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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빠름'의 반대말 '느림'의 반격 

by JJ Jul 29. 2022

 사람들은 흔히 '느리다'라는 말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왜 그런 것일까? 기다리기 싫어서일까? '느림'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느낌 때문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돈의 지출도 커지기 때문에 돈과 관련돼서는 느림보다 빠름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랜 시간을 공들여 만들어진 것일수록 그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것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그것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시간이 오래 걸렸으면서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아량이 없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천천히 한다는 것의 장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그 이로운 점들은 셀 수 없이 많겠으나 이 페이지에서는 몇 가지만 다뤄보겠다.


작업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


 현대 건축물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료가 있다. 바로 시멘트라는 녀석인데, 업체에서는 공기(공사 기간)를 맞추기 위해 간혹 촉매제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촉매제의 역할은 자연 양생 기간보다 좀 더 빠르게 시멘트가 굳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인위적인 화학 작용을 통해 양생을 한 시멘트의 강도는 건설 기준에 부합할까? 설정된 기준에 따라 부합될 수는 있겠지만 자연적으로 올바른 배합 비율로 굳은 시멘트에 비하여 그 강도가 낮을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 때문에 허우대만 멀쩡해 보이는 부실시공이 완성되는 것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공예품이나 미술품 혹은 문학 작품 또한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된다. 끊임없는 수정과 반복의 작업을 거쳐야만 그 완성도가 높아질 것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이러한 작품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빠른 시간 안에 완료되기를 강요받는다면 그 완성도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요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상업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바쁜 주방일수록 더욱 정신이 없다. 주문한 음식들을 순서에 맞게 조리해야 하고, 단체 주문을 함께 내보내기 위해서는 오래 걸리는 요리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요리의 시간차도 계산해야만 한다. 그래서 바쁜 식당일수록 바쁜 시간대를 대비하여 Half cook(오래 걸리는 요리를 초벌구이해 놓은 상태)을 해놓는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야 하는 요리사의 책무에는 어긋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간혹 튀김 요리가 너무 딱딱하거나 스테이크가 Over cook 된 것 같다면, 당신이 섭취하고 있는 음식은 미리 가열된 요리를 재 가열한 요리일 확률이 높다. 시간은 돈이고, 사람 또한 돈이다 보니, 부족한 노동력으로 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품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넉넉한 시간과 노동력 그리고 신선한 재료만 제공된다면, 소비자의 입맛을 매료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만들 수밖에 없게끔 설계된 인간의 이기를 탓하자.


더 많은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등산을 하면서 정상을 정복하기에만 급급하다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칠 확률이 높다. 짧은 시간 내에 빠른 걸음으로 산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숨이 턱까지 차오를 것이고, 시선은 내 발끝과 등산로 위에서만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사투하는 정신력 또한 주변 경관의 관찰을 저해하는 요소중 하나이다. 목표만을 향하여 나아가다 보니 일말의 여유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모든 시름과 그간의 고통을 잊게끔 만드는 장관이겠지만 정상을 오르는 동안 펼쳐져 있던 요목조목 아름다운 경관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우리들의 인생 또한 그러하다. 정상에 서기 위해 바쁘게만 움직이다 보니 일상에서의 많은 아름다움과 행복들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천천히 앞도 보고, 뒤도 보고, 양옆도 둘러보다 보면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빠르게 질주하는 스포츠카는 계기판과 정면만 번갈아 보기에도 벅차다. 자칫 한 눈을 팔았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항상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우리의 몸을 아낄 수 있다.


 바쁜 현대인들은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빠른 시간 안에 음식물을 몸속으로 털어 넣는 행위를 한다. 우리 몸이 음식물 쓰레기통도 아닌데 말이다. 음식의 맛은 둘째치고 소화를 시키기에 충분한 분쇄 작용을 거치지 못하였으니,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없을 테고, 심한 경우에는 탈이 날 수도 있다. 내가 내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는가? 몸도 막 사용하다 보면 금방 망가진다. 망가진 이후에는 100%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몸도 기계 부품처럼 교체하면 좋겠지만 철저한 개인 전용 Customized(맞춤) 상품이기 때문에 운이 좋아서 교체를 한다고 할지라도 예전처럼 잘 작동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상처가 생기고 아물기까지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쉴 틈도 없이 회복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상처는 계속 덧날 것이고 결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천천히 우리 몸의 치유 속도를 가늠해보자. 내가 몸에 무리를 주고 있다면 몸이 따라와 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내 몸 사용 의무'이지 아닐까 자문하여 본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1년 만에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자연이 설정해 놓은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항상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빠름으로 야기된 문제들은 느림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시간이 돈인 이 세상에서 시간이 더 걸리는, 즉 돈이 더 드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까? 


느림의 다른 이름은 자연스러움 아닐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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