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과 글쓰기 모임

첨삭의 장, 단점과 문체

by 이수아

글쓰기 수업이 언제부터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2018년도에 글쓰기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그즈음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한다. 글쓰기 수업을 여기저기에서 많이 오픈하고 있다. 주위에 한두 권 출간 후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는 작가가 적지 않다. 책을 출간한 나에게도 인연이 깊게 닿아 있는 책방과 지인을 통해 글쓰기 수업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니, 글을 쓰고자 하는 수요가 꽤 되는 듯하다. 나도 인터넷 신문사 후원을 받아 10월 둘째 주부터 에세이 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시작 전 몇 가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글쓰기 수업 요청을 받았을 때 수업이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떠나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였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은 글쓰기를 취미로 하느냐, 작가를 꿈꾸느냐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뉜다. 취미로 시작했더라도 점점 작가를 꿈꾸는 쪽으로 기우는 수강생도 많다. 생애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어서 출간을 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출간이나 등단을 하겠다는 마음이 서는 순간 작가 지망생이 된다.


작가 지망생에게는 수업을 지도해 주시는 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크게 다가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강사는 수강생이 꿈꾸는 작가로서 그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러하다. 강사가 자연스레 모델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사가 수강생에게 하는 어떠한 말은 남다른 의미가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분이라면 수강생에게 사탕발림 같은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작가가 되면 혹은 등단하면 자신의 인맥을 끌어다 준다느니, 첫 책은 자신의 손으로 지어준다느니, 이러한 말을 하는 강사라면 그 수업은 나가지 않길 바란다. 꼭 나가야겠다면 인정에 끌려다니지 말고 수강료를 최대한 뽑아내는 것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나와 글벗이 겪은 아픔을 당신이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상처가 깊으면 절필을 선언할 수도 있다.)


정말 강사의 인맥을 끌어다 주고 수강생의 책을 출간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차후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덕을 볼 마음은 접어두는 편이 이롭다. 작가는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스스로 작가가 되어야 한다.



사탕발림이라고 표현한 건 본인의 입으로 한 말을 어느 강사님께서 지키지 않아서이다. 강사님의 곁에서 적게는 일 년, 많게는 삼 년을 수강생으로 함께 해 오며 책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의 글을 쓴 글 벗 둘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현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는지 절필을 선언했다. 떠나가는 글 벗을 보며 나도 현실을 즉시 했다. 첫 책은 손수 지어주시겠다던 그 강사님께선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셨지만 수강생의 원고가 아무리 쌓여도 책은 나오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한 권을 출간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있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원고를 원한다. 원고의 양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지만 질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현실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수강생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신 강사님이라면 수강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언행은 하지 않으신다. 그저 책이 지어지는 과정을 알려 준다든지, 어려움을 겪을 때 조언을 해 준다든지, 출간하게 되었을 때 추천사를 써 준다든지, 하는 것으로 출간 과정을 돕고 출간 이후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며 책을 주위에 소개해 주시려고 애쓰실 뿐이다.


어느 강사님께서는 수강생에게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강연, 북토크, 출간기념회에 수강생을 동원하기도 했었다. 나도 그런 수강생 중 하나였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참여한 게 아니라 분위기상 안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러리를 자처한 것이었다. 이러한 강사는 지도자로서 갖추어진 사람이 아니다.


강사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전수하고, 수강생은 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일정 금액을 치른다. 목적이 있는 관계라는 건 명백하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어떠한 목적만을 두고 맺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진심’이 빠진 관계는 어쩐지 씁쓸하다.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진심으로 따르고, 가르치는 자는 배우려는 자를 진심으로 이끌어주어야 하는 게 옳다. 남편은 이런 나에게 로망이라며 너무 이상적인 관계를 바라는 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려는 자의 태도를 갖추려 하고, 진심으로 강사님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글쓰기 수업을 찾는다면 가르치는 강사의 이력도 볼 필요가 있다. 최소한 강사가 어떠한 글을 쓰는 사람인지는 알아야 한다. 물론 글을 잘 쓴다고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가르치는 분의 작가 이력과 글쓰기 스타일을 눈여겨보라고 말한다. 이 또한 쓰라린 경험을 한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거나 책을 한 권도 지어보지 않은 분에게 글을 배운 적이 있었다. 나에게 그림책을 지도해 주신 강사님은 그림책을 한 권도 출간해 보지 않은 분이었다. 그 수업에서 이루어진 강의는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른 그림책 수업의 수강료만큼을 지불해 놓고도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거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 아닌가요?”하고 여쭙기도 했었다. 강사님은 상기된 얼굴로 “제 노하우예요. 그럴 리 없어요.”라고 답했다. 핸드폰을 열어 유튜브 영상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다른 수강생의 눈치가 보여 그즈음 해 두었다. 누군가 남겨놓은 강사의 수업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 강사의 성함을 많이 검색해 보고 무언가라도 건진다면 득이 되지 실이 되진 않는다.


