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고 달린다. 세상과 나를 느끼기 위해서...
#에어팟 #러닝
사람들은 운동을 하며 나름 그 행위에 대한 의미와 이유를 부여하고 운동을 한다. 내가 달리기를 포함해서 꾸준히 운동하는 이유는 일상의 피로를 던지고 잠시 쉴 수 있는 나만의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달리기의 장점은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기는 모든 근골격계를 활용하며 신체의 움직임을 온전히 느끼게 되고 내면의 의지로 신체를 다스리고 정신 승리하는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강한 강도와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고 개인기록(PR: private record) 갱신하는 맛을 들이는 순간 운동은 나의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강한 의지와 정신력이 신체를 컨트롤하고 지배하게 될 때 우리는 운동이 내 삶의 진심으로 또는 중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강한 정신력은 강한 육체에서 나온다. 서로의 관련성이 깊을수록 그 시너지는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기가 바로 그것이다. 강한 정신세계가 폭발적 육체를 통제하고 지배하지만 육체의 고통은 또 강한 정신력을 흩트리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말처럼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이 두 가지의 불가분의 상관관계가 달리기의 지속성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신체의 고통이 정신력을 강하게 밀어붙이다. 이때 정신이 밀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타협을 하게 된다. 달리기 운동 특성상 지루함을 달래고 재미라는 요소를 가미하여 고통의 시그널을 상쇄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라는 행복한 보충제는 달리기를 더욱 재미있게 해 준다. 그리고 육체의 고통을 이기고 그 지속성을 더해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에어팟을 끼고 멋들어지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러너의 멋들어진 모습의 화룡점정은 마치 에어팟으로 종결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사람의 생각과 시선을 모두 다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에어팟을 끼고 크게 음악을 들으며 인적이 드문 야간이나 자전거도로 등에서 달리기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는 위험 신호를 우리의 오감(+육감)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상황을 캐치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를 에어팟을 꽂아 닫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다고 반문하겠지만 감각이라는 것은 집중에서 나타난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선택과 집중에서의 집중말이다.
멀쩡한 보행자 도로를 나 두고 자전거도로로 달리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잘못하면 자전거와 함께 같이 뒹구는 수가 생긴다. 자전거 라이더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러너를 향해 아무리 딸랑이를 흔들어 대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러너에 귀가 에어팟 음악으로 닫혔기 때문이다. 거기에 야간 달리기는 새까만 러닝복을 입고 자전거도를 저승사자처럼 달린다. 러너와 라이더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서로의 안전을 위해 겸용이 아니라면 보행자도로에서 귀를 열고 밝은 옷을 입고 달리기를 권장한다. 보행자 자전거 겸용 도로에서 청각을 닫아 버리는 일은 나와 상대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꼭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달리기에 익숙한 상황이 되고 스스로 달리기에 대한 통제와 지속성(달리지 않으면 몸이 근진 근질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가끔은 에어팟을 집어던지고 나 자신을 마음껏 느끼며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신체의 움직임을 느끼며 집중해 보자. 그리고 달릴 때 생각을 놓으며 달리고 싶지만 이놈의 뇌는 쉬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해야 할 것, 동료가 나에게 했던 말들 등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다 한방에 터진다. 그게 아이디어가 되었던, 분노가 되었던 슬픔이 되어 내 뺨에 눈물로 흐르던, 입 밖으로 비명소리와 욕설이 나오던, 그 순간만큼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내 육체는 뛰고 있지만 내 머릿속 브레인은 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는 일상생활에 갇힌 뇌를 일깨워 준다. 달리기에 집중하다 보면 뇌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면서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뿜어져 나온다. 이것들이 육체의 활기와 집중력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면서 아이디어들이 머릿속에서 화수분처럼 솟아나게 된다. 마구마무 말이다. 이는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자전거, 수영 같은 중장거리 유산소운동 간에 발생한다.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상상력으로 운동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나는 꽤 많은 아이디어로 인해 직장 및 업무 간에 또는 글 재료등을 운동을 통해 얻게 되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일꾼들이 자원을 마구 캐어 내듯이 내 상상력도 그렇게 발현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라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말하였다. 이처럼 달리기는 그 자체가 아이디어 생산 공장이다.
에어팟과 음악을 즐기는 러너라면 가끔은 음악을 테이블 위에 놓고 달리는 것도 추천한다.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말이다. 귓가에 허전함을 멀리한 채 달리다 보면 평소 듣지 못했던 세상 소리와 마음속에 소리들이 전달되어 온다. 천변 공원 따라 늘어진 도로는 너무도 고요 하지만 그렇게 달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평소 듣지 못한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뒤로 지나쳐 사라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리고 나를 따라 내달리는 물 흐르는 소리와 하천 위로 뛰어오르는 커다란 물고기들 소리까지 말이다. 거기에 지는 석양을 부르는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들의 속삭임은 내가 살아 있음을 더욱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호흡에 집중하며 달리다 보면 내 육체의 끝까지 나의 모든 나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고막을 뚫고 달리는 소리보다 귓바퀴를 돌아 들어오는 다양한 소리는 좀 더 다채로운 달리기를 만들어 준다. 바로 이런 맛을 한번 느껴보자. 자연과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육체의 고통을 주지만 뜻밖의 반전 달리기 말이다. 귀를 열고 달려 보자. 그리고 나를 느껴보자. 내 몸의 구석구석 나의 움직임을 말이다.
오늘도 러닝하며 이런저런 생각 중이다. 아니 그냥 떠오른다.
난 러닝하며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나를 느끼고 내 생각으로 빠져드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게 그렇게 난 또 달리고 달린다.