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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Dec 09. 2022

Ep 44: 세 가지 목표 설정

눈물의 거절 그리고 잣대 설정

 호주에서의 생활은 나의 견문을 넓게 트이도록 도움을 주었다. 호주라는 국가의 선진 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영어 이외에 다른 좋은 점들도 배울 수는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호주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단지 내 친구, 내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했을 뿐이다.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다시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종잣돈 3천만 원어치의 값어치를 했을까?'


 공항에 도착하자 부모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나를 반겨주셨다. 그렇게 간단히 회포를 푼 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 몸의 피로만큼이나 무거웠던 여행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가 끝난 후에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진탕 마셨다. 친구들을 만나 보니, 끈질기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돈을 벌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1년이라는 시간이 뒤쳐졌다 보니,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나의 마음도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계획을 짜야겠군..'


 오전에는 헬스장에 매진하였고, 그 외의 시간에는 직무적성 검사 관련 시험공부 및 입사 지원에 시간을 쏟았다. 그러는 도중 입사 지원 조건에 부합되기 위해 토익 시험도 접수하였다. 군 시절, 큰 낭패를 봤던 이래로 처음 보는 토익 시험이어서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나 자신을 믿기로 하였다. 인터넷으로 가장 빠른 날짜로 접수를 완료한 후 해당일에 시험에 응시하였다. 별로 좋아하는 종류의 시험은 아니었지만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점수가 필요했기 때문에 더운물, 찬물을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시험에 응시한 후, 이번에도 리딩 파트에서 시간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리스닝을 풀면서 리딩 파트를 부지런히 오락가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니, 뭐 이딴 종류의 시험이 다 있나 싶어서 불만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영어 실력을 위한 시험이라기보다는 영어 점수만을 위한 시험이라는 점에서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부아가 일어났다.


'이게 영어 시험이야? 아니면 재빨리 빈칸 채우기 게임이야?'


 불행 중 다행으로 첫 시험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리스닝은 거의 490점에 가까운 만점을 받았지만, 리딩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서 820점 정도의 점수를 취득할 수 있었다. 900점은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 다음 시험을 다시 한번 응시하였으나, 점수는 875점이었다. 첫 시험과는 다르게 리스닝에서 실수를 많이 했고, 리딩은 좀 전보다 조금 오른 상황이었다. 목표로 삼았던 900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시험을 응시해야 했지만, 시험 응시비도 아깝고, 대부분의 기업 응시 조건도 700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해서 염증을 느꼈던 토익 시험은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몸 관리와 직무적성 검사 준비 그리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그 당시에는 영어 점수만 확보되면 취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리도 무모하게 생각하고 결정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지방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서류 전형을 통과하는 것조차 만만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극도의 우울감을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초조함은 우울감과 불안함으로 대체되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취업 투쟁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잡코리아와 사람인을 통해서 수백, 수천 통의 입사지원을 하였지만 번번이 돌아오는 답장은 '서류 전형 탈락하였음을..'이라고 가슴을 후벼 파는 이메일들만 수두룩하였다. 내 눈높이가 너무 높은가 싶어서 눈높이를 낮춰 지원했지만 어김없이 서류 전형 합격의 고비를 넘기에는 나의 이력서가 너무나도 매력이 없었던 듯싶다. 자기소개서를 수없이 수정해가며 이리 지원하고 저리 지원하는 시무룩한 지원자의 인생을 살아가던 도중 간간이 합격 통보라도 받을 때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며 행복에 겨워했지만, 이내 비경력자이기 때문에 불합격 통보를 공지하던 회사들도 제법 있었다. 이력서에 분명히 신입이라고 적어놨건만, 본인들이 제대로 확인을 못해 놓고서는 나의 소중한 시간과 차비를 그렇게 마음대로 갉아먹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경력자를 구인하는 회사에 지원한 나의 잘못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구인 광고가 경력자만 구인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불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취업의 쓴 맛을 제대로 느끼며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을 때, 친한 친구가 나에게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 친구의 아버님은 시청 국장님이셨는데,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내가 지원했던 모대학 창업 연구 센터에 꽂아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달콤한 제안을 나에게 내놓은 것이었다. 비록 급여 수준은 나의 기준을 하회하였지만 더운물, 찬물 가릴 것 없는 애처로운 처지에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부탁을 할까? 말까?'

