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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May 01. 2024

해소의 론(論)

10km 마라톤 전중후 모먼트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부안 해변 마라톤 10km를 완주하고 도파민이 폭발했다. 러너스 하이 Runners' High라는 게 이런 건가. 도통 흥분이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10km를 몇 번 뛰어보고 참가했지만 부안해변마라톤 코스는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하늘은 흐린데 햇살은 내내 뜨거웠고 크게 보면 코스 자체가 오르막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페이스 조절을 해가면서 되뇌었다.


과정에 집중하자

적어도, 걷지는 말자

반드시 완주한다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고 8km 지점을 지나고부터는 힘이 들 때마다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지칠만하면 마주하는 해변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달려.' 구간마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연신 파이팅을 외쳤다. 그때 알았다. 응원은 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란 걸.


첫 출전의 설렘, 러닝 크루들과 부스에 모여 나눈 완주의 기쁨, 언제나 함께 달리는 나의 K. 힘듦 사이에 스며든 기쁨과 감사를 느끼며 내게 10km 완주 전중후의 순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 3km에서 5km, 7km, 10km까지 차근차근 성장


- 과도한 체중 감량이나 마른 몸에 대한 강박보다는

   잘 먹고 잘 달리는 건강한 돼지(?)가 되기로 한 첫 단추


- 함께 쓰기 만큼이나 함께 달리기의 힘을 체감


- 나 자신의 체력이나 체형을 긍정하고 관리하게 됨

 

- 메달은 곧 예쁜 쓰레기 및 애물단지가 된다고 하나,

  첫 메달은 애지중지할 것 같다. 첫 도전, 첫 성취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이것 아닐까. 해결과 해소의 이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제를 정의해야 한다. 제대로 정의해야,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 삼는 오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의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해결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나 감정으로부터 오는 문제의 경우 해결책은 찾기 어렵다. 많은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느낌에 대해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데, 그 또한 한계가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달리는 내내 문제를 재정의하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문제 해결에는 문제 있는(?) 상대를 바꾸거나 재발을 막겠다는 계획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문제 해소에는 바꿀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평온함과, 언제든 재발하더라도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차분한 의지가 보인다고 느끼면서.


사전적 정의 그런 차이를 보이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달리면서 둘은 엄연히 다를 거라고 믿게 됐다.


삶은 동사일 거라고. 멈춰 있지 않고 흐르는 거라고. 오늘의 행복이란 말은 점점이 기록된 행복들이 다른 불쾌를 덮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영원히 괜찮고 행복하려는 마음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K는 내가 업무상의 문제로 융통성 없이 헤맬 때마다 '공을 넘기라'는 조언을 해주곤 했다. 책임을 떠넘기라는 말이 아니라 제 몫을 다하되, 위임해야 할 때조차 껴앉고 있지 말라는 뜻이었다.


자의식과 자기 인식 사이에서 헤매는 나를 언제나 잡아주는 K. 자의식은 지나치면 매몰되고 피폐해지지만 자기 인식은 점차 명료하고 깊어지게 만든다는 걸 달리면서 알게 됐다. 달리는 행동은 '달리다'와 '달리지 않다'로 나뉘지만, 달리는 사람이 되고 나면 나는 언제든 달리는 마음으로 살 수 있었다.


행복은 균형에서 온다. K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느낀다. 그의 대화에서는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주관과 객관, 감정적 지지와 인지적 재조정, 진지와 유머, 규율과 쾌락 등등


나는 이제야 진짜 러닝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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