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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n 21. 2024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라는 속담은 말의 중요성과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문구이다. 보통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이 말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는 한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는 척도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 말은 인간 상호 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교류선의 역할을 매우 높은 비중으로 담당하는 필수적인 도구 중 하나이다. 물론 행동이나 글들의 영역을 전부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일련의 영역들 또한 언어적 수단을 위한 여러 가지 표현 방법 중 한 가지이니, 그 맥의 상통함은 모두 비슷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자그마한 몸짓, 미세한 표정 변화, 생각을 옮겨 담은 글, 어투에 따라 우리네들의 공동체 생활환경은 다양한 변수의 분위기들을 창조해 낼 수 있다. 실제로 화가 잔뜩 나보이는 이의 입에서는 고운 말보다는 분노와 나쁜 감정이 잔뜩 섞인 말이 나올 확률이 높으며, 행실이 선하여 예의 바르게 보이는 이의 입에서는 산뜻한 들바람에서 느껴질 법한 기품 섞인 아름다운 말들이 나올 확률은 안 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이다.


 크건 작건 생존을 위해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간혹 당혹스러운 입방귀 냄새를 맡게 될 수도 있다. 가족, 지인, 직장 동료 및 상사, 혹은 쌩판 일면식도 없는 남에게서 조차, 허락한 적도 없는 감정 교류의 선을 제멋대로 넘겨받을 수도 있다. 그 감정 쓰레기를 본인만 소유하면 될 것을, 본인조차 그 지독하고 역겨운 악취를 견디지 못해, 썩은 내를 펄펄 풍기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봐도 고집스럽고 선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관상을 스스로의 얼굴에 새겨 놓고, 본인의 버릇없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강자에겐 선택적 예의바름을, 약자에겐 기분 나쁜 말의 비수를 끊임없이 던져대니 말이다.




 글쓴이의 관점에서 인간은 본디 그 마음이 매우 악하지만, 그 악함을 억누르고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본인을 끊임없이 수양하고, 지식을 습득한다. 모두가 선하다면, 부의 분배, 사회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계층 사다리의 이동 또한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고, 전쟁이나 싸움 같은 분쟁도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을 것이다. 모두가 서로 먼저 사과하고, 양보하며, 남 탓보다는 본인의 잘못을 탓할 것이고, 본인들의 재산을 스스럼없이 선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증여할 텐데, 이러한 이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세상이 과연 존재 조차할 수 있겠냐는 자문을 해본다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은 이미 우리네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악한 존재들인 우리네들이 악한 행위를 하거나 나쁜 말을 내뱉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자명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불편함 없이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예의를 지키며,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네들은 교육을 통해 악함을 억누르고, 원활한 사회 관계망의 흐름을 위해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우리네들 모두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것들이 공동체적 의식에 의해 암묵적으로 도출되게 되는데, 간혹 누군가가 이러한 분위기를 깨려거나, 선을 넘는 비상식적인 언행을 한다면, 우리네들은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감정에너지의 급격한 소모를 경험함과 동시에 매우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실질적인 그 힘으로는 우리를 때릴 수도 쓰러트릴 수도 없는 그 말이라는 존재의 중대함은 치료할 수 없는 엄청난 내상을 입히게 할 수도 있고, 그 내상을 치료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선한 영향력은 우리네들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항상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악한 행위들은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 소유하지 못한 것, 차지하기 힘든 것들은 항상 예로부터 정복과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선을 갈구하고 악을 면박주는 것일까?


 우리네들은 지금 인간의 두뇌만큼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현시대의 일부로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하고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선하고 영향력 있는 말들을 해줄 수 있는 버릇 있는 사람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희소성의 법칙에 입각한 현실임을 인정해야만 할 수도.


말을 잘하려고 힘쓰지 말고,
이쁘고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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