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아직까지는 나름대로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간이라는 녀석인데,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개인의 선택과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각 개인의 1분 1초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할당된다. 물론, 사회적 분위기와 그를 둘러싼 환경으로 인하여 그 시간들의 쓰임새는 각양각색이겠지만, 할당된 시간을 멈출 수도, 연장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시간에 제약을 주는 것만큼 만인에게 공평한 형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이라는 이 녀석은 인류가 그토록 정복하고 싶어 하지만 정복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시간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개개인에게 배정된 정확한 시간을 알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우리네들은 그저 시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시간이 가는 방향대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는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달 모양의 변화등을 토대로 시간의 규칙성만 발견했을 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타임머신의 기술이라던가, 생명 연장의 기술 등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일 뿐이다.
하루가 지났다는 의미는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하루만큼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죽음과 이별이라는 마침표를 경시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된다면, 시간을 통제하는 자가 막강한 지배계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소비하는 일이다. 시간이 약이 되려면 반드시 그 대가로 나의 생명 시간을 차감해야만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시간은 개개인의 사사로운 감정과 체증등에 관계없이 일정한 속도로 계속 흘러갈 것이고,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정하게 흘러갈 것이다. 우리네들의 인체 시계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에 떠밀리며 매 순간 데미지를 적립하고 있다.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햇빛은 우리네들의 신체 노출 부위에 따스한 손상을 지속적으로 적립하여 준다. 그 손상은 노화를 촉진할 수도 있고,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네들의 인생에서 좋은 점이 있으면, 그 이면에는 나쁜 점도 소리 없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함을 의미한다. 금보다 값비싼 시간이라는 녀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비해야만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치유될 수가 있다는 것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비싼 값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일까?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겠지만, 어떤 이는 평생을 괴로워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하루 만에 훌훌 털고 일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정녕 약이 되려면, 그냥 우두커니 서서 무한정 기다리는 것보다, 약이 될 수 있기 위한 프로세스에 직접 능동적인 참여를 하는 편이 좋다. 독을 만들지, 약을 만들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자유겠지만, 마냥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저절로 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