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언어 찾기

문체 만들기

by 이수아

글을 쓸 때면 주로 상용하는 언어와 가능하면 사용을 자제하려는 언어 크게 두 개로 나누어 놓고 쓰기 시작한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피하려는 언어를 바꾸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본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럼에도>

‘그럼에도’ 뒤에 ‘불구하고’가 붙으면 다소 무게가 느껴지고 문장이 경직되어 보여서 ‘그럼에도’만 사용한다.

<~하기 때문이다 -> ~이기에 그렇다 / ~이니까 / ~여서이다>

가능하면 된 발음 소리가(ㄲ, ㄸ, ㅆ, ㅉ) 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된 발음 소리가 나는 단어가 문장에 많이 들어가게 되면 다소 뾰족하게 읽혀서이다. 나의 문장이 부드럽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 때문에>

‘때문에’ 앞에 ‘그렇기’를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말이 된다. 꼭 들어가지 않아도 말이 된다면 불필요한 언어를 제외하고 사용한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붙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생각한다 -> 여긴다>

‘생각한다’는 명사로 ‘생각하다’에서 미래형 선어말 어미 ‘-ㄴ’이 첨가된 것이다. 문장에 대한 책임감을 덜어주는 고마운 단어이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 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단어여서 정말 모르는 경우에만 쓰고 대부분은 ‘여긴다’로 바꾼다.


<~일 것 같다 -> ~일 듯하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있다. 앎의 기준을 100%로 두고 50% 이상인 경우‘~일 것 같다’를, 50% 미만인 경우 ‘~일 듯하다’를 선택적으로 쓴다.


<어릴 때 -> 어릴 적>

된 발음 소리가 들어간 단어는 한 글자라도 된 발음 소리가 나지 않는 글자로 교체할 수 있는지 찾아본다.




좋아하는 어휘로는 ‘고스란히’, ‘스민다’, ‘온전히’, ‘다가온다’, ‘내려앉는다’와 같은 몽글몽글한 감성을 자극하는 단어들이다. 부사로는 ‘그럼에도’가 있다. 한 문장 안에 동어반복을 피하려고 한다. 인터넷 사전을 검색하면 같은 뜻을 가진 어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문장 안에 ‘~를 ~를’, ‘~고 ~고’, ‘~는 ~는’과 같은 보조사의 반복도 조심한다.


한 문단 내에 있는 종결어미를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독자의 시선에서 ‘~한다, ~했다, ~다’로만 끝나는 문장을 읽다 보면 한 문단 안에 담긴 온도가 비슷해 읽는 맛이 건조해질 수 있다.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시대이니만큼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감각을 주어야 한다. 한 자라도 더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여긴다. 단조로운 문장을 능가하는 특별함이 담긴 글이라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된다.


장문과 단문을 적절히 사용하려고 한다. 장문 뒤에 단문을 쓰도록 문장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읽는 호흡에 리듬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읽는 맛이 저하된다고 여겨지면 장문 뒤에 장문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장 안에 대화체가 들어갈 때 대개 큰따옴표 (“ ”)뒤에 ‘~하고’ 혹은 ‘~라고’를 적게 된다. 문장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큰따옴표 (“ ”)뒤에 ‘~하고’를, 부정적이면 ‘~라고’를 쓴다. ‘무척’, ‘몹시’와 같은 부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뒷 문장을 강조하는 부사인데 문장의 분위기가 긍정적이면 ‘무척’을, 부정적이면 ‘몹시’를 선택한다. 부정적인 어휘를 선호하지 않은 편이어서 ‘싫다’보다는 ‘좋아하지 않는다’로 바꾸기도 한다.


접속사보다는 부사를 선호한다. 이건 글쓰기를 지도해 주신 K 작가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접속사나 부사를 사용하지 않고 문장을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문장마다 무게감이 있다면 상관없다. 실제로 한 편의 글에 접속사와 부사를 자주 사용하는 작가님이 있다. 이분의 글쓰기 실력은 나로서는 가히 넘어 다 볼 수 없는 경지이다. 문장마다 묵직함이 있어서 접속사와 부사가 많이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말 잘 쓰신다. 마치 시를 읽는 기분이다. 그만큼 하나의 문장에 함축적으로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나는 그런 재주가 없으므로 꼭 필요한 곳에 접속사를 넣는다. 가능하면 문장에 맞는 부사를 찾아서 배치한다.

나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는 ‘세계’, ‘시절’, ‘언젠가’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단어는 ‘어쨌든’, ‘아무튼’이라는 부사이다. 책이나 글 제목으로는 괜찮아도 글에 사용하는 건 왜인지 내가 쓴 문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듯해 보여서 선호하지 않는다. 신경을 써도 글을 쓰다 보면 의도한 대로 다 적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나와 내가 가진 감수성을 잘 담아내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한다.




누군가는 문체를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거냐고 물을 수 있겠다. 꾸준히 쓰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게 문체가 아니냐고도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 말들도 맞다. 나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알고 굳혀나가는 것도 문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건 누구나 쓸 수 있지만 내 언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쓸 때마다 흔들림 없이 일관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누가 쓴 글인지 밝히지 않아도 나의 언어를 알고 있는 독자가 “이거 00 가가 쓴 글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언어를 찾으려면 우선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나를 잘 알기 위해선 끊임없이 성찰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게 필요하다. 글쓰기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사유하게 하며 내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글쓰기를 지속하면서 나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창옥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혹은 주변 사람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물들어 간다고 한다. 물들어 가면서 자신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언어도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사람이 달라지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담아내는 언어가 같을 수 있을까. 나태함이 찾아온 듯하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나를 알고자 하는 일에 게을러지지 말자” 하고 마음을 굳건히 한다.

keyword
이전 22화글쓰기 수업과 글쓰기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