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작가와 우울

by 이수아

나의 글쓰기는 마음 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글쓰기를 훈련이라고 여기며 시간을 정해 연습 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때로는 마음 상태에 따라 컴퓨터 앞에 앉는 횟수가 더해지는 날이 있다. 대부분 마음이 좋지 않을 때이다. 그러니까 어두운 감정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우울감, 슬픔, 공허함, 쓸쓸함, 외로움을 글로 풀어내고 싶어서이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지 않아도 키보드 위에 손을 얹으면 술술 써진다. 왜 그러한 기분이 되었는지부터 쓰다 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A4 한 장이 넘어간다. “왜 우울해?”, “어떻게 되길 바랐는데?”, “상대방 입장은 생각해 봤어?”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며 글을 써 내려가곤 한다.


검은색 물감이 잔뜩 묻은 채 방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붓을 투명한 물감통에 채워진 물에 살살 흔드는 기분이다. 붓이 마음이라면 그걸 부드럽게 만들고 검정으로 물든 감정을 덜어내는 일. 붓이 완전히 깨끗해지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어두웠던 마음이 밝게 옅어진다. 그렇게 글을 쓰며 스스로의 등을 다독여주고 살포시 안아준다.




작가 중에는 우울증 경험자가 유독 많다고 한다. 누구나 우울감과 결핍이 있지만 작가 중엔 그 농도가 짙은 사람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이다. 시와 소설에서 작가의 어두운 감정이 투사되었다는 걸 감각하고, 에세이에서 작가의 내밀한 속마음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어쩌지 못하는 우울감이 컴퓨터 앞으로 이끄는 듯하다.


글은 행복할 때 안 써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인생이 어딘가 불만족스러울 때만 책상 앞에 앉는다. 만사를 제쳐두고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놓고자 글을 쓴다. 글쓰기는 자아성찰의 씨앗이다. 실컷 운 가슴에 할 수 있다는 용기의 문장을 심어준다. 다시 세상을 살아가게 한다. 나는 이처럼 고난을 딛고 일어선 후에야 마주할 수 있는 즐겁고 다정한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 주고자 글을 쓴다.

《글 쓰는 즐거움》, 글지마 지음


사실 나도 기분이 좋을 땐 컴퓨터 앞에 잘 앉게 되지 않는다. 기분이 너무나 좋은 순간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 글을 쓸 때가 있지만 감정에 취한 자기 자랑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마음이 동동 떠오르기만 해서 깊숙한 내면까지 파고들기가 어렵다. 이럴 땐 마음을 균형 잡기 위해 차분한 음악을 튼다. 그 멜로디를 들으며 글을 쓴다. 자기 자랑 글이 되지 않도록 반대편에서 사유하려고 한다. 이렇게라도 하면 좋은 글은 아니어도 최소한 자기 자랑 글은 면할 수 있다.

어두운 감정이 찾아왔을 때 글을 쓰려는 작가가 많은 건 나처럼 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는 어두운 감정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그러나 글을 아무리 쓴다고 해도 결핍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나는 언젠가 글을 못 쓴다는 결핍으로 글쓰기를 향해 달렸던 적이 있다. 어릴 적부터 내재되어 있는 애정결핍은 책 출간 이후 다음 책을 지어 올리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결핍은 어떠한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내는 것 같다. 몰입해도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갔다.




최근 결핍과 몰입의 연관성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던 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 책은 김창옥 교수님의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결핍’의 힘은 아주 세다고 한다. 결핍을 동력으로 돈을 벌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와 열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말한다. “부모님에게 인정받을 거야”, “날 무시했던 사람들한테 본때를 보여줄 거야” 하며 자신의 삶을 추진해 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제야 내가 가진 결핍으로 무언인가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결핍이 무언갈 이뤄내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그 욕구가 내 안에서 열정을 만들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와 더불어 김창옥 교수님은 중요한 결핍의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여기에는 함정 같은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부작용이 뒤따른 건 강력한 에너지에 반하는 대가이다. 결핍을 동력 삼아 원하는 바를 이뤄도 앞으로 성과가 안 날 것 같은 불안감에 행복한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행복 멀미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행복을 낯설게 느끼는 행복 멀미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핍에 길들지 않는 게 중요하겠다. 시작의 동력은 결핍이었더라도 나아가는 길에 계속 나의 부족함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건 어두운 감정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 작품을 쓰기 위해 스스로 우울을 택하고 그 속에 빠져들려는 건 위험하다.




글쓰기로 뭉쳐진 감정을 풀어 놓아도, 글을 쓰기 위해 어두운 감정을 찾아 나서고 만들어 내지는 않아야 한다. 기분이 좋을 땐 컴퓨터 앞에 앉고 싶은 마음도 덜하고 글도 잘 써지지 않지만 어두운 감정에 스스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글 쓰는 일은 고독한 노동이다. 들인 노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결과도 얻기 어렵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적어서이다. 물론 쓰는 즐거움과 기쁨도 있지만 글쓰기는 힘들다. 그 힘듦을 택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어둠의 굴레를 씌우는 건 스스로를 해하는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글쓰기는 마음 상태에 따라 잘 써지는 날도, 안 써지는 날도 있다. 그러니 마음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감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말로는 쉬워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평온함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는 건 글쓰기가 자신을 망치는 일이 되지 않아야 하기에 그렇다. 글쓰기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흘려보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들여 몸에 좋은 기운이 돌게 하는 것.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이 글은 결핍이 많은 나에게, 어떠한 결핍은 몹시 깊어 헤어나오기 힘겨워 하는 나를 위해, 받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쓰는 삶을 통해 밝은 빛을 따라 나아가라는 다독임이자 응원이다. 행복이 찾아왔을 때 멀미가 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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