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
언젠가 글쓰기 모임의 리더는 사전의 뜻을 인용해 글을 써 온 나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사전적인 뜻을 검색해 보는 건 좋은데, 그걸 글로 옮기는 건 무식한 걸 티 내는 것과 같아요. 글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자주 그러시는데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했다. '뭐? 무식?' 잠시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나 나보다는 리더가 글쓰기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 것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가능하면 사전에 나온 뜻을 글로 적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삼 년간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그때 리더가 한 말이 반은 맞고 반은 옳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아갔다. 그 답은 다름 아닌 책과 글벗의 글에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공저를 출간한 수강생인 원솔희 작가의 글을 예로 들어 본다.
사람들은 다양한 일들에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분투하고 있었다. 이렇듯 다들 억울한데 나만 억울하지 않은 것이 이제 조금씩 억울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억울한 것이 뭔데 나만 억울하지 않은 것인가. 사전을 찾아본다.
억울하다 (抑鬱)하다 [형용사] :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 (p.27)
《오직 한 사람, 나의 너에게》 中, 원솔희 외 7인
필요에 따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전의 뜻을 글로 옮길 수 있다. 글에 다른 의미를 담기 위해 누구나 다 아는 뜻을 가진 쉬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덧대어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책에도 점(말 줄임 표시 - … , ……)에 대해 담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글쓰기 모임의 일원 A는 나에게 점을 찍을 때 여섯 개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점 세 개를 찍은 글을 가져갔고 A는 그에 대해 조언한 것이었다.
A에게 왜 점을 여섯 개를 찍어야 하는지와 세 개를 찍으면 안 되는 이유를 물었다. A는 점 여섯 개를 찍는 게 글쓰기에 기본이라고 답했다. A가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했던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 당시 글쓰기에 무지했던지라,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때 다른 일원과 리더도 A의 말이 옳다고 했다. 그러나 점이 세 개만 찍힌 문장도 수없이 많다. 책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도 골프채를 보노라면 그날 아빠가 휘두른 부당한 폭력이 가끔 생각난다. 이 쓰라린 경험 때문에 골프에 대한 반감이 생긴 것만은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단 그 미학적으로 참기 힘든 골프웨어부터가…. (p.223)
《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글쓰기 수업과 모임을 이어온 사람 중 점을 습관적으로 두 개나 일곱 개를 찍는 글 벗도 있었다. 점을 두 개만 찍으면 다소 문장이 가벼워 보일 수 있고, 일곱 개를 찍으면 문장이 늘어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건 글쓰기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 개나 여섯 개가 아닌 다른 개수의 점이 찍힌 글을 볼 때면 점과 점 사이에서 감성의 농도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출간 과정에서 세 개 혹은 여섯 개의 점을 찍으라고 권유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을 말하고 싶다. 점의 개수와 상관없이 한 사람이 쓰는 모든 글에 일관된 개수의 점을 찍게 되면 그 사람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오래전 출판된 책에는 점 여섯 개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책에는 세 개도 많이 찍는다. 세월이 더 흐르면 두 개, 네 개, 다섯 개의 점을 찍어도 무방한 날이 올지 모를 일이다. 누가 무엇을 말하든 그건 그 사람이 가진 의견일 뿐 정답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다. 더 나은 문장으로 나아가는 길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