 

 너무나도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취업 청탁이니깐 옳은 일이 아닐 테고, 친구 아버님께도 추후에 부담이 갈 수 있겠지..'
'나 보다 능력 있는 인재가, 이 청탁으로 인해 탈락하는 피해를 보면 안 되겠지..'
'남의 힘보다는 나의 힘으로 해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수많은 고민 끝에 태연한 척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어~ 마이 프렌드!"
"어때? 제안은 생각 좀 해봤어?"
"어, 생각해 봤어. 제안은 감사한데 내 힘으로 한 번 해보려고 해. 네 아버님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기는 하지만 내 밥상은 내가 차려 먹어야지.."
"야! 정말이야? 이거 나쁘지 않은 기횐데.. 너만 좋다면 바로 합격이라고!"
"그래, 정말 고맙고, 감사한데, 내 힘으로 해볼래! 아버님께는 꼭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드리고!"
"어? 그래.. 알았다! 네 마음이 그렇다면.. 여하튼 나중에 소주나 한잔 하자!"
"그래! 고맙다! 친구!"


 2008년 12월 나의 시름을 알기라도 하듯 눈이 수북이 내리던 그 어느 날, 나는 취업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같던 그 제안을 과감히 뿌리쳤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지만, 귀국한 지 2개월 남짓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좀 더 믿어보며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지방대 출신이지만 나는 취업을 할 모든 준비가 돼있었고, 준비된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혹자의 말을 실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나를 뽑지 않는 거지?'
'명문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이겨낼 테다.. 기다려라.. 사회야!'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자기소개 등, 예상 면접 답변을 써 내려가며 달달 외웠던 노트의 맨 뒷장을 과감히 펼친 후, 쓱싹쓱싹 나의 세 가지 목표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 대기업
2. 외국계 기업
3. 공사 / 공기업


'이렇게 된 이상 이 세 개의 기업들에 취업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취업은 없다!'
'나는 할 수 있다!'


 마음이 연약해질 때곤 면접 노트의 맨 뒷장을 바라보며 나의 목표를 상기하고 그에 걸맞는 지원자가 될 수 있도록 지원 자격을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2008년도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군 시절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귓가에 미친 듯이 맴돌았다.


"너 장기지원 안 하고, 전역한 거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


 보란 듯이 아버지의 콧대를 눌러주고 싶었지만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철저한 야생에서의 경쟁 법칙에 의해 포식자와 피식자로 구분되는 냉혹한 현실만 존재할 뿐, 그 어느 곳에도 따뜻한 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딱히 뚜렷한 해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결정권자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남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는 이러한 상황들이 불만족스럽긴 했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누군가의 간섭과 통제를 직간접적으로 받아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서글프기만 했다.


 취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어머니의 말 한마디는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기 바빴다.


"필립이 엄마 아들은 저번에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취업했다더라! 너랑 같은 대학 나온 그 필립이!"
"네...."
"언제까지 집에서 이렇게 놀고먹을래? 필립이 처럼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취업을 하던가!"
"알아서 할게요.. 비교하지 마세요.."
"알아서 한다고 한 게 언젠데? 정신 좀 차리렴!"
"알겠다고요! 그냥 좀 가만히 좀 놔둬주세요.."


 참다 참다 내뱉으셨던 어머니의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아픈 곳을 후벼 팠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이렇다 할 방도도 없었을뿐더러 반격할 에너지도 고갈되고 없었다.


'정말 목표를 포기하고, 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걸까?'
'뽑아줘야 나를 증명이라도 하지.. 인생이 뭐가 이리도 힘들고 고달프냐..'


 입사 지원만 수백, 수천번 이상 습관적으로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서류 제출'이라는 버튼의 클릭을 반복할수록 합격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점점 하락했으며,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 깊은 곳까지 떨어져 나갔다. 그 당시 나를 유일하게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은 나의 세 가지 목표였다. 막연하기는 했지만 그것마저 없었으면 아마도 나는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떠도는 뗏목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오늘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꿈에 밧줄을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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