글쓰기 수업 중 첨삭 수업이라는 게 있다. 글의 맥락을 바로잡고 문장의 주술 호응을 맞추는 등 글과 문장을 전반적으로 손보며 지도하는 수업이다. 첨삭 수업은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 이럴 땐 파일을 주고받게 된다. 고쳐야 하는 문장에 괄호를 치고 강사가 고친 문장을 적는 식이다.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할 때 첨삭을 받기도 한다.




처음 첨삭 수업을 받았을 때 신세계였다. 이렇게 고치면 문장이 유려해진다는 걸 코앞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발전하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되었고, 그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첨삭 수업에서 고쳐 받은 문장은 나의 것이 아닌 강사의 문장이다. 원인은 이것이었다.


글쓰기가 발전하려면 퇴고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조금씩 나은 문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첨삭받은 문장에 갇혀버리면 자유로운 퇴고가 어렵다. 첨삭 수업의 장, 단점이 확실하다는 걸 알고 난 이후 더는 문장을 첨삭받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첨삭 수업이 크게 도움 되겠지만 나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첨삭 수업을 경험해 보는 건 긍정적이다. 그 경험은 첨삭 수업 방식이 얼마나 자신에게 이로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현재 나도 에세이 쓰기 수업 시간에 수강생의 원고를 첨삭한다. 누구보다도 첨삭의 장,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문장에 갇히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첨삭한 원고를 파일째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예외일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먼저 퇴고를 마친 뒤에 첨삭받은 문장을 보길 권한다. 첨삭받은 문장이 각인되어 다른 문장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기도 하니까 첨삭받은 문장을 먼저 보지 않는 편이 이롭다.



글쓰기 수업과 글쓰기 모임은 다르다. 글쓰기 모임도 다양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내가 참여했던 곳은 확실히 수업과는 달랐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위에 언급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모임의 리더는 존재해도 누군가 글쓰기를 지도하는 식은 아니었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각자 써온 글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고 더 나은 글이 되도록 고민했다. 어느 정도 글쓰기가 되었다면 합평에 나가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만 비평이 아닌 비판을 하는 모임이라면 당장 때려치워야 한다. 글에 부족한 점을 알고 보완하기 위해, 글에 장점을 발견하고 계속 계발해 나가기 위해, 합평을 하는 거지 모멸과 수치가 오가는 모임은 필요 없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다 보면 강사의 문체와 비슷해지는 수강생을 종종 본다. 자신도 모르게 문체를 따라 쓰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수강생은 누군가의 문체를 흉내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만의 언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자신의 문장에 집중해야 한다.


가능하면 접속사, 물음표, 느낌표 피하기, 종결어미 다양하게 쓰기, 장문과 단문 적절히 사용하기, 같은 부사나 단어를 반복해 쓰지 않기, ‘~ 때문이다.’와 같이 된 발음 소리가 나는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대체하기, 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만의 언어적인 특성을 완성하는 작가도 있다. 나도 그중 하나이며 앞에 나열한 건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문체(文體)란, 사전적인 의미로 ‘문장의 개성적 특색’을 말한다. 내가 가진 색깔이야말로 가장 뚜렷하고 확실한 개성이라고 여긴다. 문체를 완성해 나갈 때 어떻게 하면 언어적 특성을 살려 개성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문체도 중요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건 진솔함이다. 에세이스트에게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진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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