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J Jul 07. 2024

울타리

경계를 지어 막는 물건

 우리네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유지하며 산다. 말이 거창해서 울타리이지, 사실 이러한 경계는 거의 본능에 가깝다. 길을 지나가다 쉽게 볼 수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견고하게 분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외부의 침입과 공격에 대비하고 유형 및 무형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보안을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 인하여, 우리네들의 손에는 수많은 열쇠꾸러미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밀 번호 그리고 자물쇠 등이 쥐어지게 되었다.


 울타리 안에 또 다른 울타리들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사방이 꽉 막힌 벽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래도 사방이 가로막힌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 울타리 안에 함께 숨 쉬고 의지할 수 있는 구성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보탬이  될 수밖에 없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그 끈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연이 바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라는 집단이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었으면, 언젠가 밥을 사줘야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은 언젠가 반드시 그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직장인들은 자신들의 노동력과 능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서비스 업체들에게 급여의 상당 부분을 지불한다. 주거비, 식비, 교통비, 전기세, 수도세 그리고 기타 다양한 공과금과 세금들. 공짜 없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짜로 숙식을 해결하고, 그에 더해 염치없이 공돈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는 아주 기이하지만 꼭 필요한 공동체가 바로 가족이라는 집단이다. 이 역시 결국 공짜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반드시 되돌려 드려야 한다거나, 갚아야 할 빚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감사함의 환원 여부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향방이 달라지게 된다. 여차저차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시스템 중에 가장 기본이 되고, 없어서는 안 될 그 가족 구성원들의 소중한 울타리들이 자본의 급격한 쓰나미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허물어지고 있는 이 웃픈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왜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라는 주제로 이전화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공동체의 선택은 공동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그 선택과 결정에는 정답도, 모범 답안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물질 만능주의의 늪에 빠져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의 최고 가치를 무엇에 두느냐는 개인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변화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개개인들의 습성상 그 큰 흐름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부익부빈익빈의 계층 간 불평등은 수많은 사회 문제들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결국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은 우리네들의 욕심에서 기반된 것들이 대다수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내 울타리가 넓어지면, 남의 울타리는 허물어지거나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텐데, 기득권층의 욕심들은 제대로 된 부의 분배를 방해하고, 노동자들을 일의 노예로 전락하게끔 만들었다. 그들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될수록,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들의 영역 밖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내 울타리가 소중하면, 남의 울타리도 소중한 것인데, 내 울타리는 지켜야 할 선이고, 남의 울타리는 거추장한 가림막이나 정복해야 할 새로운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네들의 과욕이 부른 대참사는 아닐는지 자문을 하여본다. 우리네들의 삶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들을 몰살하고 궁지로 내몬 것처럼, 이제는 그 안에서 또 다른 내전이 쉴 새 없이 발발하고 있다.


끝이 없는 것.
그것은 욕심.
금요일 연재
이전 16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