 발을 구르는 횟수인데, 케이던스 180에 맞춰서 뛰더라도 발을 빨리 구를 뿐 여전히 천천히 달릴 수는 있지만 케이던스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심박수가 과도하게 올라가고 호흡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무리하게 유지하기보다는 페이스를 유지하되 능동적으로 조절하면서 달리는 것이 좋다.


알고리즘의 안내로 보게 된 몇몇 영상들에서 케냐 달리기 선수들의 마라톤 비결이나 조깅에 가까운 달리기(마인드풀 러닝)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건 케냐 선수 얘기고, 전문적인 선수들 이야기 아닌가?' '어디까지가 러닝이고, 어디까지가 조깅인 걸까?' 갖가지 의심과 질문들이 쏟아졌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안 그런 척하려고 해도 성적에 민감하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나. 마라톤을 준비하면서도 나는 영락없이 수험생 마인드 달리고 있었다.


잘 달리기 즐겁게 달리기. 둘은 상충하는 것 같았다. 끝은 언제나 뿌듯하고 즐겁지만 그 과정도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더 뛰지 못하면 어떡하지?'보다 '이렇게 뛸 수 있어서 좋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속도를 찾자. 나만의 속도. 마라톤은 그저 달리기에 진심이 된 나에게 활력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K의 제안이었을 뿐인데 그냥 나가 뛰고 싶을 때 뛰는 사람이 되기엔 나는 너무 하드 트레이너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렇게 뛰다가는 마라톤이 끝나자마자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천히, 그러니까 주변 풍경도 보이고 K와 대화도 가능한 속도로 달리면 얼마나 더 오래 달릴 수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마인드풀 러닝: 즐겁게 달리기

나는 요즘 기계 없이는 살지 못하는 인간 같다. 스마트폰은 안정제와 같고, 스마트워치는 달리기 친구이며, 네비 없이는 새로운 곳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니까. 교실 안에서 창밖을 아련하게 내다볼 때마다 나는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초연결시대에 느끼는 무심한 단절의 느낌.


기계에 의존하면서 무감각해지는 건 멍 때리며 이완하는 순간과는 확연히 다르다. 집중해야 할 시간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달리는 중에도 내 몸, 땅, 바람, 주변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지 생각하면 러닝 초반 때에 비해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천천히 즐겁게 달려도 된다고 말하는 영상엔 '그건 그냥 조깅 아닌가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에서 조바심이 느껴졌다. '조깅이면 어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조깅이면 안 되나요?'


조깅으로 부상 없이 좀 더 오래 뛸 수 있다면 즐겁게 달리면서 체력도 늘고 속도도 붙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나는 요즘 일하다 말고도 갑갑한 셔츠나 몸을 조이는 바지 대신 느슨한 티셔츠와 편안한 바지를 입고 천천히 계속 달리고 싶다고 느낀다.

 

마라톤이 이제 4일 앞으로 다가왔다. 뛰고 있는 동안에도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느리게 달려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https://youtu.be/7ndXcNgBGI4?si=DPhSyYNkwJlwyQZ8


https://youtu.be/BlpEW8jQra8?si=RPCfmVfhDsYrA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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