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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pr 12. 2024

물질만능주의의 늪

그렇게 길러지고 조련되었던가?

"여기 돈 싫어하시는 분 계신가요?"
"...."


 너무 당연한 질문이어서, 이 질문을 듣는 청취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질문자를 알쏭달쏭하다는 듯 훑어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부분 당연한 것들을 물어봤을 때 유추되는 사람들의 반응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전 세계에서 또한 당연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자신들이 자라온 환경 혹은 사회적 분위기와 방향성에 따라 개개인들은 국가와 주변 환경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일컬어 '문화적 차이', '다양성' 혹은 '민족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 기관인 Pew research center에서 17개 선진국, 성인 1만 9천 명을 대상으로 삶의 중요도 순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호주, 뉴질랜드등 대부분의 14개국에서는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인지되었지만, 한국과 대만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다른 답변이 나왔다. 한국은 '물질적 풍요', 대만은 '사회', 스페인은 '건강'이 삶의 최우선 가치임을 나타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국이 17개국 중 유일무이하게 '돈'을 삶의 의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첫 순위로 꼽았다는 것이다.


 식량 사정이 넉넉지 못해서 보릿고개를 경험하셨던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 가난과 배고픔은 다시 겪기 싫은 뼈아픈 고통이자 상흔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일꾼들은 헝그리 정신이라고 일컬으며, 주린배를 부여잡고 너나 할 것 없이 악착같이 노력하여 대대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쾌거를 이뤄내셨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라인강의 기적'을 한국이라는 자원도 없고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이뤄낸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세계를 향해 그 존재감을 나타내며 세계사 속에서도 유례없는 초고속 성장의 기적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 대단한 성공의 이면 뒤에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성된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과 빈부의 격차 심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또 다른 사회적 시름을 낳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이런저런 연유들로 인하여 글쓴이의 아버지는 보리밥과 감자를 아직까지 거리껴하신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질리도록 먹었던 그 음식이 입에 물리고 질리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3가지 꿈을 반드시 실현시키실 것이라고 다짐하시곤 했다고 한다. 첫째는 그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흰쌀밥'이요, 둘째는 막걸리 같은 싸구려 술이 아닌 '소주'이상의 술만 마실 것이요, 셋째는 필터 없는 싸구려 담배가 아닌 '고급 궐련 담배'만 태우시는 거였다고 한다. 글쓴이가 중, 고등학교 시절에 본인은 이미 본인 인생의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으로선 매우 소소한 그 인생 목표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마음 한편에 짠함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실제로 주린 배를 부여잡고, 친구들 몰래 운동장에 위치한 수돗가로 달려 나가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양조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막걸리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들을 주워 먹으며 지내셨다고 한다. 물론 부유하게 자란 분들도 있었을 테지만,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뼈아픈 경험이었을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보니, 당연히 식량을 구매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의 중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 대부분에게 물어본다면, 삶의 의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경제적 풍요로움'이라고 답변할 것으로 간주된다. 가난을 대물림해 주기 싫었던 우리네들의 부모님들의 언행들과, 그 언행들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간접 습득한 우리네들의 지식, 그리고 현재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느껴봤음직한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 등등. 하지만 과거의 경제적 풍요와 현재의 물질적 풍요 사이의 선택에는 그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생계의 수단과 목적으로 '돈'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던 반면, 현재에는 생존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요인으로 인해 '돈'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Facebook, Instagram과 같은 사회 관계망 서버스를 통해서 겪게 되는 FOMO 증후군과 더불어, 남들과 비교하고 자랑하면서 경쟁하듯 사치하는 습관은 그 또 다른 요인의 예일 것이다.


 비단 한국에서 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삶의 최우선 순위를 돈으로 삶는 것에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물론 돈이 있어야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도 구입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좋은 교육환경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돈 때문에 국가의 근간이 되는 가정을 형성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을 최우선 의미로 삼지 못한다는 것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들의 사회 관계망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 결과 가족을 경시하는 문화가 급속히 퍼졌고,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사회적 분위기는 따뜻하고 정 넘치던 분위기에서 딱딱하고 경색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한국인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생기보다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해 보였으며, 어두운 느낌들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었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간에, 돈의 가치와 중요성은 항상 선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물질은 인간의 모든 욕구를 절대로 충족시켜 줄 수 없을뿐더러,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더 소중한 것들도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


 중년이 되니, 하나둘씩 몸이 망가져가며 늙어가는 이 상황이 아쉽기도 하지만, 잘 헤아리지 못했던 세상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치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한 발짝 뒤에서 들여다보니, 가까이에서는 못 보던 것들까지 볼 수 있게 된 혜안이랄까? 물론 글쓴이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가족과 건강이라고.


돈의 느낌은 욕망일까? 탐욕일까?

아니면

친절과 배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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