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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종교적, 금욕적, 영양학적 따위의 이유로 고기를 피하는 사람

by JJ Aug 09. 2022

 마크는 미식가이자 육식주의자이다. 그는 항상 소문난 맛집들을 찾아다니고, 친한 지인들과 음식의 풍미를 즐기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식사자리에서 불편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올리비아, 그녀는 참 매력이 넘치고,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내면까지 훌륭해 보였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했지만 함께 식사를 할 때곤 그녀의 채식주의 성향 때문에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더라도, 김치 양념에 멸치액젓이 들어 있거나, 또는 돼지고기를 뺀 찌개를 주문하더라도 육수를 무엇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해당 음식은 손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마크가 올리비아에게 질문을 했다.


"올리비아! 육식은 전혀 안 먹는 거야? 아니면 못 먹는 거야?"
"어? 글쎄? 먹을 수는 있는데, 안 먹는다고 하는 게 맞을 듯?"
"같이 밥 먹을 때마다 항상 곤욕스러워 죽겠어! 나만 먹는 것도 미안하고!"
"난 신경 쓰지 마! 많이 불편해?"
"어, 난 같이 맛있게 먹고 싶은데, 올리비아는 밥이랑 기본 반찬만 먹으니깐 괜히 불편해!"
"불편하다면 사과할게! 그냥 난 진짜 괜찮으니깐 신경 안 써줘도 돼!"
"밥도 같이 먹는 맛이란 게 있는데, 같이 먹는 맛이 반감된다니까? 그러지 말고, 이거 한 번만 먹어봐! 응?"
"고맙지만 사양할게!"
"너도 참 고집이 쇠고집이다! 내가 졌다 졌어! 그나저나 채식만 하는 이유는 뭔데?"
"음.. 그건 밥 다 먹고, 카페 가서 말해줄게! 그때도 여전히 궁금하다면 말이지? 호호"
"또 궁금한 거 못 참는 나를 궁금하게 만드는구먼. 참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마크의 머릿속에는 올리비아가 채식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은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이동하며 마크는 생각했다.


'투명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함일까?'
'알레르기가 있나? 어디 몸이 안 좋나?'
'돈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래 보이지는 않은데?'
'나랑 어울리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카페 앞에 당도하였다.


"마크! 뭐 마실래? 마음 불편하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사줄게!"
"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어디 보자, 나는 카페라테 마셔야지~"
"저기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시고요, 카페라테 한잔 주시는데요, 우유 대신 두유로 부탁드릴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카페라테 두유로 한잔 맞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주문을 마치고, 둘은 서둘러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은 후 마크는 올리비아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올리비아는 마크의 어깨를 한대 툭 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이구, 아저씨!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요!"
"아, 미안. 생각 좀 하느라고."
"무슨 생각?"
"네가 채식을 하는 이유? ㅎㅎㅎ"
"우리 마크가 집요한 구석이 있네? 난 그냥 혹시라도 피해주기 싫어서 조용히 있으려고 했던 건데.."
"피해는 무슨 피해! 어서 말해줘! 궁금해서 미치겠단 말이야!"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부다!"
"알았다. 알았어. 들으면 별 것도 아닌데.."


 올리비아가 한 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건 내 개인적인 신념에 가까워. 다시 말하지만 남들의 생활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싫고."
"무슨 영향력? 난 단지 너랑 고민 없이 유쾌한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히히히!"
"음.. 나는 살인이 싫어. 그리고 환경이 오염되는 것도 싫고!"
"응?"
"그러니깐 소나 닭, 돼지 같은 가축들은 잡아먹히기 위해서 사육되잖아. 사육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고. 난 그런 걸 거부한다고 말해야 하나?"
"우리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나같이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판매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니 점차적으로 가축 사육이나 도축을 줄여나가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리고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끔찍하잖아. 인간을 잡아먹는 최상위 포식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를 저렇게 우리에 가둬놓고 살이 포동포동 오르기만을 기다렸다가 도축한다는 건.."
"허걱. 올리비아! 그건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잖아!"
"그래. 끔찍하지. 끔찍하니깐 안 먹는 거야! 유남생?(You know what I'm saying?)"
"그.... 그렇네.... 하아.... 참.... 생각이 많아지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내가 그래서 일부러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야! 네가 이렇게 반응할까 봐! 진동 울린다! 똥 씹은 표정 하지 말고, 어서 커피나 가져와!"
"어어.. 내가 가지러 다녀올게! 잠깐만 기다려.."


 올리비아의 말을 들은 마크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올리비아의 생각의 깊이와 절제력에 감복하면서도 본인의 낮은 의식에 창피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순간 마크는 머릿속에 큰 혼란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가축들은 뭔가 불쌍한 걸? 잔인하기도 하고.... 생명은 다 존귀한 건데.... 죽임을 당하기 위해 시한부 인생을 살고, 도축을 당하고 나서는 부위 별로 절단당하고, 식당에 판매되면 다시 칼질을 당하게 되고, 다시 한번 불로 지져지거나 뜨거운 물에 끓여진 후에 나의 입 속으로 들어와서 잘근잘근 씹히는구나.'

'나도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힘들겠지?'


마크는 복잡한 심경으로 커피 두 잔을 픽업했다.



 

<가축의 소원>


제 명껏 살게 해 주소서.

내 자식들은 나와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

내 뼈는 내가 죽은 곳에 온전히 남아있게 해 주소서.


만약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인간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태어나게 해 주소서.


인간들을 벌할 수 있다면,

저와 똑같은 죽임을 당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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